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여명 Mar 02. 2023

엄마가 어린이집을 졸업합니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여기 어린이집이에요.


처음 그 전화를 받았던 날은, 갑작스러운 아버님의 부고로 온 가족이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시댁과 집을 오가며 함께 생활하던 즈음이었다.


복직을 두 달 정도 남긴 때이기도 해서 때가 되었나 보다, 마음을 먹은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 연습한다 생각하고 몇 시간씩만 있다 오지, 뭐.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얼굴에 닿는 바람이 꽤나 차갑던 그 계절. 하지만 아무리 연습해도 엄마 품을 벗어나는 두려움이 네게는 너무나도 컸겠지. 그 계절, 엄마와 떨어지지 않겠다며 와아앙, 울음을 터뜨리던 네가 있었고, 금방 나아지리라는 기대와 달리 어린이집 현관에 드러누워 자지러질 듯 울어대는 날들이 있었다.


그 때마다 연우야, 엄마도 사실 두려웠어. 이게 맞는 걸까, 엄마가 잘못한 게 아닐까. 너의 울음소리가 새어나오는 어린이집 문 앞에 서서 발을 동동거리며 몰래 울기도 했지.


복직을 하던 그 날은 겨울이 한창이라 짙은 밤처럼 까아만 아침이었어. 아직 잠이 덜 깬 너의 머리카락을 대충 정리하고, 한쪽 어깨에는 엄마 가방을, 다른 어깨에는 어린이집 가방을 걸치고 종종걸음으로 등원을 시키던 그런 날. 꼼지락거리는 네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아가야 춥지, 엄마가 퇴근하고 빨리 올게, 중얼거리던, 이윽고 출근해서는 어린이집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던 네 모습을 떠올리다 화장실에서 그만 왈칵 눈물을 터트렸었지.


엄마의 이른 출근 시간에 맞춰 어린이집이 문을 열던 어느 날엔가는 어린이집 앞에서 출근하시는 선생님을 마주하기도 했어. 새까만, 겨울밤의 한기가 묻은 교실로 들어가는 네 뒷모습을 보고도 엄마는 지각을 하지 않으려 뛸 수밖에 없었던 그 서글픔은 어떻게 말로 다 하겠어, 그렇지?


우리의 저녁은 또 얼마나 애가 탔는지. 어느새 해가 저물면, 네가 혼자 남겨져 있지 않기를 바라며 퇴근길을 서두르던 그런 날들. 문이 열리고, 네가 엄마아, 하며 선생님의 손을 잡고 나오면 미안함과 고마움이 수백 번은 교차하던 하루가 저무는 시간들. 두 팔을 뻗으면 품에 포옥 안기는 너를 하루의 끝에서야 만나게 된 그런 저녁.


그래도 연우야, 우리는 성실히 자라고 있었나봐. 그렇게 계절이 흐르고, 봄이 오고, 매일 같이 아이스크림을 사먹던 여름이 지나 놀이터에서 왁자지껄 친구들과 놀던 가을을 건너 겨울이 오고, 어느새 등원길이 산책길처럼 가벼워진 그런 날들이 성큼 와 있더라.


엄마, 저기 좀 봐요!

엄마, 오늘은 바람이 차가워요!

엄마, 오늘은 안 늦었어요?


그렇게 산책하듯 계절을 오가고 엄마는 오랜 시간 머물던 회사를 떠나왔고 네 등원과 하원을 조금 더 정성스럽게 보살필 수도 있었지. 퉁퉁 부은 눈으로 일어나서 같이 아침을 먹는 시간과 해가 저무는 저녁을 곁에서 지킬 수 있음이 감사한 시간들이 이어졌어. 그렇게 오늘에 서 있더라.


졸업을 한 달쯤 앞두고부터 늘 다니던 길이 그토록 먹먹했던 건 하루하루 그 길을 오갈 때마다 네가, 엄마가, 아빠가, 우리가 조금씩 자라고 있었기 때문일 거야. 그 길 위에 우리의 웃음이 있어서, 눈물이 남아서, 자그마한 고민과 걱정거리들도 숨어 있어서, 그 길 위에 우리의

시간들이 있어서였을 거야.


네가 자란 시간들은 엄마가 자란 시간.

너의 마음이 자란 시간들은 우리가 자란 시간.


마지막 날, 너를 어린이집에 들여보내고 엄마는 가만히 서서 생각했어. 여기에 참 고운 마음들이 있었구나. 부모라는 낯선 짐을 따스히 나눠주었던 고마운 손길들이 말이야. 너라는 세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그 과정을 함께 걸을 우리의 여정은 앞으로도 매번 다른 길 위로 이어지겠지만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엄마는 선연히 기억할 거야. 가장 낯설고 서툴던 시간들을 비웃지 않고 나무라지 않고 따뜻하게 나누어주었던 고운 마음들을 말이야.


이곳은 그 어느 곳보다 네 기억 속에서 가장 빠르게 흐릿해지겠지만,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네 작은 입이 처음으로 말한 선생님이라는 단어의 따스한 어른들을, 너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엄마, 아빠만큼이나 사랑해주었던 그 분들을 네 대신 엄마가 마음 깊이 새기려고 해.


졸업을 축하해, 아가야.

안녕, 내 아이의 첫 어린이집.

2월의 마지막 날, 엄마도, 아빠도 어린이집을 졸업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