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의 꿈을 처음으로 부모님께 말씀드린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단번에 허락이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미술학원과 영어 공부를 병행하며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두 달쯤 지났을 무렵, 재정적인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우선 국내 대학에 진학하는 쪽으로 방향을 다시 잡게 되었다. 그때 부모님은 내가 유학을 포기했다고 생각하셨다. 한국에서 내가 원하는 전공과 가장 가까운 커리큘럼을 가진 학교들을 찾아봤다. 그중 눈에 들어온 곳이 서울예술대학교였다. 4년제 대학은 아니었지만, 광고 실무에 가장 가까운 커리큘럼과 현업에서 활동하는 선배들이 많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실기와 면접을 준비했고, 시험도 치렀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예비 번호조차 받지 못했다. 모든 준비를 함께했던 재수생 형도 함께 떨어졌다. 며칠 뒤, 형은 예비 번호로 마지막 문을 닫고 학교에 들어갔다. “용빈아, 너는 이 학교가 아니더라도 광고로 성공할 거야.” 형의 미안함과 위로가 담긴 말이었다. 모두가 교복을 벗고 성인이 되는 기쁨을 술과 만남으로 즐기던 그 겨울, 나는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예정에 없던 군대라는 선택지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는 지방에 있는 몇몇 학교들을 찾아 보여주며 어디든 가서 다시 시작해 보라고 하셨다. 사실 나는 군대에 가고 싶지 않아서 원서를 냈고, 전주에 있는 예원예술대학교 한지조형디자인학과에 합격했다. 이름부터 낯설고 마음에 들지 않았던 학과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렵 첫 연애도 시작했다. 그 친구는 필라델피아의 Bryn Mawr College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전주에서 수업을 듣고, 금요일부터 주말까지는 서울로 올라와 데이트를 했다.
학교에서는 기초 미술과 한국화를 주로 배웠다. 한국 입시 미술을 준비하지 않았던 나에게는 따라가기 벅찬 수업들이었다. 다시 서울로 올라와 여자친구와는 자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친구는, 내가 키가 크지도 않고 학벌이 좋은 편도 아니지만 목표가 분명하다는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 친구와 대화는 다시 나를 원래의 목표로 돌려놓았다. 나는 다시 미국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미 마음을 놓고 계시던 부모님을 다시 설득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아버지는 당연히 반대하셨다. 한 학기를 연애에 쓰다시피 한 아들이 갑자기 유학을 보내달라고 말하니 얼마나 진정성 없어 보였을까. 그래도 정말 원하는 공부를 하려면,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편지로 내 계획과 이유를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편지에 대한 힌트는 엄마의 아이디어였다. 미술을 공부하고 싶어 집안의 반대를 겪어본 사람이어서인지, 엄마는 나의 유학에 대해 누구보다 먼저 마음을 열어 주셨다.)
연필로 채운 흰 종이를 들고 조심스럽게 아버지 앞에 섰다. 아버지는 안경을 쓰고 편지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셨다. 시계 초침 소리만 들릴 만큼 방 안은 조용했다. 편지를 다 읽으신 뒤, 아버지는 몇 줄에 밑줄을 그으셨다. “2학기 성적을 보고, 유학을 준비할 기회를 주겠다.” 완전한 허락은 아니었다. 하지만 1년의 시간이 생겼다. 충분히 준비해볼 만한 시간이었다. 2학기가 시작되어 다시 전주로 내려갔다. 목표는 명확했다. 학점을 따는 것이었다. 여자친구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기에 서울로 올라갈 이유는 더 이상 없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들에게 붙어 다니며 기초 드로잉을 배웠다. 드로잉 실력으로는 승부를 볼 수 없다는 걸 일찍 알았기에, 최대한 다른 관점에서 아이디어를 꺼내 미술 과제들을 꾸역꾸역 완성해 나갔다. 교수님들에게 잘 보일 수 있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개인 화실 이사를 돕는 일에도 자진해서 나갔고, 조금이라도 내 이름을 각인 시키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렇게 2학기가 지나갔다. 한 과목을 제외한 모든 과목을 A+와 A로 채웠다. 1학년을 마친 뒤, 학교에 휴학계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