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문자 보내는 습관으로 알아보는 커플 만족도

파트너 유사성(Partner similarity)과 심리학

  최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습관을 통해 연인 간 관계 만족도를 유추할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이 발표되었다(출처, 소개 기사). 연구자들은 약 205명의 18-29세 남녀 실험 참여자들을 통해, 그들의 문자 메시지 습관(먼저 대화를 시작하는 경향,  감정 표현의 빈도, 관계 내 갈등에 대한 언급 정도, 안부 인사의 빈도, 분노 표현의 빈도 등)과 연인 사이에서의 만족도 간의 관계를 추적했다. 그 결과, 본인과 파트너 사이의 문자 메시지 습관이 유사할수록, 연인 관계의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자메시지상에서의) 파트너 유사성과 관계 만족도 간 관계




  이 연구의 함의는 과연 무엇일까? 우선 연구의 결과를 보다 구체적으로 풀어보자. 쉽게 이야기해서 카카오톡 메신저 등 연인 간 소통의 과정에서는 서로 대화의 '합'이 맞아야만 관계가 보다 원활히 풀리는 상태라 말할 수 있다는 의미다. 어떻게 보면 상식적으로 짐작하고 있던 내용이 과학적 데이터에 의해 실증적으로 검증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일방적인 연인 관계는 보통 바람직하지 않다. 일방적으로 누군가만 사랑하고, 누군가만 애걸복걸하고, 누군가만 화를 내고, 누군가만 먼저 관심을 표현하는 관계는 그다지 건강하다고 볼 수 없다. 상대방이 내게 관심을 보내주는 만큼 나 역시 그럴 수 있어야 하고, 내가 갈등에 대해 진지하게 여기는 만큼 상대방 또한 그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한편, 이 연구 결과는 연인 간 궁합(?)에 대한 심리학계의 오랜 논쟁에 대해 새삼 떠올려 보게 한다. '성격, 취향 등이 비슷한 연인이 오래가는가? 서로 다른 성격과 취향을 지닌 연인이 오래가는가?'. 우리들도 몹시 궁금해했지만, 심리학자들 역시 몹시 알고 싶어 했던 주제다. 다시 말해 심리학계에서는 그동안 소위 파트너 유사성/비유사성(partner similarity/dissimilarity)에 대한 연구와 논의들이 매우 활발했다. 성격, 취향, 습관, 행동, 가정환경, 경제적 수준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의 검토가 이뤄진 바 있는데, 상호 유사한 특성을 공유하는 파트너가 더 높은 만족도를 보인 연구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결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혹은 유사성/비유사성 여부와 만족도 간 관계가 딱히 발견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최근 한 연구에서는 연인 관계의 주기(Couple life cycle)에 따라 파트너 유사성/비유사성이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고하기도 했다(논문 정보).


  이번에 발표된 문자 메시지 보내는 습관과 연인 만족도 간 관계에 대한 연구는 파트너 간 유사성이 높은 것이 좋다는 관점에 '살짝' 힘을 실어주는 연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여기서 '살짝'이라는 단어에 강조를 두고 싶다. 연인 간 행복이란 결코 단일한 원인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다. 복합적인 개인적/사회적 변인들의 상호작용이 빚어내는 기적임은 자명하다.



본디 연인 관계 행복이란 발에 땀이 나도록 소중히 가꾸어 나가는 것이다. 오랜 노력을 통해 비로소 결실을 봐야 한다.



  단, 이 연구를 살펴보며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바로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문제다. 연구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연구자들이 상기와 같은 연구 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해 활용한 것은 기존에 이미 만들어진 척도, 연구자들이 이번 실험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낸 척도, 그리고 그것들이 담긴 설문지 뭉치가 전부다. 통제 변인을 상정하거나 시계열적 요소를 도입하거나 실험/통제집단을 나눠 처치를 달리 하는 등 여타 실험 조작이 포함되지 않은, 말 그대로의 순수한 '상관 분석(correlation analysis)' 연구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상관관계는 매우 특수한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는, 인과 관계를 가정하지 않는다.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습관이 비슷해서 서로가 만족스러운 걸까? 아니면 관계 만족도가 높으니까 문자 메시지 습관을 유사하게 서로 '맞춰 갔던' 걸까? 상관분석 결과만이 제시된 현재로서는 인과의 방향성을 단정 짓기가 어렵다. 혹은 또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원인이 되는 제3의 변인은 따로 있고, 사실 문자 메시지 보내는 습관과 관계 만족도는 각각 결과 변인에 지나지 않았을까 하는 가능성. 예를 들어, 여름철 아이스크림 소비량과 전력 소비량은 양(+)의 상관관계가 있더라도 두 변인 간 직접적 인과성이 가정되는 것은 아니듯이. 사실은 기온이라고 하는 제3의 변수가 아이스크림 소비량과 전력 소비량 모두에 인과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듯.


  대중은 흔히,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심리학적 '기술(skill)'을 좋아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연구를 통해 당장에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기술은 없다. 물론 '앞으로 그(녀)와 문자메시지 보내는 방법을 맞춰봐야지' 하고 결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논문의 결과로부터 바로 여러분의 행동 지침을 바꿔버리기에는 아직 누적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 과연 문자 메시지 보내는 습관이 관계 만족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실제로 그렇다면 효과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혹시 그 밖에 다른 이유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났는지 등등에 관한 후속 연구들이 아직 잔뜩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불확실한 '기술'에 여러분의 연애 라이프를 걸기에는 좀 성급한 감이 있다.


  차라리 인문학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좋겠다(어차피 심리학의 출발점은 철학이다. 지금은 명실상부한 과학이지만 분명 심리학이 지닌 힘의 절반은 인문학적 고민에서 나온다). 현시점에서 과학적인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정답을 좇으려는 태도는 버리고 단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 정도로 여긴다면 정말 좋겠다. 예를 들어 '그동안 내가 그(녀)에게 문자 보내는 방식에 뭔가 잘못된 점은 없었을까?', '카톡 주고받으면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은근 서로에게 아쉬웠던 점은 없었는지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정도로 받아들인다면 이 논문은 충분히 제 몫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정답은 여러분의 관계 속에서, 여러분들 스스로가 만들어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이 연구에서는 성격 등 개인차 변인이 고려되지 않았다. 성격에 따라 연구 결과가 바뀔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 이 글에 소개된 문헌

Ohadi, J., Brown, B., Trub, L., & Rosenthal, L. (2018). I just text to say I love you: Partner similarity in texting and relationship satisfaction. Computers in Human Behavior, 78, 126-132.

매거진의 이전글 심리학을 배워 먹고 산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