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리움과 함께 사는 법 (2015)
내 영화 취향은 특정 장르에 있지 않다. 잘 만든 영화, 그리고 내 경험이 겹쳐져 몰입할 수 있는 영화면 충분하다. 30~40대에는 극장을 자주 찾았지만, 요즘은 OTT가 생활의 일부다. 예매 없이 강변역 CGV에서 당일 영화를 골라보던 시절의 낭만은 사라졌고, 지금은 주말마다 넷플릭스에 올라온 작품을 고르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이번 주말에는 그렇게 우연히 **〈그리움과 함께 사는 법(I’ll See You in My Dreams)〉**을 보게 되었다.
영화는 캐롤이 키우던 14살 반려견 헤이즐을 떠나보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슬픔에 오열하는 캐롤에게 수의사가 “필요한 만큼 시간을 가지세요”라고 말하는 순간, 10여 년 전 작별인사도 못 하고 반려견을 떠나보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의 미안함과 슬픔이 다시 밀려왔다. 영화는 시작부터 나의 개인적인 기억과 겹치며 깊은 몰입감을 만들었다.
새로 들어온 풀장 청소부 로이드는 젊은 청년이지만, 인생의 방향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었다. 음악이라는 공통의 경험으로 캐롤과 로이드는 나이를 넘어 선 공감을 느낀다.
“아무런 걱정도 의무도 없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는 로이드에게 캐롤은 단호히 대답한다. 그런 삶은 없다고. 여기저기 자유를 찾아 돌아가니지만 결국 누구에게나 공통된 종착지에 도착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라는 것이다. 그 순간 나도 ‘자유’를 찾아 여기저기를 떠돌던 내 삶을 떠올렸다. 캐롤의 말처럼 완전히 자유로운 삶은 없었다. 우리는 그저 삶을 하루하루 채워 나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시니어 클럽에서 만난 빌은 멋진 요트를 가진 노인이다. 두 사람은 새로운 출발을 꿈꾸는 듯 보였지만, 삶은 늘 그렇듯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마치 순탄하게 흐르던 강물에 갑자기 바위가 나타나 소용돌이를 일으키듯, 빌과의 인연도 짧지만 강렬하게 캐롤의 삶을 흔들고 사라진다. 이 장면은 인생이 가진 불확실성과 유한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캐롤과 다른 등장인물들의 과거를 거의 말하지 않는다. 캐롤은 사고로 남편을 잃었고, 본인이 잠시 교사였다는 정도만 알려준다. 남편이 떠난 후 20년 동안의 그녀의 삶은 공백으로 남겨둔다. 아마도 그것은 **“어떤 삶을 살아왔든 결국 누구나 늙어가고, 누구나 이별을 겪는다”**는 메시지를 더 크게 전달하는 장치일 것이다.
나도 ‘걱정 없는 삶, 자유로운 삶’을 찾아 여기저기 헤맨 게 아닐까 곱씹어 본다.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런 삶은 없다는 걸. 대신 하루를 어떻게 채워갈지 고민하며 살아야 한다는 걸. 영화 속 캐롤의 대사가 울림으로 남는다.
찾아다니는 삶보다, 친구와 수다를 나누고, 나이든 반려견을 돌보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일상을 채워가는 삶이 더 의미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