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가 필요한 글] 1. 죽고 싶었던 그날

by 봄부신 날

[용기가 필요한 글] 1. 죽고 싶었던 그날



제목을 무어라 지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글쓰기는 결국 내면의 삶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데, 어린시절을 다시 끄집어내어 글로 쓴다는 것이 여전히 내겐 무거운 주제이고 숙제다.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미뤄둘 순 없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한 말이라고 제목을 만들었다. 훗날 책으로 낸다면, 가명을 써야 할까, 고민한다. 가족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은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얼마 전 아내와 마주 앉아 어린시절 얘기를 잠깐, 아주 잠깐 한 적이 있다. 어릴 때 참 힘들었노라고. 누나 얘기, 엄마 얘기, 아버지 얘기. 그 정도 언저리만 훑었다. 더 이상 깊이 들어갈 수가 없었다. 아내가 얼마나 상처를 받을지 몰라 섣불리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얼마 전 독서모임에서 불쑥 그 얘기를 끄집어냈다. 마침 죽음에 대한 책을 읽고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죽으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믿지 못했다.

나는 믿으라고 강요할 생각도 없었다. 그리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더 이상 길게 얘기할 수 없었다. 다시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나는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라 불렀다.) 6학년이었고 한 살 많은 누나는 중학생이었고, 남동생은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내가 무언가 적극적으로 죽음을 시도할 나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초등학생이었음에도 죽고 싶었다. 날마다 나만의 비밀 일기장에 '죽고 싶다'는 글을 수백 번 적었다. 이 집에서는 살 수가 없었다. 나는 내 가족이 싫었고, 내 부모님이 싫었고,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그래서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그런데 마침 그 날이 왔다.


연탄으로 난방을 하던 시절이었다. 부엌과 방으로 이어지는 문틈을 꼭꼭 막아 놓지 않으면 일산화탄소가 가끔 방으로 들어올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극심한 두통이 일었다. 뉴스에서도 심심찮게 연탄가스 중독 사망 사건이 발표되던 시절이었다.


한밤중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눈을 떴다. 모두 자고 있었다. 안방에서는 부모님이., 작은 방에서는 누나와 나 그리고 남동생이 자고 있었다. 나만 눈을 떴다 그리고 얼굴을 찡그렸다. 두통이 심했다. 즉시 연탄가스가 방 안 가득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잠시 갈등했다. 일어나 안방으로 가려던 나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래. 죽어야겠다.

나는 모처럼 찾아온 일산화탄소 중독에 내 몸을 맡겼다. 이대로 다시 눈을 감으면 죽어 있겠지.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그대로 죽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렸다. 눈을 떴다. 누나였다. 누나는 눈을 뜨지 못한 채 울고 있었다. 일산화탄소 냄새가 더욱 심하게 느껴졌다. 순간 나는 나 때문에 누나까지 죽게 만들 수 없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나는 죽고 싶었지만 누나까지 죽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누나는 울고만 있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문을 열고 마루를 지나 안방으로 가는 길이 한참 멀게 느껴졌다. 안방문을 좌우로 열었다.


"엄마, 연탄 가스."

나는 그 말을 하고 쓰러져 기절하고 말았다.


한참 뒤 눈을 떴을 때 우리들은 모두 안방으로 옮겨져 있었다. 나와 누나는 몸 한쪽이 마비가 된 상태였다. 부모님은 아들과 딸을 살려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몸을 주므르고 있었다. 나는 혀가 마비되어 말을 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동치미 국물을 가져왔다. 억지로 일어나 한 모금 삼켰다.


119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나와 누나는 살아났다. 누나도 온몸이 마비되었고 나도 마비되었다. 연탄가스 중독이 그렇게 무서웠다. 하지만 나는 소극적 자살을 감행했다. 누나만 아니었다면 죽었을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누나가 울었기 때문에 살아났고 이렇게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날 내가 사실은 죽으려 했다는 말은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다. 그 사건은 내게 하나의 상징적인 트라우마로 남았다. 나는 언제든지 죽을 준비가 된 사람이었다. 그것도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그만큼 우리집은 공포로 가득한 집이었다. 초등학생 6학년이 견뎌내기에는 너무 무서운 집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된 때부터 방학만 되면 가출계획을 세웠다. 집을 나가 어디로 갈 것인가 생각하고 버스비를 모으곤 했다. 그러나 5학년 때 낮에 나갔다 밤에 돌아왔다. 아무도 몰랐다. 자기 전에 돌아왔으니 가출도 아니다. 하지만 그때 낮에 한번 해보고는 쉽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가출을 감행하기에는 너무 벅찬 계획이었다.


어린 나이에 죽음을 생각하고 실천에 옮길 마음까지 먹으면서 나는 더 성장했다. 그것은 죽음에 대해, 죽음 너머에 대해 나를 더 용기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어렸다. 넓은 세상을 이해하기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