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Why) 일본 미술을 알아야 할까 2
왜화(倭畫)벌이
왜화란 무엇인가? 왜나라 왜, 그림 화. 즉, 일본화란 뜻이다. 이렇게 동양 미술을 소개하는 이 브런치의 첫 발은 일본화가 담당하게 되었다. 일본미술은 담백하면서도 화려하고, 생명력이 넘치면서도 덧없는 미술이다. 이런 일본화를 왜(Why) 알아야 하는가? 파도를 그린 이는 누구인가? 궁금증은 많지만 챗 GPT는 아직도 미덥지 않은 자들이여, 서양미술사에 질릴 대로 질린 이들이여. 여기로 모여라!
드디어 두 번째 파트다. 우선 여기까지 따라와 준 이들에게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다. (부족하기 짝이 없는 첫 글을 읽고 다시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박 맛집까지는 아니어도 오랫동안 든든한 한 끼를 책임지는 백반집 같은... 그런 글쓴이가 되겠습니다.) 여기서 말할 주제는 바로 다른 분야 예술과의 접점이다.
머릿속에 당장 "일본"을 떠올려 보자. 어떤 이미지가 그려지는가? 한국인들로 북적이는 도톤보리? 도쿄 바나나를 찾아 헤맸던 돈키호테? 아마도, 종잇장처럼 흰 피부에 피처럼 새빨간 입술, 짙은 화장을 하고 기모노를 입은 가부키 배우의 모습을 떠올리는 이가 한 명쯤은 있을 것이다. 가부키(歌舞伎)는 17세기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일본의 전통극이다. (우리나라의 마당극이나 중국의 경극과 비슷한 위치라고 보면 이해가 빠르다.)
가부키는 일본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17세기부터 현대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쭉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당연지사 일본 미술계 역시 가부키의 영향 아래 있었다. 화가들은 주로 가부키 극의 내용이나 인기 배우들을 그렸는데, 이 중에서 장르로 발달한 것이 배우들을 그린 초상화 "야쿠샤에(役者絵)"다. ('야쿠샤'는 배우, '에'는 그림을 뜻한다.)
위 작품은 야쿠샤에의 대가 우타가와 쿠니사다의 <이치카와 단주로 7세의 가부키 연기>다. 제목 그대로 당대 최고의 배우 이치카와 단주로 7세의 연기를 화폭에 담아냈다. 부리부리한 눈빛과 함께 한껏 일그러진 표정은 생기 있다 못해 열기가 느껴진다. 부푼 듯한 풍채와 치켜든 팔에서는 위압감이 느껴지며, 옷감이나 부채의 패턴 역시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런 야쿠샤에는 배우를 선전하는 포스터이자 굿즈의 역할을 했다. 현대 한국으로 치자면, 배우들의 세련된 프로필 사진이나 아이돌 포토카드 같은 느낌이다. 야쿠샤에는 주로 우키요에로 제작되었기에 목판화의 특성을 살려 손쉽게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었다.
이렇듯 일본 미술계는 가부키라는 공연 예술과 긴밀하게 공생하고 있었다. 특히 에도 시대의 미술은 주 관객층인 서민(조닌)들의 삶과 밀착되어 있었기에, 이 시기의 미술을 흔히 '서민의 미술'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 미술과 공생 관계에 있는 예술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문학이다. 수많은 미술가는 고전 문학에서 영감을 받았고, 일본의 화가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가장 오래된 고전 소설인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가 있다. 헤이안 시대 귀족 히카루 겐지의 사랑과 운명을 다룬 이 이야기는 총명한 겐지가 여러 여성과 로맨스를 겪으며 인생의 무상함과 덧없음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워낙 유명한 고전이라 시대별로 다양하게 재해석되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겐지 모노가타리 에마키(두루마리 그림)>다. 본래 이 에마키는 귀족들이 즐기던 화려하고 값비싼 예술품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에도 시대에 이르면 우키요에 화가들이 이를 서민 버전으로 패러디하거나 재해석하면서 대중들에게도 널리 퍼지게 된다.
이렇게 일본 미술은 공연, 문학 등 이웃 예술과 '퓨전'하며 외연을 넓혀왔다. 이는 미술이 단순히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에 머물지 않고, 대중과 손잡으며 함께 호흡했음을 의미한다. 현대에는 미술을 어렵고 고상한 것으로만 여기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일본 미술이 보여주었듯, 미술이 누구나 즐기는 문화와 결합할 때 얼마나 큰 생명력을 얻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