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린치핀이란 게 뭔데?
“너는 똑똑하고 공부를 잘하는 편이니까, 법대에 가서 판검사가 되는 게 좋겠다”, “좋은 대학 가서 전문직 자격증을 따면 인생이 편해져”. 학창 시절, 주변의 어른들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말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나름대로 공부 머리가 있는 편이었다. 그걸 깨달은 건 중학교 들어가서 처음 본 중간고사 때였다. 정말 대충 공부하고 시험 쳤는데 종합 성적으로 전교 3등이 나와 버린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놀라셨고, 선생님도 놀라셨고, 무엇보다 나도 놀랐다. 그 길로 나는 내 포지셔닝을 ‘모범생’으로 고정해 버렸다. 그전에는 수업도 가끔 빼먹고, 이것저것 새로운 공부도 하고, 나름대로 자유로운 사람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전교 3등’이라는, 행운이자 ‘불행’인 사건을 겪은 이래로 내 목표는 ‘전교 2등’, ‘전교 1등’으로 고정되어 버렸다.
국영수의 노예가 되고, 학교에 순응하던 내가 본격적으로 시스템에 반항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던 즈음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과거 ‘전교 3등’의 굴레 이전,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새삼 떠올렸다. 이대로 취업길에 나서서 남들처럼 회사에 들어가 비슷비슷한 일을 하며 장삼이사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나만의 특별한 재능과 잠재력을 추구하는, ‘린치핀’ 다운 삶을 추구할 것인가. 답은 후자였고 나는 망설임 없이, 소위 ‘돈이 안 된다던’ 심리학 대학원 진학에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 그렇게 약 10년이 지난 현재, 나는 회사원이 아닌 나만의 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기존 시스템에 의지하지 않고도 오롯이 나만의 힘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위치에 다다른 것이다.
린치핀이란 게 도저히 무엇인지 모르겠다
도서 <린치핀>은 분량이 많다. 마지막 페이지를 들추니 ‘463’이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 긴 분량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서 해결되지 않았던 질문이 있었다. “아니, 도대체, 그래서, 린치핀이란 게 뭔데? 그게 누군데?”. 저자는 린치핀이 도대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인지 명확히 정의하지 않는다. 대신 어디서 본 듯한, 여느 혁신 강연에서 나올 법한 거창한 표현들로 ‘린치핀’의 특징을 설명해 준다.
각자 도생하자
평범함을 거부하자
인간성을 회복
인터넷의 잠재력을 활용
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대체 불가능한 사람
순응보다는 리더십
자유로운 예술가
감정노동을 즐김
선물하는 삶
창의성과 통찰
아직 <린치핀>을 읽지 않은 여러분은 위에 나열한 단어들을 보고 공통점을 추릴 수 있겠는가? 워낙 다양한 의미들이 얽혀 있어 아마 쉽지 않으리라 본다. 저자는 본문 내내 린치핀이 되기 위한 방법조차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다. 그나마 다음과 같은 내용을 통해 린치핀이 되기 위한 수많은 방법 중 몇 가지만 단편적으로 암시할 뿐이다.
“바로 실천하기, 관계 맺기, 베풀기를 통해서다. 과도할 정도로 많은 정보를 인터넷에 띄워라. 자신의 전문 영역에 대해 통찰력 있는 글을 올려 다른 사람들이 계속해서 참고하고 인용하도록 만들어라. 온라인을 통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라.” (본문, 150쪽)
“조직 구성원들만의 고유한 통로를 만든다, 고유한 창의성을 발휘한다, 매우 복잡한 상황이나 조직을 관리한다, 고객들을 이끈다, 직원들에게 영감을 준다, 자신의 분야에 깊은 지식을 제공한다, 독특한 재능을 지닌다” (본문 419-420쪽)
그 외에도 본문 곳곳에서 힌트를 제공하긴 하지만 어쨌든 <린치핀>은 여타 자기 계발서와 달리 독자들에게 명확한 행동 지침을 내리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린치핀이 되기 위한 ‘매뉴얼’조차도 린치핀의 정신(매뉴얼에 입각한 수동적인 일 처리)에 어긋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대신 저자는 긴 분량을 할애하여 왜 사회가 낡았고 고루한지를, 어쨌든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왜 당신 자신이 변해야만 하는 것인지를 일관되게 역설하고 있다.
당장의 엄청난 변화나 실천을 이끌어내기보다는 독자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건드리고, 마음을 동요시키며,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아 엉덩이를 조금이라도 들썩이게 만드는 것이 주된 목적으로 느껴졌다. 독자 입장에서 ‘세상은 낡았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나름의 내적 확신이 들었다면, 그래서 이전의 방식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마음먹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저자가 생각하는 린치핀의 참된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는 두렵다, 하지만 변화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사실 무한한 선택의 바다 앞에 서면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싶어 진다. 그래서 지도를 찾고, 지침을 요구하고, 지난번에 했던 대로 반복한다. 이전 방식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린치핀은 구조적인 한계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새로운 길, 효과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본문, 123쪽)
변화를 주문하는 책은 많다. 수많은 책과 메시지들이 우리에게 이런 사람이 되어라, 저런 사람이 되어라 요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현재 가지고 있는 얼마 간의 안정감을 내려놓기 어려워한다. 하지만 이 모든 저항과 두려움에 대하여 회피하는 대신, 그런 ‘도마뱀 뇌’를 명확하게 자각하고 어떻게든 한 걸음이라도 내디뎌보고자 발버둥 쳐 보려는 사람들이 곧 ‘린치핀’이다.
그리고 그런 린치핀(들)이 진심이 담긴 감정노동을 통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물을 통해, 자유로운 예술성의 발현을 통해, 순응보다는 과감한 리더십을 통해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일단 단 한 걸음이면 충분하다. 지금은 사소해도 괜찮다. 하지만 그 의미 있는 내딛음이 여러분의 이름이 구글 검색결과에 내걸리도록 만들어줄 것이다. 낡은 시스템에 순응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창조하며 돈을 벌 수 있는 린치핀이 되도록 도와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구매 링크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4658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