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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기술

기적 질문법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최근 달은 정말 바빴다. 신생아가 태어나고, 육아하느라 일단 밤낮이 바뀌었다. 감사하게도 굵직한 외주 업무 요청 2건이 들어와서 검사 개발하고 데이터 분석하느라 새벽까지 업무 자리에서 일어나기 어려웠다. 하루하루 예정된 납품일은 다가오고, 아직 분석해야 내용은 많았기에 잠깐 쉬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눈 딱 감고 뜨면 다 해결되어 있으면 좋겠다.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눈 딱 감고 떠 봤더니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었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니 작업 중인 PPT 화면과 통계 프로그램 결과 창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아, 밤낮으로 고생하니까 제정신이 아니네'. 찬물 세수 하고 와서 나는 하던 일을 계속했고, 결국 기일 내에 무사히 작업들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가끔 공상에 빠질 때가 있다.


잘 나가는 상상을 한다. 지금보다 더 바쁘게 강연 다니고, 브런치 스토리의 조회수가 폭발하고, 내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이 알고리즘을 타고 '인급동'이 되는 상상을 한다.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가는 상상, 아내에게 명품 가방을 떡 하니 선물하는 상상도 해본다. 돈 걱정 없이, 생계 걱정 없이 가족들과 해외여행 다니며 안락한 삶을 사는 상상도 해본다.


나는 이게 동기부여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잘 되는 미래를 상상하고 나면, 뭔가 나에게 자극이 되지 않을까? '행복해지고 싶지~? 그럼 움직여야겠지?' 자신에게 은근히 채찍질하는 셈인데, 사실 그런 공상에 빠져 있다 보면 잠깐 힘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 열심히 해보자!' 의욕이 순간적으로 넘친다. 그래서 일단 컴퓨터 앞에 앉는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뭐라도 해야겠다



이쯤 되면 공상의 순기능이 아닐까 싶을 것이다. '잘 되면 얼마나 좋을지 한번 생각해 봐, 이래도 그냥 놀고만 있을 거야?' 이런 자극이 때로 동기부여가 될 때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분 좋은 공상이 주는 자극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의욕이 넘쳐 일단 뭐든 시작은 해보지만 금방 의욕이 죽어버린다.


사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야말로 위험한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하나같이 지적한다. 의욕만 들이부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의욕보다 필요한 것은 프로세스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 목적을 이룰 것인가에 대한 계획과 절차 말이다.






심리상담 기법 중에는 해결중심상담이라는 게 있다. 해결중심상담의 아이덴티티는 내담자의 당면한 문제를,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있도록 개입한다는 거다. 대개 심리상담이라는 게 1회기 50분 정도, 해서 8~10회기까지도 가지 않는가? 맨날 하는 것도 아니라서 모든 회기를 다 마치려면 기본적으로 몇 달은 걸린다. 반면 해결중심상담은 그렇게 긴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해결중심상담에서 사용하는 기법 중에는 기적질문법miracle question이라는 것이 있다. 기적질문법을 사용하는 상담가는 내담자에게 일종의 상황극을 주문한다.



잠을 자는 동안 기적이 일어나 당신이 가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처음에 내가 개인적인 일화를 들어가며 언급했던 '기분 좋은 공상'에 해당한다. 비록 현실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공상을 통해 내담자는 고무된 기분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이다. 상담가는 공상에 빠져 있는 내담자를 그냥 놔두지 않는다. 이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챌 수 있었나요?

어떤 노력을 통해 그러한 문제가 해결되었을까요?



이 질문을 받은 내담자는 이제 '공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공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가정들을 검토하기 시작한다. 주어진 자원은 무엇이 있는지, 내가 어떤 노력을 했어야 하는지,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플랜은 무엇이었는지 가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자면 저 '기적'(이자 '공상')이 일어난 이유가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적질문법은 일종의 '역발상'이다. 문제를 앞두고 우리는 헤맨다. 뭐라도 해야 하겠긴 한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뭘 해야 할지 몰라서 혼란스러워하다 결국 원하는 만큼 진도를 빼지 못한다. 이럴 때 기적질문법은 우리로 하여금 문제가 해결되어 있는 미래로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다고? 그럼 (문제를 해결한) 미래의 당신 자신에게 어떻게 해결했는지 물어보고 와!'



출처: 내 강연 자료



중요한 것은 현재에서 단서를 얻든, 미래에서 단서를 얻은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공상에만 머물면 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계획, 실천 전략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심리학계에는 질문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들이 기적질문법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여러분은 혹시 정신적 시뮬레이션mental simulation에 대해 들어봤는가? 흔히 운동선수들이 시합 전에 '이미지 트레이닝'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걸 떠올리면 된다. 정신적 시뮬레이션이란 미래의 자신의 상황이나 행동을 머릿속에서 재현해 내는 정신적 과정을 말한다.


정신적 시뮬레이션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한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상상하는 '과정 시뮬레이션process simulation',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를 상상하는 '결과 시뮬레이션outcome simulation'이다. 과정 시뮬레이션과 결과 시뮬레이션, 어떤 상상이 더 문제해결에 효과적일까?


데이터들은 과정 시뮬레이션의 손을 들어준다. 이에 관한 연구 결과를 보면, 다른 모든 조건이 같을 때 과정 시뮬레이션을 반복한 학생들이 결과 시뮬레이션을 반복한 학생들보다 학업 성적이나, 과제 마감 기한 준수 등 여러 면에서 더 나은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뭔가를 이루고 싶다면 공상에 빠지는 대신, 차라리 구체적인 해결 과정을 하나라도 더 생각하라는 교훈일 터이다.


심리학자 외팅겐Oettingen의 주장 역시 참고할 만하다. 그의 대표적인 개념으로는 정신적 대조mental contrasting 라는 것이 있다. 외팅겐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목표를 이루고자 할 때 긍정적인 상상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잘 될 거라는, 안일한 생각에 젖어 있다 보면 차일피일 미루기 쉽고, 현실에 안주하며 결국 문제 해결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팅겐은 미래에 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하되, 꼭 반드시 '현실적인 장애물'을 곁들여 같이 상상해야 효험을 볼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의 주장은 'WOOP'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소원하기(Wish), 결과(Outcome), 장애(Obstacle), 계획(Plan)의 줄임말이다. 소원하고, 바람직한 결과를 상상하되, 현실적인 장애물과 계획에 대한 고려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출처: https://www.creativehackers.co






지금까지 공상과 문제해결에 관한 심리학적 개념들을 살펴봤다. 핵심을 정리하면 기적에 대한 바람은, 반드시 현실적인 계획에 대한 뒷받침을 동반할 때 강력한 동기부여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적질문법: 미래의 나에게 문제 해결 방법을 질문하기

과정 시뮬레이션: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정신적 대조: 소원, 결과, 그리고 장애물과 계획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는가? 막막한 과제가 있는가? 고민이 있는가? 그렇다면 계획이 먼저이다. 일단 마음을 추스르고 단 한 걸음이라도, 단 한 발자국이라도 내가 어디로 딛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가장 좋다. 


스트레스 대처stress coping 전략 중에서는 '소망적 사고'라는 것이 있다. 문제 해결은 안 하고 '잘 됐으면 좋겠다', '해결됐으면 좋겠다', '기적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스트레스를 달래는 사람들을 유형화한 것이라 보면 된다. 심리학자들은 '소망적 사고' 기법을 권장하지 않는다. 잠깐 기분은 나아질지 몰라도, 결국 스트레스의 원인을 해소하는 데에는 실패하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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