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여름
2003년 배낭여행 당시여름의 폭염에도 불구하고 젤라또는 꼭 로마에 가서 먹으리라는 허무한 결심을 했었다. 드디어 로마의 중앙역이 테르미니 역에 내려서 젤라또 가게부터 찾았다. 생각보다 젤라또 가게는 별로 없었다. 다행히 역 맞은 편에 젤라또 가게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가장 시원해 보이는 것으로 주문했다. 동화 속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외모의 예쁜 점원이 인심 좋게 콘 한가득 젤라또를 얹어 건네 주었다. 한입 베무는 순간 ‘이것이 젤라또의 맛이구나, 역시 꾹 참길 잘 했어’라며 감탄할 맛이었다. 일반적인 끈적한 젤라또 위에 슬러시 타입의 젤라또를 얹었는데 달콤, 시원, 청량한 맛 그 자체였고, 무더운 로마의 여름을 날려 버리기에 충분했다.
(이후 로마 시내에서 몇 차례 더 젤라또를 먹었지만, 그곳만큼 인상적이진 않았다.)
수퍼마켓의 브라보콘, 월드콘만 먹었던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 가끔 베스킨 라빈스에 들러 로마의 기억을 되살려 보려고 했다. 그 맛은 나지 않았지만, 그 때부터 나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게 되었다. 특히 겨울에 먹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생수가 아직 보편화 되기 전 누군가 ‘앞으로는 물값이 기름값보다 비싼 시대가 올 것이다.’ 라고 말했을 때 무슨 헛소리냐 하며 과장으로 받아들였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고, 조금 걷다보니 갈증이 밀려왔다. 로마의 땡볕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40도의 폭염을 견디지 못하고 난생 처음 생수를 사서 마셨다. 다른 유럽국가와는 달리 이탈리아에서는 수도물을 그냥 마셔도 됐다. 그러나 노점의 카트에 놓인 얼린 페트병의 생수는 사지 않을 수 없었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냥 생수는 1.5유로, 얼린 생수는 2유로가 넘었다. 생애 최초로 로마에서 물을 사 먹은 기억도 새록새록 하다.
그 해 유럽은 수백년 만의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유럽의 가정 집에는 거의 에어컨이 없다. 고급 레스토랑이 아니면 식당에도 에어컨은 없었다. 에어컨없이 40도의 폭염을 견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저녁에 어깨와 등이 따끔거리고 가려웠다. 40도가 넘는 폭염속을 민소매를 입고 다닌 탓에 화상을 입은 것이다. 로마를 여행하는 내내 화상은 쓰리고 아렸다.
2003년 여름 로마는 폭염으로 불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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