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가르기'의 사회심리학
2010년대에 접어들 무렵이다. 군대 다녀와 복학생의 신분으로 다시 학교 적응에 열을 올리고 있던 나는 어느덧 취업보다는 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특히 내가 공부하고 싶었던 전공은 사회심리학(Social psychololgy)이었는데 사회심리학 전공이 설치된 몇몇 대학원들을 알아보니 공통적으로 '연구 계획서' 제출이 필요하다 했다. 그리고 그럴듯한 연구 계획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의 구체적인 관심 주제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회심리학이라 해서 다 같은 사회심리학이 아니더라. 한 분야 내에서도 내가 관심 가질 수 있는 주제, 이론, 개념은 무수히 많았고 나는 그중에서도 특히 내 관심을 끄는 주제를 골라내야만 했다.
집단(Group)
이제 막 대학원의 길을 꿈꾸던 내가 관심을 갖고 있던 주제였다. 어찌 보면 사회심리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으레 흥미를 가질 법한 주제이기도 했다. 군중심리, 몰개성화,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 동조(Conformity) 등등. 아직 20대 초중반의, 사회 정의(Social justice)에 대한 관심이 마르지 않았던 때다. '어떻게 하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세대 간 갈등, 계층 간 갈등 등의 문제를 바라보게 했고, 그것은 곧 '집단'이라는 현상에 대한 이해 욕구로 귀결됐다. 어떻게 하면 집단 간 갈등이나 상호 편견을 줄일 수 있을까? 연구 계획서에 내가 담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에 대한 힌트를 어느 한 고사 속에서 발견하게 됐다.
오월동주(吳越同舟): 서로 적의를 품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있게 된 경우나 서로 협력하여야 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중국 춘추 전국 시대에, 서로 적대시하는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탔으나 풍랑을 만나서 서로 단합하여야 했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출전은 ≪손자(孫子)≫ 의 <구지편(九地篇)>이다.
내가 생각해낸 것은 가령 이런 상황이다. 같은 지역에 사는 A와 B는 견원지간이라 불려도 좋을 만큼, 늘 서로에게 감정이 좋지 않고 티격태격하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 날, 서로 간 이해의 충돌이 있어 A와 B는 격렬한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누가 더 많이 가져갈 것인지에 대해 한참을 싸우던 도중, 그들 곁에 불쑥 나타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C였다. C는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작심한 듯 큰 목소리로 한 마디 한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요? 상황을 좀 크게 보시오. 저 바깥에 여러분이 싸우다 지치길 기다려 어부지리를 노리려는, 옆 지역에 사는 저 힘세고 영악한 D가 보이지 않소? 지금은 여러분 서로가 힘을 합쳐야 할 때요!' 그러자 A와 B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신기하게도 예전만큼 서로가 그렇게 미워 보이지 않았다. '그래, 서로 싸우기 이전에 우리는 같은 지역에 사는 이웃사촌이기도 하잖은가.'
오래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막연히 기억하건대, 내집단-외집단을 가르는 인식의 범위를 재편하는 방법을 통해 집단 간 갈등/편견을 완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것이 연구계획서에 적어 낸 나의 가설이었다. 대학원 입시 면접에서 이 아이디어에 대해 어떤 질문을 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운이 좋게도 나는 대학원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대학원에 와서는 뭣도 모르던 풋내기 시절 써 놓았던 저 연구 아이디어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공부가 부족했던 것인지, 다른 연구 주제들에 관심을 빼앗겼던 것인지. 아마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도중, 나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기회에 약 7-8년 전 입시용 연구 계획서에 적어 두었던 그 연구 아이디어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역시나 세상에 새로운 생각이란 없다. 찾아보면 꼭 어디엔가 나보다 먼저 그 생각을 한 사람이 있다…).
재범주화(Recategorization)
사회심리학자 타즈펠(Tajfel)의 가장 유명한 이론 중 하나는 바로 사회 정체성 이론(Social identity Theory)이다. 집단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은 내집단(ingroup)과 외집단(outgroup)으로 나뉘며, 내집단을 선호하되 외집단은 배척하는 편향성이 나타난다는 것이 저 유명한 이론의 골자다. 그리고 사회 정체성 이론의 등장 이래, 많은 사회심리학자들이 저 '편가르기 현상' 기저에 작동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데 주력해왔다. 예를 들어 연구자들은 도대체 사람들이 어떤 기준을 갖고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분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리고 내집단이 외집단이 되고, 외집단이 내집단이 되는 그 경계가 어디인지에 대해서도. 그러한 고민들 끝에 나온 값진 아이디어가 하나 있었으니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집단 구분의 경계를 흔드는 전략, '재범주화(Recategorization)'였다.
재범주화 전략은 기본적으로 집단을 구분하는 '다른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가령 인종 차별의 맥락에서, A인종 사람이 B인종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는 A인종 사람에게, B인종 사람 또한 같은 국가 사람이라는 것('인종'이라는 기준 대신, '국가'라는 다른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A와 B를 같은 집단 구분 하에 포함되도록 경계를 재편)을 강조할 수 있다. 혹은 인종 구분을 떠나, B 역시 A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힘주어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탈범주화(Decategorization)라 해서, 내집단/외집단을 나누는 기준 자체를 무너뜨림으로써 결과적으로 집단 간 갈등/편견을 해소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전략의 방향성은 '집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집단 속 다양한 '개개인'들을 향하는 것으로 바뀐다.
재범주화 메커니즘은 우리 사회 곳곳에 얼마든지 숨어 있다. 대표적인 예를 한 가지 더 들어보자. 언제부터인가 '외국인들의 반응을 보는 컨텐츠'가 유튜브, TV 등 각종 매체에서 많은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삭힌 홍어, 불X볶X면, 골뱅이무침, 번데기 등 외국인들에게 자극적일 수 있는 한국 음식을 맛보는 외국인들의 반응이라든가, K-Pop, 한국 관광지, 한국 영화 등 한국 문화를 경험하는 외국인들의 이야기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외국인들이 걸쭉한 한국말로, 우리와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면 시청자들의 반응은 배가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외국인 반응 컨텐츠'들을 사람들이 즐겨 보는 이유는 뭘까?
첫째, 본질적으로는 나와 다른 대상에 대한 호기심이다. 아무리 지구촌, 지구촌 하고, 인터넷, 인터넷 해도 국가 간의 장벽은 여전히 높다.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켜 온 국가 간 장벽은, 각 나라마다 매우 이질적인 고유의 문화들을 만들어내게 했고 그 영향력은 무척 뿌리 깊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 가면 익숙한 것들보다는 익숙하지 않은 것이 더 많다. 하물며 우리나라 내에서도, 한두 시간 기차 타고 다른 지역에만 가봐도 내가 사는 곳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 느껴지는데 훨씬 멀고 먼 외국이라면 오죽하겠는가. 그 거리만큼이나 나와 다른 대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그것이 경계이든 즐거운 호기심이든 분명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둘째, 약간의 '국뽕' 또한 무시할 것이 못된다. 정도의 차이일 뿐, 국가국민이라면 대개 자신이 속한 국가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즐긴다(국가대항전, 올림픽 흥행의 밥줄이 바로 이 '국뽕' 아니겠는가). 그래서 매체에 등장하는 외국인들은 대개 한국 문화를 긍정한다. 처음에는 이질적이고 당황스럽다가도 금세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흔한 패턴이며 심지어 그것을 본고장의 문화보다도 더 좋아한다고 말하는 외국인도 적지 않다. 그 '훈훈한' 장면을 보는 우리들의 마음이야 뭐.
이 '외국인 반응 컨텐츠'를 보며 우리가 어떤 심리를 갖게 되는지 한 번 생각해보자. 결과론적으로 우리는 영상을 본 후, 그 외국인에 대해 '친근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데, 그 느낌을 갖게 되는 과정 속에는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던 '재범주화(Recategorization)' 메커니즘이 숨어 있다. 왜냐하면 외국인들의 반응을 보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곧 '그들도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구나'라는 감상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내가 좋아하는 관광지, 내가 좋아하는 음식, 내가 좋아하는 문화를 저 먼 타지에서 온 외국인도 똑같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혹은 한국이 좋아 무작정 한국으로 와 힘겹게 적응해가는 모습을 보면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된다. '사람 사는 건 어딜 가나 마찬가지구나',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구나'와 같은.
그들을 보기 전까지 우리의 범주 구분은 이렇다. 우리는 '한국인'이니까 내집단. 그들은 '프랑스인', '미국인', '베트남인', '호주인'이니까 외집단. 그러나 우리와 그다지 다를 것 없는, 외국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기존의 범주는 상위의 단일 집단으로 재범주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어느 나라 국민'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닌, 너도 나도 다 같은 '사람'이라는 포괄적 인식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재범주화를 통해 느껴지는 친근함은 자연스럽게 한국인 아닌 그들(외집단)에 대한 편견을 감소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러한 재범주화 전략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경험(Experience)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공동의 경험을 통한 '접점'의 발견이다. 그런 면에서 재범주화 전략이 가져다주는 효과성은 선구적인 심리학자 올포트(Allport)가 1950년대에 주장한 접촉 가설(Contact Hypothesis)과도 맞닿아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이야기한다. 접촉 가설의 핵심은 상대에 대한 편견을 낮추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직접 접촉함으로써 그 편견이 사실이 맞는지, 아닌지를 확인해보면 된다는 것이다. 공동의 경험 속에서 타인의 숨은 매력이나 나와의 공통점 등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서로가 서로에게 가진 편견을 해소하고 친구로 거듭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 올포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접촉 가설을 들여다보고, 사회 정체성 이론을 보고, 재범주화 전략을 다시 보면서 내가 느꼈던 교훈이기도 했다.
** 참고문헌
Allport, G. W. (1954). The nature of prejudice. Oxford, England: Addison-Wesley.
Tajfel, H. (1982). Social psychology of intergroup relations. Annual review of psychology, 33(1), 1-39.
Gaertner, S. L., Dovidio, J. F., Anastasio, P. A., Bachman, B. A., & Rust, M. C. (1993). The common ingroup identity model: Recategorization and the reduction of intergroup bias. European review of social psychology, 4(1), 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