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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이름의 폭력, 보통의 가족 <더 디너>

by 봄부신 날

[더 디너] - 헤르만 코흐

한줄평 : 행복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목도하게 하는 충격의 서사


설경구, 장동건, 김희애, 수연 등 화려한 배우들이 총출동하여 만든 영화 <보통의 가족>을 보고 큰 충격에 빠졌다. 가족의 항상성, 가족의 행복, 가족의 사랑이라는 빙산 아래 숨겨져 있는 도덕, 윤리, 폭력은 어디까지 용인해야 하는가. 가족이라면 그럴 수 있는가. 가족이 아니라 더 좁혀 내 자녀라면, 자녀를 위해, 자녀의 미래를 위해 부모는 어디까지 도덕과 정의의 한계를 밀어붙여야 하는가.

나는 영화가 소설로 나와있지 않을까 하고 검색해보았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네덜란드 소설 원작 <더 디너>를 구해 읽기 시작했다. 영화로는 표현하기 힘든 심리 묘사가 많이 있으리라 짐작했다. 그러니까 나는 어느 정도 사건의 흐름과 결말을 알고 책을 읽기 시작한 셈이다.


영화는 <보통의 가족>이라고 제목을 정함으로써, 가족에 중심을 뒀다. 반면 책은 <더 디너>라는 제목으로 두 형제의 식사 장소를 서사의 공간으로 채택했다. 그리고 시간 흐름에 따라 아페리티프, 애피타이저, 메인 요리, 디저트, 디제스티프, 팁 의 순으로 식사 순서를 부제목을 정하고 서사를 풀어나간다. (나는 이 책에서 아페리티프, 디제스티프 라는 명칭을 처음 접했다.)

두 형제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두 형제의 자녀가 모두 포함된 일군의 자녀와 조카들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고, 그 문제에 대해 자녀의 부모된 두 형제와 배우자가 저녁 식사 자리를 갖는다. 자녀들이 사건의 핵심에 놓여 있지만, 이야기는 동생 가족의 남동생이 '나'의 1인칭 시점이 되어 모든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구조로 진행된다.

메인 요리가 나오려면 아페리티프와 애피타이저의 두 순서를 견뎌야 한다. 저자는 쉽게 이야기를 끄집어내지 않는다. 두 부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페리티프와 애피타이저를 통해 충분히 음미하도록 한다. 그들은 겉으로 보이는 행복한 가정에 목말라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보여야 한다. 그것이 중요했다.

만약 누군가 내게 행복이라는 말을 정의해 보라고 한다면 틀림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행복은 그 자체로 충분할 뿐, 결코 증인이 필요하지 않다고. (12)

모든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사정이 있는 법이다. (60)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을 가져와 살짝 비튼 이 문장으로 작가는 가족의 행복과 불행에 대해 독자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두 가정에 무슨 문제가 생겼구나. 그 문제는 가족의 행복을 산산조각 낼 그 무엇에 견줄만큼 크고 무서운 것이구나. 그리고 두 가정이 얽혀 있어 손실 계산이 필요한 것이구나. 이런 짐작을 하게 한다.

소설에 대한 리뷰를 쓸 때가 가장 곤혹스럽다. 줄거리를 밝히지 않고 책을 읽은 감정이나 책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책을 사면 알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정보만으로 얘기를 하려 한다.

두 부부, 그들의 자녀, 자녀들의 행동이 찍힌 동영상.
그 동영상으로 네덜란드 사회는 충격에 빠지고
문제 동영상에 찍힌 아이들이 자신의 자녀들임을 알게 된
두 형제 가족이 식당에서 만난다.


어쩌면 결혼 생활이 유지되는 비결은 훨씬 더 단순할지 모른다. 바베테는 성공적인 정치인의 아내로 살아기기 위해 결혼 서약서에 사인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지금 갈라서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 그동안 투자한 시간이 아까워서일 것이다. 그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을 읽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책을 절반쯤 읽고 나면 그동안 읽은 게 아까워서라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책을 붙들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세르게 옆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마지막 장에서 그동안의 손실을 단번에 만회하려 들지도 모른다. (74)

많은 부부가 이렇게 살아가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비쳐지는 부부, 보여지는 부부, 부부의 다정함, 가족의 행복한 모습 등을 타인의 시선 속에서 찾는 것은 대부분의 가정, 대부분의 부부가 그런 것일까. 그렇게 결혼생활은 타인의 시선 속에서 유지되는 그 무엇일까. 나는 책을 반쯤 읽다가 재미가 없거나 흥미를 잃으면 그냥 덮어버리는데, 저자의 비유대로라면 나는 매우 위험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두 형제 모두 타인의 시선을 매우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작가가 그렇게 서술하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두 사람은 타인의 판단, 주변 사람의 시선을 매우 의식한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자녀들은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다. 질풍노도의 시기. 그들은 감정이 가는 대로 행동하고 낄낄거린다.

아빠는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잘못에 대한 죄책감보다는 자존심을 세워주는 것이 우선일까. 아들 미헬의 아빠인 '나'는 어린 시절 축구를 하다 가게 유리창을 깬 아들을 데리고 가게를 찾아간다. 잘못을 시인하고 변상하러 갔지만 계속대는 아들에 대한 훈계에 그만 꼭지가 돌아버린다. 그는 거의 가게 주인에게 폭력을 행사할 뻔했다. 그리고 아들에게 자신의 정당함을 주입시킨다.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는 하나의 과거를 알게 되고 아빠의 성향을 짐작한다. 동생 가족의 아빠인 '나'는 순간적으로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미헬!" 나는 아이를 달래려 했다. "미헬, 아빠 말 좀 들어 봐. 슬퍼할 거 하나도 없어. 그 아저씨는 정말 나쁜 사람이고, 아빠는 그걸 깨닫게 해 준 거야. 너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어. 그냥 공을 차다가 유리창을 깨뜨린 것뿐이야. 그건 실수였어. 실수는 언제든지 할 수 있어. 그까짓 실수 좀 했다고 너를 그런 식으로 대한 게 나쁜 거야." (170)

이번에도 그렇다. 전 국민이 CCTV에 찍힌 동영상을 보게 되고, 그 동영상의 주인공이 자신과 형의 자녀인 것을 알게 된 '나'는 아빠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마음을 굳힌다. 그건 어떤 것일까. 아들을 믿는 마음일까. 아들의 미래를 위해 부모는 현재를 감추려 한다. 어느 것이 더 나은 선택일까. 내가 그 부모라면 나는 어떻게 할까. 이 책은 그 지점에서 독자에게 고개를 돌린다. 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소?

이미 나는 아빠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내 아들의 입장이 되어 보기로 한 것이다. 학교 파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땠을까? 릭이랑 베아우와 함께 돌아오는 길, 돈을 어디서 찾으려 했고, ATM기 부스까지는 어떻게 갔고, 또 부스 안에서 누군가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은 어땠을까 생각했다. (172)


하지만 형인 세르게는 자녀의 미래를 위해 다른 길을 선택하려 한다. 똑같이 자녀의 미래를 걱정했지만 그 결론은 달랐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두 형제, 두 형제 부부는 서로 다른 길을 가려고 한다. 갈등의 초점은 자녀에게서 부모에게로 옮겨졌다. 아니 처음부터 두 가족 부부가 만난 것이 그걸 암시한다.

"나한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로 릭의 미래야." 세르게가 말했다. "물론 최선은 그 사건이 밝혀지지 않는 거겠지. 하지만 그런 상태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릭이 그런 상태로 살아갈 수 있을까? 또 그걸 알면서 우리는 그냥 살아갈 수 있을까?" (278)

이제 갈등은 자녀의 문제에서 두 형제의 의견불일치로 옮겨온다. 책은 마지막 장을 향해 달려가면서 긴장감이 더욱 팽배해지고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충격적으로 마무리된다. 개인적으로는 책보다 영화의 반전이 더 충격적이었다. 책보다 영화가 훨씬 더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 명배우들의 명연기가 빛을 발한 영화다. 소설은 그에 비하면 오히려 앞부분 진도가 더디고, 불필요한 서술이 많다. 작가가 제목을 <더 디너>로 정하고 식사 순서대로 이야기를 배치하려는 나름의 계획을 가지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은데 그것이 오히려 책을 읽는 데 방해가 된 듯한 느낌도 든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상대방의 얼굴을 힐끔거렸다. 남편과 아내로, 행복한 가정의 두 기둥으로서 나는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은 배가 난파되어도 살아남는다. 난파된 후에도 그 가정은 계속 행복할 거라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 해도 불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348)

두 부부 가족 중 어느 가족이 더 행복해지고 더 불행해졌는지는 모르겠다. 두 자녀 중 어느 자녀가 미래에 더 성숙한 어른이 되었을지 알 길은 없다. 다만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것만 알아주면 좋겠다. 그렇게 본다면 비밀을 간직한 가족이 겉으로는 행복하나 속으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가는 셈이다.

부모의 선택이 자녀의 미래를 결정한다. 현재를 감추고 자녀에게 평생 안고 가야 할 미래의 짐으로 만들어 줄 것인가, 현재 시점에서 벌을 받고 미래를 투명하게 갈 것인가. 도덕성만으로 따진다면 후자의 선택이 더 좋겠지만, 막상 당신 자녀가 그렇게 되었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당신만 일부러 애써 나서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사건은 아무도 모르게 덮어질 수 있다고 하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자녀는 부모를 어떻게 생각할까? 자녀의 입장에서도 생각을 할 수 있다. 형제의 관계는 또 어떤가? 부부가 서로 아들에게 비밀을 만든 것처럼 부부는 어디까지 비밀을 공유하고 진실을 밝혀야 하는가. 입양 아동에 대한 차별은 과연 온당한 것인가? 친자식처럼 키운다고 해서 친자식이 되는 것일까?

이 책은 하나의 사건을 통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약간의 두통과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지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책이다. 네덜란드에서 45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이며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4개국에서 책을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만큼 많은 충격고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책이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 일독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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