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재료, 마법의 맛
계란후라이는 학창 시절 도시락의 단골메뉴였다. 하지만 나는 계란 후라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노른자의 비린 맛이 거슬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른자가 퍽퍽할 정도로 완전히 익혀야 겨우 먹을 수 있었다. 나는 계란후라이보다 계란말이를 좋아했지만, 식당을 하시던 엄마의 아침은 늘 바빴다. 계란말이를 부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오래 전 프로젝트 일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몇 달 머문 적이 있다. 고객사와 가까운 레지던스 호텔에 장기투숙했는데, 출근길은 10분이면 충분했다. 덕분에 호텔 조식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샐러드, 빵, 과일, 쌀국수, 중국식 요리까지 다양한 음식이 매일 뷔페로 제공됐다. 처음엔 즐거웠지만, 이런 호사는 일주일, 길어야 이주일이면 끝났다. 그 이후로는 사료를 먹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호텔 조식은 메뉴가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조합을 시험해 보면 기대는 사라지고, 곧 하나의 루틴으로 변했다.
몇 주가 지나는 동안 조식 중에 유일하게 먹지 않은 것이 있었다. 식당 한쪽 코너에서 요리사가 직접 해주는 계란후라이였다. 늘 서너 명씩 줄을 서 있었다. ‘오믈릿이라도 먹어 보자’ 하는 마음으로 첫 주문을 했다. 오믈릿은 아침에 먹기에 양이 좀 많았다. 몇 차례 먹어 보다가 버리는 셈치고 계란후라이로 주문했다.
양쪽 다 완전히 익혀달라고 했지만, 내가 원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Over-Medium’ 정도, 겉은 익었지만 노른자는 여전히 반숙이었다. 기대와 다른 계란후라이가 나와서 흰자만 먹고 노른자는 남겼다.
몇 차례 반숙 후라이를 먹다가 그마저도 지루해졌다. 그런데 계란후라이 코너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주문하는 것은 Sunny-side Up이었다. 저런 걸 어떻게 먹나 싶었는데, 일상이 지루하면 무엇이든 궁금해진다.
“As usual?”
몇 주간 계속 마주하다 보니 요리사도 아는 척을 했다.
“Nope, Sunny-side up, please”
익숙한 솜씨로 한쪽만 살짝 익힌 계란후라이가 나왔다. 노른자를 터뜨려 흰자로 흘러내리게 한 뒤 한 입 먹었다. 놀랍게도 비린 맛이 전혀 나지 않았다. 옆 테이블에서 구운 식빵을 찍어먹는 걸 본 적이 있어서 바로 시도해 보았다.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맛이었다.
‘이 맛은 뭐지?’
노른자는 동물성의 비린 맛이 아니라 새로 개발된 노란빛의 잼과 같았다. 사람들이 많이 먹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몇 주가 지난 후에 알게 된 사실이 살짝 억울하기도 했다.
그날 이후 체크아웃할 때까지 나는 매일 아침 Sunny-side Up에 식빵을 찍어 먹었다. 퍽퍽하지 않고 부드러워 아침식사로 적합했고, 과일이나 요거트를 곁들이면 훌륭한 아침 식사가 되었다.
“As Usual?”
요리사의 물음은 한쪽만 익힌 계란 후라이를 뜻했다. 몇 달 동안 매일 아침 계란후라이를 먹었지만, 그 맛은 결코 질리지 않았다.
이후에도 쿠알라룸푸르에 출장갈 일이 많았지만, 셰프가 직접 계란후라이를 해 주는 호텔은 없었다. 셰프 한 명이 전담해야 하니 호텔 입장에서는 가성비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집에서 직접 시도해 보았지만, 호텔 셰프의 맛은 나지 않았다. 다시 비린 맛이 거슬리던 옛날로 돌아갔다.
재료의 차이인지, 특별한 조리법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방인에게 주어진 깜짝 선물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매일 공수되는 신선한 계란을 몇 판씩 쌓아두고 손님들에게 계란후라이를 제공하던 요리사의 얼굴을 떠올리면 그때의 활기찬 아침 시간이 되살아난다. 거기엔 신선한 노란색을 살리기 위한 요리사의 따뜻한 기운이 빚어낸 마법의 맛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