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화(倭畫)벌이 - 2. 동서양의 미술가들

우리는 왜(Why) 일본 미술을 알아야 할까 1

by 한아
왜화(倭畫)벌이

왜화란 무엇인가? 왜나라 왜, 그림 화. 즉, 일본화란 뜻이다. 이렇게 동양 미술을 소개하는 이 브런치의 첫 발은 일본화가 담당하게 되었다. 일본미술은 담백하면서도 화려하고, 생명력이 넘치면서도 덧없는 미술이다. 이런 일본화를 왜(Why) 알아야 하는가? 파도를 그린 이는 누구인가? 궁금증은 많지만 챗 GPT는 아직도 미덥지 않은 자들이여, 서양미술사에 질릴 대로 질린 이들이여. 여기로 모여라!


클로드 모네, <일본 여자>, 캔버스에 유채, 231.8 x 142.3 cm, 1876

우리는 왜(Why) 일본 미술을 알아야 할까? 가장 첫 번째로, "제발저요"하고 손 들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하나 있다. 바로 일본 미술이 서양 미술에 미친 파급력이다.


때는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통해 유럽 대중에게 일본 미술이 강렬하게 각인된다. 이후 파리를 중심으로 자포니즘(japonisme)이 유행하게 되는데, 그 중심에는 반 고흐, 마네, 드가 등 인상주의 화가들이 있었다. 이들은 일본 미술 중에서도 "우키요에"를 보고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우키요에는 목판화로, 주로 에도 시대(1603~1867) 서민들의 생활상을 담은 그림을 칭한다. '우키요(浮世)'는 ‘덧없는 세상', '에(絵)'는 '그림'이라는 뜻이다.. 쾌락을 좇으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승화시켰기에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그럼 인상주의자는 왜 우키요에를 보고 충격을 받았을까? 바로 우키요에의 화려한 빛깔과 날카로운 선묘, 그리고 평면적인 화법이다. 이런 면에서 일본 미술은 인상주의자들이 이제까지의 미술을 반추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림의 중앙에는 꼭 인물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인물의 전체를 담아내야만 한다. 그릴 때는 세세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해야만 한다….’ 그동안 지켜졌던 미술에 대한 관념이 설탕 유리 깨지듯 와장창 부서지게 되었다.


3.jpg 빈센트 반 고흐, <탕기 영감>, 캔버스에 유채, 92 x 75 cm, 1887


특히 그 영향을 눈에 띄게 받은 이가 바로 반 고흐다. 반 고흐는 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일본과 장기간 교역을 맺었던 네덜란드 출신이었기에, 일본 미술에 대한 심리적 문턱이 낮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일본 미술을 자신의 작품에 접목한 것은 1886년 파리에 정착하여 자포니즘의 열풍을 직접 목격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그의 그림은 점차 화사하고 밝아지게 된다. 또 고흐는 안도 히로시게의 그림을 모사하며 자신의 작품에 배경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좌) 안도 히로시게 / (우) 빈센트 반 고흐


하지만 우리가 일본 미술을 공부해야 할 이유는 단지 ‘서양의 미술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에 인용하였기 때문’은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서구중심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미술사를 곧 서양미술사로 보는 시각이 존재하는데, 이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일본의 미술가들 역시 서양 미술가들의 작품을 모방하고, 시도한 역사가 있다. 아무래도 동방의 신비한 미술에 대한 문화 충격은 서방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아무튼, 동서양의 미술은 일본이라는 영토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생한 셈이다.


안도 히로시게, <도카이도의 53경치>, 우키요에, 1832


위 그림은 안도 히로시게(앞서 고흐가 모사했던 화가다)의 <도카이도의 53경치>라는 작품이다. 언뜻 봐서는 그저 일본적인 우키요에라 생각하고 넘어가기 쉽다. 그러나 여기서도 서구의 미술 기법을 받아들이고 시도한 흔적이 남아있는데, 잘 찾아보시라. 그동안 나도 숨 좀 쉬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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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을 맞힐 준비는 되었는지?(흐흐) 바로바로(두구두구두구) 서방의 원근법을 도입했다는 것. 잘 보면 가장 멀리 있는 산과 나무는 명암을 칠해 거리감을 만들어 냈다. 그 앞에 있는 오두막 역시 명암 단계를 나누었다. 이로 인해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파른 산->언덕->오두막->산 순으로 구분 지었고 마치 팝업 북처럼 튀어나올 것 같은 구성이 되었다.


이토록 동서양의 융합은 항상 재미있고 흥미로운 결과물을 낳는다. 그리고 이는 모두 이질적인 요소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험하고, 적용해 왔던 이들 덕분이다. 이들 덕분에 미술은 한 걸음 한 걸음 진보해 나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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