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미국 유학준비 下

by yonkim

1년 안에 모든 걸 준비해 미국에 가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52주 중 단 한 주라도 아끼고 싶었다. 그래서 바로 다음 주부터 준비를 시작할 수 있도록 강남역 인근의 유학 미술 학원과, 학원 근처에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알아봤다. 아르바이트를 구한 이유는 단순했다. 준비 기간 동안이라도 학원비만큼은 내가 벌고 싶었다. 유학이라는 선택이 부모님께 드리는 부담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 무게를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2시 반부터 저녁 6시까지는 학원에서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일정이었다.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아침과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기에 나름 합리적인 계획이라고 생각했다.내가 일하던 곳은 포베이였다. 사장님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분이었고, 중간중간 외국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를 꽤 잘 대해주셨다. 한국 입시 미술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었다. 홍대를 준비하던 고등학교 친구의 입시 미술 과정을 옆에서 보며, 개인적으로는 너무 재미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유학 미술은 입시 미술과는 평가 관점이 달랐다. 정해진 시간 안에 실력을 평가하는 시험이 아니라, 1년 동안 준비한 포트폴리오를 중심으로 학생을 판단했다. 그림 실력보다 중요한 건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얼마나 창의적으로 표현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였다. 아마도 학교들은 현재의 실력보다 잠재성과 학교와의 ‘핏’을 더 중요하게 본다고 느꼈다. 그래서인지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과정은 즐거웠다.


총 15개의 작품을 준비했는데, 그중 가장 즐겁게 작업한 프로젝트는 ‘Human Recipe’였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11개의 필수 원소를 섞으면 사람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한 작업이었다.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어, 마치 요리를 하듯 원소를 재료로 섞어 사람을 만든다는 설정이었다. 성냥은 인(P), 대나무는 탄소(C), 치약은 칼슘(Ca). 일상의 사물을 재료 삼아 사람을 ‘요리하고 창조한다’는 개념의 영상 작품이었다. 실제 레시피를 디자인하고, 그 요리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계절은 어느덧 봄을 지나, 한여름으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숨이 막힐 듯한 더위 속에서 나는 여느 날처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들의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고, 다시 주방으로 돌아와 다음 테이블을 준비하는 반복된 시간이었다. 잠깐의 여유가 생겨 휴대전화를 확인했을 때, 부재중 전화 두 통이 남아 있었다. 엄마가 길에서 쓰러지셨고,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고 계신다는 소식이었다. 퇴근 후 가족과 함께 집 근처 한림대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를 받았지만 원인은 알 수 없었다. 며칠 뒤, 같은 이유로 엄마는 다시 쓰러지셨다. 주변의 도움으로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았고, 뇌동맥류 진단을 받았다. 뇌출혈로 이어질 수 있어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당시 나는 어린 동생들과 집안일을 함께 책임져야 했다. 아르바이트도, 포트폴리오 준비도 모두 멈췄다. 미국에 있던 여자친구와도 이미 헤어진 뒤였다. 감당하기 벅찬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교회 예배 시간에는 평소보다 앞자리에 앉아, 하루라도 빨리 상황이 나아지길 바라는 기도를 반복했다. 시간이 약이었을까. 엄마의 수술과 회복, 멈춰 있던 일들은 조금씩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을이 찾아왔고, 집 앞에는 낙엽이 쌓였다.엄마와 나는 의자를 하나 들고 나와 잠시 앉아 가을을 느꼈다. 그때의 햇살과 천천히 회복해가던 엄마와의 시간은 참 평안했다.


마침내 원서를 넣을 시기가 왔다. 총 세 곳의 학교에 지원했다. 가장 가고 싶었던 SVA, 그리고 학원 선생님의 추천으로 SCAD와 OTIS. 한 달쯤 지나 메일이 도착했다. SVA에서 온 불합격 통지였다. ‘큰일 났네.’ 1년 전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리고 다음 달, 또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SCAD의 합격 통지였다. 장학금까지 포함된 제안이었다. OTIS에서도 합격 메일이 왔지만, 9,700달러의 장학금을 제시한 SCAD와 비교하면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학비 역시 다른 학교들에 비해 절반 수준이었다.


2014년 12월 31일. 정말 1년을 꽉 채운 마지막 날,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유난히 감사한 일들이 많았던 한 해였다. 큰 동기부여가 되어준 첫 여자친구, 나의 유학을 응원해준 친구들, 어머니의 병원을 옮겨보라 조언해주신 쌀국수집 사장님, 수술을 잘 집도해주신 의사 선생님, 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해준 교회 동역자들, 그리고 나의 가능성을 믿어준 학교 관계자들까지. 하나씩 떠올리다 보니, 그해를 지나오게 만든 얼굴과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2014년을 그렇게 정리하며, 다가올 2015년이라는 새로운 챕터를 앞에 두고 있었다. 두려움과 설렘 사이를 오가며, 나는 태평양 위를 건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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