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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을 '써먹지' 좀 마라

  유독 심리학에 대해 ‘써먹어야 한다’는 강박과 집착이 심하다. 미리미리 익혀두었다가 인간관계 내 갈등이 생겼을 때, 프레젠테이션을 잘 해야 할 때, 고객에게 효과적인 마케팅을 해야 할 때, 삶이 무기력해질 때, 즉석에서 바로바로 꺼내어 쓸 수 있는 기술(skill)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파다하다는 것이다. 심리학과 대중 간의 소통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흔히 강조하는 것 역시 ‘심리학은 실용적인 학문이다’라는 점이다. 어쩌면 소위 대중심리학(pop psychology) 담론의 생산자들은 그들이 ‘인문학도’로 비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인문학의 위기’가 닥쳤듯, ‘심리학의 위기’가 닥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심리학을 향한 대중들의 기대가 먼저였는지, ‘심리학의 위기’를 두려워한 심리학 전문가들의 몸 사리기가 먼저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그들이 주고받는 것은 심리학(心理學)의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리학의 진정한 효용은, 개별적 연구 결과들을 소소히 써먹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전적으로 무용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으나 그 같은 태도는 심리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명백한 과소평가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심리학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답은 ‘인간’에 대한 깊은 생각과 성찰이다. 즉, 심리학은 심리학답게, 심리학적인 관점으로서 인간에 대해 깊이 있게 파고들 수 있어야 한다.     





  심리학의 뿌리를 한 번 추적해보자. 심리학은 본래 ‘철학’으로부터 시작된 학문이다. 이를 방증하듯 사랑, 질투, 우정, 이성, 감정, 합리성 등등 심리학은 철학과 주제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심리학은 어떻게 철학으로부터 빠져나와 그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었는가? 그것은 바로 방법론의 차이에 있었다. 현대의 주류 심리학은 철학적 주제에 대한, 종래의 철학적 연구 방법론을 포기했다. 실험법과 통계학으로 대표되는 자연과학적 연구 방법론을 채택했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철학적 주제에 자연과학적 연구 방법론을 더한 것’이 현대 심리학의 기본적인 정체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심리학의 본질은 결국 인(人)문학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실험을 강조하고, 데이터를 강조한다 한들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문화심리학자들은 기존 심리학자들이 1879년 라이프치히 대학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심리학 ‘실험실’에 지나치게 경도된 나머지, 심리학의 창시자 분트(Wundt)가 자연과학적 심리학과 균형을 이루어야 할 또 하나의 축으로 민족심리학(Folk psychology)을 주장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해 왔다고 이야기한다. 과연 심리학은 실험심리학이면 충분한가? 과연 심리학은 인문학을 외면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분명한 답을 하기에는 아직까지 현대 심리학의 한계는 뚜렷해 보인다.     


  그 어떤 치밀한 연구 설계도 종속 변인에 대한 100% 통계적 설명량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은 심리학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나머지 설명되지 않은 부분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물론 언젠가 인간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가 깊어지고, 인간에 대한 ‘설명 모형’이 극의 경지에 이른다면 100%에 가까워질 날이 올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진한 설명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단서들은 어디서 얻어야 할 것인가? 그것은 바로 기존의 연구 성과들을 바탕으로 한, 우리들의 치열한 사유와 토론의 과정으로부터 비로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어째서 사람들은 그러한 경향성을 갖게 되었는가, 그리고 어째서 사람들은 때로 예외적인가.’ 그러한 고민이 있은 다음에야 우리는 그 통찰의 결과물들을 다시 기존의 실험심리학 진영으로 끌고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독립 변인과 종속 변인. 절대 대다수의 심리학 연구들이 단 두 가지의 변인만으로 구성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어째서 매개 효과다, 조절 효과다, 하면서 종속 변인에 대한 복잡한 방정식을 늘려가겠는가? 그것은 그만큼 인간이 복잡하기 그지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심리학 연구는 결코 인간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속 시원한, 당장에라도 써먹을 수 있는 만능 해결책을 주지 않으며, 줄 수도 없다. 심리학은 역설적으로 인간에 대한 의문을 키워준다. 당신은 ‘사람들은 원래 다 그래’, ‘인간이란 다 그래’ 하며, 더 이상 깊이 탐구하기를 포기했겠지만, 심리학은 ‘절대 그렇지 않을 걸’ 하며 다시 생각해볼 것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심리학을 아는 심리학자들은 결코, 인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함부로 떠들지 않는다. 인간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인간에 대해 알던 것보다는 모르던 것이 더 많았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무지의 발견, 어쩌면 그것이 곧 심리학의 진정한 효용은 아닐는지.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낯설게 하여 스스로를, 그리고 인간 집단을 낯설게 다시 바라보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심리학의 진짜 가치다.



심리학 논문 한 편은 문제에 대한 '종착점'이 아닌,
'의제 설정(agenda setting)의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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