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은 '배우러' 가는 곳이 아니다
나는 질문이 없는 사람을 뽑지 않는다. 대학에서 성적은 좀 안 좋아도, 궁금한 것이 있고, 구체적인 연구 질문이 있고, 그런 질문들에 대해 대학원에 진학하여 어떻게 풀어 갈 수 있는지 고민하고 준비한 사람들을 선발한다. 더 나아가 자신의 질문이 왜 중요한지 알고 있다면 금상첨화다.
김민식(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딱딱한 심리학>(현암사, 2016) 中
일반대학원이든 특수/전문/교육대학원이든 심리학 관련 전공을 선택하고자 한다면 대개 피할 수 없는 단계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학업(연구)계획서의 작성이다. 학업(연구)계획서에서는 크게 두 가지 요소가 평가된다. 첫 번째는 지원자의 글쓰기 자질이다. 모름지기 학자라는 사람은 '글'로써 자신의 실력과 성과를 증명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기가 막힌 실험 결과를 얻었다 하더라도 이를 '논문'이라는 형태로 정제해내지 못한다면 세상 그 누구도 그 실험 결과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는다. 논문뿐이랴. 심사를 위한 연구계획서, 정부/민간 프로젝트 관련 보고서, 개인 저서, 칼럼, 신문 기고, 논문지도, 하다못해 학부생 리포트 채점까지. 좋은 글을 쓸 수 없는 학자는 제대로 인정받기 어렵다. 둘째, 지원자의 비전이다. 뻔한 연구 주제를 써 놨는가, 아니면 지원자만의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엿보이는, 독창적이면서도 나름 정교한 그런 연구 주제를 써 놨는가. 주제의 시의성은 어떠한가. 이 방향의 연구를 통해 향후 어떤 진로를 모색하고자 하는가 등등 사항들이 중요하게 고려된다.
학부생은 심리학을 '소비'한다. 혹독한 검증 과정을 거치고, 이제는 위대한 업적으로 칭송받는 그런 심리학 이론, 용어들을 찾아 읽고, 외우고, 받아들이는 일을 주로 한다. 그러나 대학원생은 심리학을 '생산'한다. 기초심리학적 지식, 그리고 기존에 확립된 세부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지식과 무지의 틈을 좁혀나갈 것인지를 항시 궁리한다. 새로운 문제가 발견되었다면, 과학적인 방법을 활용하여 철저히 파고들어 간다. 논문의 형태로 정립된 새 지식은 이제 심리학이라는 거대한 탑을 지탱하는 하나의 재료가 될 것이다. 이렇듯 학부생과 대학원생 사이에는 확연한 입장 차이가 존재하기에, 대학원 입시 준비가 대학 입시 준비와 달라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학업(연구)계획서 작성 역시 예외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흔히 학업(연구)계획서를 쓰는 패턴은 어떻던가? 지원하고자 하는 대학원 홈페이지에 가서 수업 커리큘럼을 찾는다. 학기별로 어떤 수업을 듣게 되는지, 각 수업에 대한 설명은 어떠한지 등을 알아본다. 그리고 그 지식에 기초하여 미래의 수업 듣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학업(연구)계획서를 써 내려간다. 자신이 각 수업을 얼마나 성실하게 들을 것인지, 그리고 교수님의 말씀을 얼마나 잘 받아들여 나갈 것인지를 강조하며 쓴다. 한편, 졸업 후 진로 계획은 어떨까? 교수님의 말씀 잘 듣고 졸업하고, 무사히 취직하겠다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아니면 우리 사회정신 건강 제도 발전에 기여하겠다라든가, 우리나라에 학대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없게끔 하겠다든가 무척 선언적이고 두루뭉술한 마무리들이 많다. 뜻은 좋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은 현실적인 고민 없이 말 그대로 '막연히' 대학원 진학을 희망한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그러나 대학원 학업(연구)계획서가 그래서는 안 된다. 대학원에서 학업(연구)계획서를 본다는 것은, 그 지원자가 평소 얼마나 탐구 정신이 투철한지를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비록 지금 당장 들고 있는 지식의 양 자체는 많지 않더라도 미지의 현상을 포착하고, 그것을 가설로 다듬어 내며 실험 과정을 통해 새로운 또 하나의 지식으로 탄생시킬 수 있는, 그런 일을 할 자세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대학원 학업(연구)계획서에다가 '질문', 혹은 '탐구 정신'을 담지 않은 채 그저 주어진 대학원 수업 커리큘럼 따라가겠다고 써 놓는 것만큼 '나 준비 안됐습니다' 하고 티 내는 행위도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생각보다 많은 수의 대학원 입시 준비자들이 그러한 실수를 곧잘 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학원은 정제된 지식을 얻고자 가는 곳이 아니다.
지식의 양으로 한정지었을 것이면, 대학원 석/박사가 되었다고 해서 대학원 안 간 사람들보다 확연히 많은 지식을 보유한 것은 사실 아니다.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것은 '임상심리학', '사회심리학', '인지심리학' 등 특정 분야 전체의 스페셜리스트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사회심리학' 중에서도 어떤 세부 주제, 어떤 세부 개념에 대한 이해가 유달리 깊어졌음을 말하는 것이다. 가령 사회심리학의 '공정한 세상 이론(Just World Theory)'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이는, 그 개념과 인접 영역에 대해서만 스페셜리스트가 된다. 사회심리학 석/박사 되었다고 해서 사회심리학 분야 내에 모든 이론, 모든 개념에 정통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A라는 개념에 대한 주도적인 연구로 대학원 학위를 받은 이보다, 어쩌면 B라는 개념에 대해 더 많이 책도 읽고, 논문도 읽어 본 학사 학위자가 B 개념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상하다. 석/박사 학위자가 특정 영역에 정통한 스페셜리스트라면, 왜 그들은 자신이 공부하지도 않은 분야 이곳저곳에서도 인정받으며 불려 다닐 수 있는 것인가? 심리학 박사 학위자라면 심리학 전반에 대해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어디서 나오는가?
대학원 공부의 진정한 가치는 '기초 스탯'의 함양에 있다. 자료 조사 능력, 문헌 독해법, 논리적 가설 만드는 법, 연구 방법 고안하는 법, 실험하는 법, 분석하는 법, 가설 검증하는 법, 결과의 의의를 고찰하는 법 등을 배우며 그를 통해 과학적인 마인드, 논리적인 사고력, 결과에 대한 통찰력, 고급 정보에 대한 접근성 등을 기르고 단련하러 가는 곳이 곧 대학원이다. 각종 세부적 정제된 지식 하나 더 얻자고 가는 곳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지식 그 자체에 목이 말랐던 것이라면 유료 결제 후 논문 사이트 충실하게 들락거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수천만 원 이상의 등록금 가져다 바치고 학위 따느라 고생할 필요가 전혀 없다.
연구자로서 두뇌가 단련된 대학원 학위자는 그래서 가치가 높다. 비록 하나의 이론, 하나의 개념에 대해서만 연구 실적을 쌓아왔을지언정 그 과정에서 단련된 기초 실력은 결코 만만히 볼 것이 아니다. 새로운 주제에 대한 공부, 연구 과제가 주어지더라도 단련되지 않은 사람과 단련된 사람의 실력 차이, 속도 차이는 비교를 불허한다. 단련되지 않은 사람은, 하나의 지식 속에서 하나의 생각만을 얻지만 단련이 잘 된 사람은 하나의 지식 속에서도 열 가지, 백 가지의 통찰을 끌어낼 수 있다.
그래서 대학원에서는 논문을 죽어라 읽어야 한다.
단지 학위라는 스펙만을 목적으로 비싼 돈 들여 대학원에 간다면 그 사람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질문 없이, 탐구 없이, 단련 없이 어영부영 학위 논문 쓰고 졸업만 한다 해서 실력은 결코 늘지 않는다. 대학원은 그저 수업만 잘 따라간다고 되는 곳이 아니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낼 줄 알아야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만들어내는 훈련을 지속할 줄 알아야 한다. 그 한 번 한 번의 경험들이 누적되어, '고급 두뇌'로서 지녀야 할 소양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논문 읽고 질문하는 것만큼 좋은 훈련 방법도 없다. 논리적 연결성, 실험 설계의 치밀성, 대안적 설명의 가능성 등을 염두에 가며 죽어라 논문을 읽어야 한다. 소위 '있어 보이는', '유명해 보이는' 저자의 논문이라 해서 주눅들 것은 없다. 내가 논문을 읽는 순간에는 신참내기 연구자 대 고수 연구자로 만나는 것이 아니다. 학생 대 지도교수로 만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연구자 대 연구자로서, 연구 실력을 놓고 맞붙는 과정이다. 당장은 어설프더라도 끊임없이 다른 이의 논문을 비판하고, 더 나은 대안을 고민하려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한 과정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실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대학원 정말 잘 왔구나', '이게 학문을 한다는 것이구나'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