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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doo Jun 17. 2020

곰탕의 이유

베란다 유리창에 수증기가 뿌옇게 서린다.

비릿하고 들척지근한 고기 끓는 냄새가 온 집안을 감싸고 돈다.

푸글 푸글 달그락 달그락... 나의 부엌에서 곰탕이 끓고 있다.

마트에 가면 3분만 데우면 된다는 곰탕이 브랜드별로 진열장을 차지하고 있는 이 시대에

나는 오늘도 집에서 큰 냄비들과 씨름하며 곰탕을 끓인다.

 곰탕을 끓이는 일은 단순한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상당한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내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알아낸 나만의 곰탕 레시피는 이러하다.

 먼저 질좋은 사골뼈(소의 다리뼈)와 한우 잡뼈(소의 등뼈, 고기가 많이 붙어있는 부위) 이렇게 두 종류의 뼈를 산다.

 정확히는 고기가 주가 되는 탕을 곰탕, 뼈가 주가 되는 탕을 설렁탕이라고 일컫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끓이는 곰탕은 설렁탕과 곰탕의 중간쯤 되는 탕이 아닌가 싶다. 이 두 종류의 뼈를 끓이면 사골뼈의 찐득하고 구수한 맛과 잡뼈에 붙은 고기의 달달한 감칠맛이 더해져 꽤나 맛있는 곰탕이 된다.

 먼저 사 온 곰탕 재료들을 아주 큰 곰솥에 넣고 차가운 물에 담궈 두번 정도 물을 갈아 주면서 6시간 이상 핏물을 빼야 한다. 핏물을 빼지 않으면 핏물이 끓어 오르면서 갈색 건더기와 지저분한 거품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핏물을 우려서 버리고 난 후에 큰솥에 뜨거운 물과 곰탕 재료들을 넣고 한소끔 파글 파글 끓인다. 끓기 시작하면

피 불순물들과 거품이 부글부글 올라온다. 끓기 시작한지 10분쯤 뒤에 보글거리는 부분에 집게를 담궈 뼈들을 하나씩 하나씩 건져낸다.

 곰탕을 끓일 때에는 무엇보다도 아주 큰 솥 필요하다. 작은 솥에 끓이면 졸아드는 물을 보충하다 하루가 다 갈 수 있다. 또 한가지 팁을 들자면 곰탕을 끓일때 되도록 부엌 베란다에서 창문을 모두 열고 끓이는 것이 좋다. 습기에 질식하지 않고 싶다면 ...아 그리고 곰탕을 끓일 때 중간에 파, 마늘, 무 그리고 양파를 넣고 두시간 정도 후에 건져내 주면 더 맛있다. 야채는 너무 오래 끓일 경우 흐물흐물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화력으로는 가스비 누진세 걱정이 없는 부탄가스 버너를 추천한다. 내 기준에서 16개 정도 사용하면 곰탕 3탕이 완성된다.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오래 끓이는 자가 이기는 거다.

 물을 솥 가득 채우고 반으로 졸아들 때까지 끓인다. 중간중간 부탄가스 갈아주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부탄가스의 좋은 점은 1시간 반 정도 연소할수 있는 연료라서 자동 타이머 기능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왠만해서는 솥을 태워먹을 일이 없다. 나같이 깜빡깜빡 잘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적합한 연료인 셈이다.

 

 자 그럼 지금부터가 진짜다. 내가 곰탕을 끓이는 이유!

이제 가끔 물과 연료만 채워주면서 커피 한잔을 하며 곰탕이 끓는 정취?를 즐길 수 있는 진짜 시간인 것이다.

 탕 속 재료들이 부딪히며 내는 달그락 달그락 푸그락  푸그락 소리,

 보글보글 물이 졸아들며 끓는 소리,

 반쯤 열린 뚜껑 사이로 쉭쉭 새어나오는 수증기,

 집안 가득 메우는 달큰해진 고기국 냄새,

 뿌옇게 수증기가 맺힌 베란다의 유리창들...

 그리고 ...!

 그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구경하는 아이들!

"오늘 무슨 요리하지? 곰탕이네 .우아 맛있겠다!"

 사실 순전히 나의 흑심은 이 지점에 있다.

 곰탕이 끓는 풍경...곰탕이 끓으면서 나오는 희뿌연 수증기와 푸글거라는 소리, 그리고 구수한 냄새 속에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 ! 이 모든 것들이 아이들 기억 저 너머에 희미하게 새겨지길 바라는 마음.

후각신경은 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기억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어떤 냄새를 맡았을 때 그것과 연관된 추억이 쉽게 떠오르는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냄새와 소리에 대한 나의 감정은 어릴적 엄마가 끓여주시던 뽀얀 곰탕이 빚어낸 풍경에서 연유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크고 넓적한 솥 한 가득 끓고 있었던 내 기억 속의 곰탕 .

너무 흔하고 질리도록 먹어서  맛있는 지도 잘 몰랐던 엄마의 곰탕.

 이제야 나는 그것이 얼마나 진하고 고소한 맛이 났었던가, 그리고 그것에 얼마나 많은 엄마의 정성이 들어간 것이었던가 새삼 깨닫게 된다. 내가 두 아이에게 주고 싶어 끙끙 무거운 솥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곰탕을 직접 끓여보고서야 말이다.

 이제 마무리를 할 때이다. 솥에 가득 부었던 물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국물이 끈적한 듯 걸쭉해지면 다른 냄비에 뼈는 놔두고 국물만 비워낸다. 다시 물을 넣어 재탕을 끓인다. 같은 과정을 반복하며 3탕까지 끓인다.  다른 냄비에 덜은 국물은 기름을 걷는 것이 중요하다. 겨울엔 저절로 기름이 하얗게 굳지만 여름엔 일단 식힌 후 냉장고에서 더 차게 식혀 기름이 굳으면 걷어낸다. 그렇게  정성껏 3회 정도에 거쳐 우려 내 기름까지 걷어낸 국물들을 마지막에 큰 냄비에 모두 섞어 함께 어우러지게 끓인다. 이렇게 하면 아주 뽀얗고 커다란 곰탕이 한 솥 가득 완성된다. 뿌듯한 순간이다.  먹고 먹고 남으면 냉동실에 얼리고 또 남으면 다정한 친구네에 싸줄 수도 있는 넉넉한 양이다.

 

 하루를 마친 가족들이 식탁에 모여 앉는다.

 하얀 쌀밥을 짓고 파를 넣은 곰탕과 깍두기를 단촐하게 차려 다함께  밥을 먹는다.

따끈하고 뽀얀 곰탕 국물이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마음 속에 ,몸 속에 뜨끈하고 진한 기운이 뻗어 나간다.

 아이들이 이렇게 나의 곰탕을 먹으며 몸도 마음도 쑥쑥 자라길 바란다.

그리고 마음 한켠에 엄마의 곰탕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면서 큰다면 더없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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