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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서는 왜 뻔한 것을 연구할까?

경험 과학의 속성 들여다보기

  오늘 소개해드리고 싶은 심리학 연구 관련 기사는 다음과 같다. "스트레스 많은 여성 '자살 시도' 확률 높다". 성별에 따라 자살 시도와 연관되는 변수가 상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연구로, 남성은 암 발병 경험이, 여성은 스트레스 수준이 자살 시도 확률과 더 큰 관련을 보였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여성의 스트레스와 자살 시도 간의 관계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스트레스를 크게 경험하는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약 3.6배 높은 자살 시도 확률을 보였다. 그렇다면 이 연구 결과에 대해 누리꾼들은 어떤 반응을 내어 놓았을까? 다음의 댓글들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결과가 너무 당연하다, 뻔한 것을 뭣하려 연구했느냐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직접적인 지적은 물론, 간접적인 비꼼이 등장한다. 심지어 연구자들의 진정성에 대해 의심하는 댓글 역시 찾아볼 수 있다. '스트레스'와 '자살 시도' 간 어떤 관계가 있는가? 스트레스가 높은 사람과 스트레스가 낮은 사람 가운데 누가 더 자살에 가까울까?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사실 대답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굳이 막대한 시간과 비용, 노력 들여 연구 안 해봐도, 복잡한 논문 안 읽어봐도 꽤나 직관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문제다.



아니, 스트레스가 높을수록 자살 생각을 더 많이 하겠지. 그걸 누가 몰라?



  심리학자들도 잘 알고 있다. 스트레스가 높은 사람이 더 자살 생각을 많이 하고, 실제로 자살 시도도 더 많이 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연구 시작 당시, 심리학자들도 누리꾼들과 마찬가지의 예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면서도 시간 들이고 돈 들여서 해당 연구를 진행했다. 심리학자들은 왜 그랬을까? 스트레스와 자살 시도 간의 관계. 충분히 예상 가능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굳이 연구라는 거창한 노력을 감행한걸까? 도대체 누구나 다 아는 내용들 밝혀내 봐야 어떤 좋은 점이 있다고, 그런 연구를 진행한 것일까?






  현대 심리학은 과학이다. 인문학적인 주제를 선택하지만, 그 주제에 대해 자연 과학적인 연구 방법론을 채택하고 있기에 심리학만의 독특한 정체성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자연 과학적인 연구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바로 데이터(Data)의 존재다. 이론적 배경에 따라 연구 가설을 입안하고 모집단/표본집단으로부터 수량화된 형태의 데이터를 추출/정제한다. 그리고 통계 분석을 통해 연구 가설의 타당성을 검증한다. 오늘날 심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검증' 여부다. 아무리 훌륭한 인사이트가 내포된 아이디어, 발상이라 할지라도 체계적인 자료 수집 & 분석 과정을 거쳐 경험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심리학적 지식이라고 말할 수 없다.


  심리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지도 모를, 그 유명한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역시 이 검증의 칼날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프로이트가 주장한 이론의 상당수는 데이터에 의해 검증되지 못한 채로 남았다. 그 결과, 대중이 보여주는 프로이트에 대한 상당한 관심과는 상반되게 정작 심리학계에서 프로이트의 이론은 저 멀리 변방으로 밀려나 버린 지 오래다. 정신분석학의 시대적 발자취, 의의, 그리고 핵심적인 몇 가지 아이디어는 현대 심리학의 세계에 간신히 살아남았다. 하지만 더 이상, 스스로를 정신분석학자로 규정하고 프로이트의 명맥을 정통으로 잇는다,라고 말하는 심리학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심리학 이론, 심리학 개념들은 데이터의 뒷받침을 받아야만 한다.

그림이 좀 안 예쁘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스트레스'와 '자살 시도'라는 개념이 심리학적으로 통용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데이터에 의한 뒷받침이 필요하다. 신뢰도와 타당도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해당 개념들을 측정할 수 있는 연구 도구가 개발되어야 하며, 개발된 연구 도구는 다수의 사람들을 통해 검증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 과정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심리학 이론 체계 속으로, 심리학 용어로서 편입될 수 있다. 그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과감히 말하자면 스트레스와 자살 시도는 현대 심리학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없다. 그 결과가 너무나 뻔할 것으로 예상되더라도 연구를 굳이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학적 연구 결과들은 누적되어 가며 '완벽한 이상'에 점차 다가간다. 기존 연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연구가 파생되어 한 걸음 더 약진하고, 기존 연구 결과들을 공고히 하는 가운데 또다른 새로운 연구를  파생시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하는 지난한 과정을 겪어가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하나의 개념, 어느 하나의 이론이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면, 그래서 불완전하다면 그 토대 위에 구축된 다른 파생 연구, 파생 이론과 개념들이 모두 불완전해진다. 심리학을 포함한 과학 연구자들이 사소한 개념 하나하나에도 검증에 열을 올리는 것에는 바로 이런 이유가 있다. 따라서 스트레스와 자살 시도 간의 관계를 알아보고 싶다면, 우리는 이 두 개념을 먼저 과학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오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한 번 이상의 시도를 통해 끌고 들어오는 데 성공했더라도 두 번, 세 번 반복하여 두 개념 간의 관계성을 보다 공고하게 다져둘 필요가 있다.

  이 당연하고, 뻔한 연구가 완성된 후에야 우리는 스트레스와 자살시도 간 관계에 대한 보다 복잡한 연구에 돌입할 수 있다. 두 변인 각각에, 혹은 두 변인 간 관계성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는 추가 변수들을 상정하고, 마찬가지로 엄격한 과학적 연구 방법론에 입각한 검증 과정을 통해 보다 정밀하게 이해의 폭을 넓혀갈 수 있다. 스트레스와 자살시도 간의 관계성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면, 이제 다음과 같은 추가 질문들을 던져볼 수 있다. 스트레스가 '직접적으로' 자살시도에 영향을 미치는가? 아니면 다른 변수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가? 그밖에 스트레스, 자살시도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을 과연 무엇인가? 해당 추가 변수들 간에는 또 어떤 관계가 있는가?




  정리하자면 심리학에서 뻔한 연구, 당연한 연구를 집행하는 것에는 과학의 누적성에 대한 고려, 자연 과학적 방법론의 추구, 후속 연구를 위한 초기 개념 정립, 반복 검증을 통한 밀도 있는 심리학 이론 체계와 용어의 구축 등 여러 가지 목적성이 존재한다. 연구 결과를 통해 당장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 하더라도 그 연구가 가지는 의의마저 함부로 폄하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한편, 실제 심리학 연구 논문에서는 스트레스와 자살 시도 간 모종의 관련성이 존재한다는 결과 보고를 넘어, 그 결과가 '왜' 도출되었는지, 다시 말해 스트레스와 자살 시도 사이에서 어떤 심리학적 메커니즘(psychological mechanism)이 존재하는지 등에 대한 질문까지 파고들려 할 것이다. 하지만 연구 내용이 기사의 형태로 소개될 때는 이 '왜'라는 질문이 빠진 채, 오로지 '결과'만이 소개되니 누리꾼들이 해당 연구의 의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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