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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거나 게임하지, 왜 강연 듣나?

내가 생각하는 강연의 본질

  나는 강연을 하는 것만큼이나 강연을 자주 들으러 다닌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주제를 가리지 않는다. 리더십, 소통, 공감, 창의성, 힐링, 시간관리, 인문학 등등 공개강연 소식을 접하는대로 가능하면 참여 신청 버튼을 눌러두고 일정표에 기록해둔다. 그렇게 강연 덕후(?)가 되어 강연장 이곳 저곳을 기웃거린지도 약 10년이 다 되어가는 듯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학습능력이 부족했던 것인지는 몰라도 내 삶이 딱히 나아졌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그렇게나 시간과 돈을 쏟은 것이라면, 그리고 섭렵해 온 주제의 다양성을 감안한다면 지금쯤 나는 분야를 막론하고 적어도 준전문가 급은 되어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내게 남은 것은 전문 지식이나 체득된 가치로운 습관이 아니다. 그보다는 '강연'이라고 하는 단어에 대한 단편적 감상들 뿐이다.



옳은 말일 테지만, 결국 알맹이는 다르지 않더라.



  쓸데없이 내가 삐딱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강연'을 대하는 관점의 차이가 큰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강연을 곧 엔터테인먼트로 여길 수도 있다. 나를 웃겨줄 수 있는 강사, 한두시간 내내 쉼없이 박수치고 손들게 만들 수 있는 강사라면 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강연 시간 내내 유쾌했던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그래도 명색이 '강연'인지라 내게 남겨주는 교육적 메시지까지 있으니 일석이조라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내가 강연을 통해 바라는 것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지식과 통찰(insight)을 책 몇 권 읽는 것보다는 시간을 덜 들이며 깨닫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목표로 하는 것을 얻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만약 '재미'가 강연의 첫 번째 기준이 될 것이었으면 나는 결코 강연을 들으러 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같은 시간 동안 영화, 공연을 보러 가거나 집에서 유튜브를 보든, 게임을 하든 했을 것이다. 혹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 한잔을 걸치든. 강연이 아무리 재미있다 한들, 그 행사의 본질은 '강연'이고, '개그쇼'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들에 비해 엔터테인먼트적 가치는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솔직히 같은 시간과 돈이라면 강연은 게임, 영화, 드라마 못 이긴다



  '지식' 습득에만 초점을 맞추려 해도 강연이라는 선택지는 그리 매력적이지 못하다(워크샵이나 수험생들을 위한 인강, 초중고대학 수업 등은 예외로 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반 대중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위 '특강', '공개강연'이라 부르는 단발성 행사들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혼자 양질의 책이나 논문을 읽거나 토론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강연 내내 책을 읽듯, 무미건조한 지식들만 주구장창 나열하는 것 또한 '강연'이라는 행사의 본질은 아니라고 본다. 이 경우에는 그저 강연 자료만 책자 형식으로 나눠주면 끝날 일이다. 굳이 어마어마하게 돈 들이고 시간 들여 거창하게 무대 빌리고, 사람들 초대해서 낭독할 필요까지는 없다. 차라리 온라인 강의를 찍어 배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지식'에만 초점을 맞추기에는 대체제가 너무나 많다는 것 또한 문제가 된다. 언제나 항상 그렇다고 단정지어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주제를 지닌 특강들을 너무 많은데 하나하나 들으러 가면 결국 알맹이는 똑같다. 단지 어떤 연예인, 유명인, 위인의 이름을 빌려 그 지식에 권위를 더하느냐의 차이다. 혹은 어떤 시대정신, 사회현상을 얽어 지식에 시의성을 부여할까의 문제다(요즘의 경우를 예로 들면 '4차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그야말로 남발되고 있다. 저마다 스스로의 강연 내용이 '4차산업혁명'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메타포는 지식에 감칠맛을 더한다. 그냥 '리더십 강연'이라고 하면 기대도 안 되고 재미도 없겠지만, '스티브잡스 리더십', '문재인 리더십'이라고 하면 왠지 재미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맥락' 모두 제거하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상투적인 메시지 뿐이다. 메타포는 예측불허의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그래봤자 결국 이데아의 그림자 역할을 벗어나긴 힘들다. 문학이라면 또 모를까.



결국 거의 이런 결론 아닌가? 전문가가 아닌 내 머리로도 1-2분이면 생각해낼 수 있는 결론들.






  타 매체, 타 종류의 행사들에는 없는 '강연'만이 지닐 수 있는 가치는 뭐가 있을까를 한참 고민했던 적이 있다. 단 1-2시간만의 짧은 시간을 통해 내어줄 수 있는 최고의 결과물. 그리고 나는 결국 그것이 통찰(insight)이어야 한다는 나름의 결론을 냈다. 적절한 유머가 있고, 받아 적을 수 있는 지식이 적당히 있다면 매우 좋다. 그것은 강연의 맛을 잘 살려줄 수 있는 최고의 양념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단지 양념장을 먹으려고 음식을 주문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한번쯤 사람들이 그 자신의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통찰력이야말로 우리가 강연을 통해 진정 맛보고 싶었던 핵심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강연자가 시도해 온 깊은 사유의 결과물을 정제하여 내어놓는 것. 단편적인 지식이나 엔터테인먼트가 주가 아니라 생각, 고민이 주가 되는 것. 그것이 강연을 통해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결과물이라 생각했다.


  지식을 판매하는 강사가 있다. 그리고 통찰력을 판매하는 강사가 있다. 전자는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다. 밑줄치고 외우는 노력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지식에 영혼을 불어넣는, 통찰력을 판매하는 강사가 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정말 나이브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통찰력 있는 강연/통찰력 없는 강연의 구분 방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왜 꼭 많고 많은, 비슷한 강연 중에 저 강연을 들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고려가 보이지 않는 강연이 숱하다. 공감, 리더십, 힐링, 인문학, 소통, 유머, 스피치, 마케팅 등의 주제는 강연 시장의 단골 소재다. 진입 장벽도 상대적으로 낮고, 누구에게나 중요한 주제이다보니 무명의 강사라도 비교적 관심을 얻기가 수월하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어차피 같은 주제의 강연이 널리고 널렸는데, 왜 꼭 이 강연이어야 하는가?' 라고 물어봤을 때 답을 낼 수 있는 강연이 많지 않다. 포장지가 다를 뿐 결국 알맹이는 상투적이다. 속된 말로, 다 아는 이야기를 적어 놨다. 누군가야 재미만 있다면, 비유가 찰지다면 그만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강연을 들을 때 '통찰'의 가치를 중시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닥 만족스러운 강연이 아니다. 반면 담긴 지식은 좀 부족해도, 결과물이 그리 세련되진 않아도 꿋꿋이 자기 할 말 하는 강사들도 있다. 차라리 나는 그런 강사들의 강연을 사랑한다. 어차피 내가 무비판적으로 그 내용을 받아들일 것도 아니기에, 그가 가진 그 '새로운 관점'에 대해 한 번 고민해보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큰 공부가 되는 듯해서다.


  이 글을 쓰면서도 한편 두렵다. 나는 강연을 듣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강연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 직업을 배제하고 단지 강연 덕후(?)의 입장에서만 써 본 것이라 말하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되리라는 것을 안다. '네 강연부터나 그렇게 잘 만들어라' 라고 하실 분들 많을 거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글을 맺고 싶다.



죄송합니다. 노력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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