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서킷 트레일 6일 차 파이네 그란데 산장~프란세스 산장)
산행일 : 2023년 3월 14일 화요일
산행지 : O서킷 트레일 6일 차 (파이네 그란데 산장~프란세스 산장)
누구랑 : 산찾사 & 오석민
로
그란데 산장 07:49 출발
이탈리아노 산장
프란세스 전망대
브리타니코 전망대
이탈리아노 산장 도착 후 늦은 점심
프란세스 산장 16:12 도착
산행거리 : 21.73km 산행시간 : 08:23 (오룩스맵에서 기록된 산행 정보로 표기)
(산행지도)
전날부터 계속 비가 내린다.
지금까지 날씨 복은 환상일 정도로 좋았는데 오늘은 비를 좀 맞아야 할라나 보다.
배낭에 커버를 씌운 후 상하 오버트러우저로 무장을 했지만
막상 빗줄기가 쏟아지는 길을 나서자니 망설여진다.
그래도 어쩌겠나
맞아야 할 비라면 맞아야 쥐~
우린 용감하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산장을 나섰다.
얼마쯤 걸었을까?
몇 컷 찍지도 못했는데 디카가 습기를 먹어 오작동을 한다.
그래서 오늘은 핸드폰 사진으로 풍경을 담았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석민씨 디카엔 내 인물사진이 많이 담겼다.
그나마 다행인 건 줄기차게 비는 내리지만 바람은 잔잔했다.
등로 또한 편안해 걷기엔 불편함이 없었지만 상하 오버트러우저를
껴 입은 탓에 걷는 동안엔 더위로 땀에 젖고 비에 젖어 상의가 벌써 축축하다.
비는 내리지만 풍광만큼은 환상이다.
진행방향 좌측엔 설산을 휘감은 운무가 희롱하고
우측엔 스꼬뜨스 베르그 호수가 걷는 내내 우리와 함께했다.
그렇게 걷다 계곡을 넘어선 후
얼마쯤 들어서자 이정목이 우릴 반긴다.
지금까지 우린 7.5km를 걸어왔고 직진하면
오늘 우리의 보금자리 프란세스 산장은 2km로 가깝다.
그러나 우린 여기서 좌측 방향으로 5.5km를 왕복하는 브리타니코 전망대를 다녀와야 한다.
박배낭을 매고 그곳까지 왕복하긴 힘들다.
그래서 트래커들 대다수는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내가 서있는
뒤편의 이탈리아노 야영장에 배낭을 두고 브리타니코 뷰 포인트까지 왕복한다.
우리도 그곳에 배낭을 보관하며 나는 젖은 상의를 갈아입었다.
그런 후 나의 서브 배낭에 식수와 간식만 넣은 채 길을 떠났다.
석민씨는 예전에 이미 이곳을 다녀온 관계로 비가 계속 내려 조망을
볼 수 없는 상태면 도중에 그냥 내려가겠다 하여 어쩌면 나 홀로 산행을 해야 될 상황이다.
그런데...
나는 외국을 여행할 때마다 날씨 복은 타고났나 보다.
이번에도 고도를 올릴수록 비는 싸락눈이 되어 날리더니
그마저도 뜸해지고 날이 개이며 운무에 잠겼던 설산이 드러나고 있다.
그뿐인가?
몸을 돌리자 저 아래엔 에메랄드빛 노르덴스크 홀드 호수가 내려다 보인다.
햐~!
저런 물빛을 언제 보았던지?
그 옛날 밀포트에서 보았던 푸카키 호수의 물빛이 저랬다.
올라설수록 더 환상적인 풍광이 드러난다.
그냥 형편 것 걷다가 되돌아가겠다던 석민씨는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예전 올랐을 때 풍광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 때문이리라.
드디어 도착한 전망대....
이곳 이정목엔 Mirador Frances Lookour이라 표기돼 있다.
스페인어로 미라도어는 전망대란 뜻...
바로 이곳이 프라세스 전망대인데 오늘 구간 중 백미인 풍광였다.
대다수의 트래커들은 프란세스 전망대에서 발길을 돌린다.
그러나 우리 목표는 브리타니코 전망대라 그곳을 가리킨 이정목을 뒤로 보냈다.
브리타니코 전망대를 향해 프란세스 계곡 가까이
다가설 땐 빙하 녹은 물이 바위에 부딪히며 내는 굉음에 귀가 다
멍멍 했지만 그곳을 벗어나자 졸졸졸 흐르던 개울 숲 속 사이로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숲 속을 빠저 나온 등로는 넓은 개활지로 연결되자 그곳에서 바라본 풍광이 선경이다.
파이네산은 병풍처럼 둘러 쳐진 침봉 사이로
운무가 가득하여 시시각각 다른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그 모습에 취해 걷다 보면 이젠 이곳도
가을로 접어든 계절임을 알려준 풍광이 반긴다.
여긴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의 중심에 서있다.
개활지를 넘긴 등로가 한차레 경사를 올려놓았다.
힘겹게 그 오름길을 올라서자 등로는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막아 놓았다.
이정목엔 스페인어로 통행금지 트레일 끝이라 적혀있다.
실제 브리타니코 전망대는 여기서 아주 가까운 거리인데 무슨 이유로 막았을까?
더 이상 오를 수 없다기에 우린 이곳에서
핸드폰 셀카로 기념사진을 남긴 후 아쉽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왔던 길을 그대로 내려서던 우린 방금 걸어 올랐던 개활지를 다시 만났다.
그런데...
그땐 아름다운 설산에 빠저 미처 보지 못했던 산불의 흔적들이 눈에 들어온다.
예전 산행지도를 보면 여긴 브리타니코 야영장으로 표기 돼 있다.
이곳은 오래전 야영을 하던 이스라엘 트래커가 불을 낸 상흔이란다
개인의 한순간 실수가 그 나라의 명예를 영원토록 실추시킨 부끄러운 현장이다.
왔던 길을 그대로 걸어 내려온 우린 이탈리아노 산장에서 늦은 점심 식사를 했다.
올라갈 때 도시락 한 개라도 챙겨 갈걸이란 후회가 들 만큼 배가 고팠던 우리에게 이날
점심은 그동안 걸어야 하기에 의무적으로 먹어야만 했던 그 햄버거가 아녔다.
ㅋㅋㅋ
역시 시장끼가 맛난 반찬이다.
식사 후 프란세스 산장까진 거리가 가까워 금방 도착했다.
이곳 산장은 돔형 구조의 시설인데
2층으로 된 침실이 있고
거실의 화목난로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어
그 주위엔 비를 쫄딱 맞은 트래커의 옷가지와 등산화가 널려있다.
우린 도착하자마자 먼저
샤워로 몸을 씻은 후 따스한 난로 곁에서 휴식을 취했다.
오늘 우린 단 하룻만에 참 여러 가지를 보고 느꼈다.
난로 곁에서 몸이 풀리자 기분 좋은 나른함이 전신으로 번지며
내가 겪었던 오늘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난다.
줄기차게 내리던 빗줄기.
흩날리던 싸락눈.
곱게 물든 단풍.
운무가 희롱하던 설산의 풍광.
산에서 내려보던 에메랄드빛의 호수.
오늘은 날씨 탓에 힘은 좀 들었지만
사실 이런 경험들은 오히려 더 영원히 기억될 것 같다.
저녁식사 시간....
식당에 들어서자 만석이라 앉을자리가 없다.
그러자 이곳 직원이 자리를 좁혀주며 우릴 앉힌다.
항상 가는 곳마다 그렇지만 저녁만큼은 푸짐하고 맛도 뛰어나다.
그런데....
한국의 밥상머리 예의는 항상 조용해야 하지만
여긴?
왁작지껄 귀가 따가울 정도로 요란 맞다.
그러면서도 식사는 아무 말 없이 먹는 나보다 빠르다.
참 신기한 애들인데 건너편 식탁의 동양인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 식탁에 앉아 식사하던 미국인 부부가 우릴 보더니 저분도 한국인이라 소개한다.
그 양반은 한국에서 오셨냐 난 미국 교포 다란 단 한 마디 후 대화는 단절됐다.
ㅋㅋㅋ
그 양반이 우릴 바라본 시선엔 여러 의미가 있음을 느낌(?)으로 알 것 같다.
그와는 마땅히 할 얘기도 없었지만 하고 싶지도 않았던 우린 식사 후
곧바로 침실에 들며 힘들었지만 나름 보람찬 하루를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