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광고가 아니면 죽음을...!

by yonkim

“자동차가 디자이너가 될래요.” 팔다리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해 마지못해 뱉은 대답이었다.


“커서 뭐가 될 거야?”라는 아버지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해 엎드려뻗쳐를 했던 나였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자식이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생각이 없는 게 걱정되셨을 것이다. 얼차려를 주면, 자판기처럼 대답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른다. 그날 나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우선은 아버지와 같은 직업을 말했다. 하지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처음으로 진지하게 ‘내가 무엇이 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열다섯 살이었다.

내 인생의 방향을 스스로 고민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걸 찾다 보니, 블로그를 통해 패키지 디자인과 광고 사례들을 찾아보는 게 이미 취미가 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재치가 담긴 디자인들을 보며 나도 저런 걸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이 분야의 최고를 찾게 되었고, 그러다 ‘광고천재 이제석’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곧바로 구매하여 이틀 만에 다 읽었다.


책 속에는 스물여덟 살의 청년이 늦은 나이에 뉴욕으로 유학을 떠나 광고쟁이로 살아남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2달러 피자와 무료 급식소로 끼니를 때우며 버티던 시간, 그리고 국제 광고제에서 상을 휩쓸기까지의 과정. 광고를 만드는 장면들이 유난히 생생해서, 마치 내가 같이 굶고, 같이 고민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의 몰입까지 함께 겪는 느낌이었다. 책을 덮고 나니 마음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 감정은 바로 꺼내놓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만 알고 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꿈이라는 건, 세상을 조금 더 뚜렷이 보이게 만든다는 걸.

부모님에게 처음으로 내가 가지고 싶은 직업에 대해 말했다. “너도 기어코 배고픈 길로 가는구나.” 아버지는 그렇게 답하셨다. 사실 어머니도 젊은 시절 광고 디자이너였다. 그전까지 나는 엄마의 직업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 돌이켜보면 나는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피를 더 닮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 이제 내 꿈은 광고 디자이너이다." 몇 주 동안 풀리지 않던 고민이 그제야 정리되었다. 일상에서 틈틈이 미래의 나를 상상해보는 일은 나에게 가장 쉽고 빠르게 도파민을 만들어주는 방법이었다. 다른 직업을 가진 나를 떠올리면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실제로 ‘광고천재 이제석’이라는 책 이후로 광고인의 꿈을 말하는 친구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90년대 초반에 태어난 광고인들 가운데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 무렵부터 한국인들이 해외 광고제에서 자주 수상하는 모습을 보는 일도 자연스러워졌다.


기왕이면 최고가 되고 싶었다. 그렇다면 최고의 광고 디자이너는 무엇으로 결정되는 걸까. ‘최고’라는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은 자연스럽게 해외 광고제로 향했다. 나의 목표는 분명해졌다. Clio, Cannes, The One Show, New York Festivals. 이 네 개의 광고제에서 수상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해외 광고제에서 수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가장 많은 수상자를 배출한 대학교의 교수에게 배우는 것.

목표가 정해지자 계획은 자연스럽게 구체화되었다. 그때, 나는 나름의 10년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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