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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대학원 생활, 얼마나 바쁠까?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소고

  저녁에는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이 꼭 있어서, 심리학 대학원 진학을 망설이신다는 분의 메일을 받았다. 결론은 심리학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얼마나 개인 재량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보통 연구실에서 상주하는 시간은 어느 정도인지, '퇴근' 개념이 만약 존재한다면 몇 시 '퇴근'이 일반적인지 등에 대해 상세하게 물어오셨다. 나는 이 질문을 듣고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심리학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는 모두가 '당연히', 그리고 '마땅히'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그분께 보내드렸던 답변을 한 번 보도록 하자.






  대학원에서 어느 정도의 여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는 사실 대학원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출퇴근제를 엄격히 적용하여 아침 일찍 시간에 맞춰 랩에 나오게 하고, 또 '야근' 형식으로 늦게까지 남아 연구를 시키는 연구실도 있는 반면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하도록 학생들을 배려하는 연구실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연구 활동을 반강제적으로 시키는 곳도 있으며, 반대로 학생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놔두는 연구실도 있지요. 따라서 가장 좋은 방법은 사실 현재 ㅇㅇ대 심리학과 대학원 다니는 학생들이나 졸업자들 붙잡고 물어보는 것이 최선입니다.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다음의 사실들에 기초해서 대략적으로 추정해 볼 수밖에 없겠습니다.


1. 일반대학원이냐, 특수대학원이냐.

  일반대학원은 전일제 대학원생의 개념이며 연구 활동에 중점을 두는 곳이기 때문에 특수대학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유 시간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매 학기 최소 3시간짜리 대학원 수업을 2-3개는 들어야 하고, 각종 학회나 세미나 참석, 개인 & 팀 연구 시간, 조교를 맡게 된다면 행정 업무 등등해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반면 특수대학원은 전일제가 아닌, 주/야간제 형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여유 시간이 많다는 장점이 있지요. 그래서 특수대학원에는 직장인이나 각 분야 현직자분들이 직장 일을 병행하면서 공부하시려는 분들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2. 교수님과의 협의

  대학원 생활에서 갑(甲) 중의 갑(甲)은 단연코 지도교수입니다. 따라서 지도교수님과 어떻게 협의하느냐에 따라 여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먼저 대학원에 가기 전에 '컨택'을 통해 교수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 겁니다. 즉, 저녁 시간 이후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 혹시 협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를 한 번 여쭤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교수님과의 협의에 따라, 일반대학원임에도 직장인 신분을 유지하면서 대학원에 다니는 분들도 간혹 있습니다. 제가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실제로 그런 분들을 적지 않게 봤지요.


3. 전공에 따른 차이

  인지심리, 생물심리, 행동인지신경과학 등 이공계 계열 기반의 심리학 분야들이 인문/사회계열 심리학 분야들보다 상대적으로 여유 시간이 부족할 확률이 높습니다. 이공계 심리학 쪽에서는 아무래도 동물 실험을 하는 경우가 잦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실험 쥐 등 실험동물들을 지속적으로 사육, 관리해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인문/사회계열 연구실에 비해 이공계 심리학 쪽 연구실은 24시간 체제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고 2교대, 3교대 등 팀을 편성하여 실험동물들을 보살피는 역할을 맡기도 합니다.


4. 시기에 따른 변화(특히, 일반대학원)

  대학원 연구실들도 다른 직장들과 마찬가지로 특별히 바쁜 시기와, 덜 바쁜 시기가 존재합니다. 특히 일반적인 연구 프로세스 각 단계에 따라 바쁘고, 한가한 정도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우선 연구 고민의 결과물들을 바깥으로 내어놓는 시기에는 급격히 바빠지고, 밤늦게까지 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경우가 잦아집니다. 기존 연구 논문들을 바탕으로 연구 계획과 연구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동료 연구자들에게 발표하는 시기가 있는데 이때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바빠집니다. 그동안 읽어왔던 수많은 연구 논문들의 핵심 내용과 근거를 정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발표 자료를 제작하고 연습하고, 마지막으로 수없이 쏟아질 예상 비판점들에 대한 대처 준비도 필요하죠. 


  이 험난한 과정을 거쳐 본격적인 실험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대학원생은 다시 한번 바빠집니다. 한두 번 회차에 모든 실험 참여자들을 불러, 일시에 데이터를 수집하는 형태의 실험이라면 비교적 간단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 번의 실험을 진행할 때 동시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이 한정되는 상황이라면 충분한 양의 데이터가 갖춰지기 전까지 실험 기간은 급속도로 늘어납니다. 이중은폐(double blind)를 위해 실험 진행자를 따로 둔다 해도, 연구를 설계한 대학원생은 연구 책임자이기에 연구실 바깥에서 상주하고 있어야만 하지요.


  마지막으로 모든 연구 결과를 정리하여 논문 혹은 보고서의 형태로 작성해야 할 때, 다시 한번 대학원생들은 기약 없는 야근을 직감합니다. 과학적 연구의 꽃은 정확성과 엄밀함이기 때문에 계산된 수치 상의 오류가 존재하지 않도록 많은 공을 들여야 합니다. 진술에 대한 인용 출처가 정확한 것인지 확인해야 함은 물론, 글의 논리적 구성에 문제가 없는지 가다듬을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결과물의 가독성 증진을 위한 편집 능력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특히 논문과 달리 정부/민간기관 제출용 프로젝트 보고서의 경우에는 수백 쪽 이상의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기 때문에 프로젝트로 인한 시간 소모가 크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몇 가지 단서들에 대해 설명드렸으나, 대학원이라는 곳은 원래 교수님마다, 전공마다, 학교마다 연구실 굴러가는 방식이 천차만별입니다. 따라서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어떻게든 관련 정보를 충분히 확보하시거나 '운'에 맡기는 것 외에는 별 도리가 없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대학원 생활은 참으로 바쁘다. 그것은 일반대학원이든, 특수대학원이든 마찬가지다. 일반대학원생은 전일제 대학원생으로서 연구 활동뿐 아니라 다양한 부가 활동들에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 연구 조교, 행정 조교, 대학원 행사, 학술대회 참석, 세미나 참석 등 여러 가지 시간 잡아먹는 활동들이 기다리고 있다. 특수대학원은 주/야간제로 탄력적인 학사 운영을 하므로, 그렇다면 사정이 조금 나은가 하면 그렇지도 않은 듯싶다. 특수대학원 진학을 희망하는 이들 대부분은 직장 생활과 학업 간 병행을 염두에 둔다. 따라서 학업에 투자하지 않는 시간들은 죄다 직장 생활을 위한 몫이다.


  하지만 심리학 대학원생들의 삶을 보며 바라는 것은, 심리학 대학원도 사람 사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책/논문과 내내 씨름해야 한다면, 일과 여가 사이의 균형이 파괴되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기 쉽다. 그래서 하루 종일 공부만 할 것 같은 이미지를 가진, 대학원 진학을 꺼리는 이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단지 적응의 문제일 뿐, 막상 닥치면 다 할 수 있다며 호기롭게 대학원의 문을 두드려 보지만 빡빡한 대학원 생활에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자퇴해버리고 마는 이들도 너무나 많다. 


  연구실 문을 드나드는 일이 '출근', '퇴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연구실도 상당수다. 그런데 그러한 명칭을 사용할 것이었으면, 연구실 생활을 그런 개념으로 보고 있는 것이었다면 왜 '근로시간' 등에 관한 '노동 법규'를 충분히 준수하지 않는 것인지. 대학원생 입장에서는 연구 외 활동으로 인한 자신의 바쁨, 혹은 연구 활동이라 하더라도 강제성에 기반하고 있다면 때때로 그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억울하다'는 느낌을 갖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연구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왔는데, 비싼 등록금을 내가며 들어왔는데 각종 잡무에 시달리느라 정작 해야 할 것을 못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가 안타깝게 느껴진다.


  대학원은 돈을 받고 다니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돈을 내고 다녀야 하는 곳이다. 대학원생들은 많은 것들을 감수하고, 자발적으로 대학원생의 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그러한 그들의 '간절함'이 때때로 보기 좋게 유린당하고, 역으로 이용당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때가 있다. 나는 무척 운이 좋아 인격적으로 훌륭하신 교수님들을 만났고, 무사히 졸업을 했지만 세상에는 온갖 부조리로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는 대학원생들이 더 많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듣게 되었던, 어딘가 어느 대학원생들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도대체 얼마였던지. 예전에 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이 화제가 된 적 있다. 가장 처음 그 웹툰이 등장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빠짐없이 보고 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어찌나 볼 때마다 속이 복잡해지는지 모르겠다.


  대학원 진학을 희망한다면, '근로 시간'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생활 패턴이 어떻게 되는지, 일을 놓아두고 내 '삶'을 찾아갈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려는 노력은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다. 심리학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면서, 부디 이 부분에 대한 고려를 게을리하지 않기를. 장차 심리학 대학원에 가서도 이 부분에 있어 당당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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