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오디세이 1 의 근대예술의 예술가
현재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지,
어떤 신념들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내가 하고 있는 일(들) 중 주체적으로 행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하루 루틴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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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할 수 있는 질문들이라 생각한다.
스스로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며 사는 사람의 이야기.
자존, 자신을 가진 이야기는 흥미로우니까.
미학오디세이 1에 근대예술로 들어갈 때쯤, 이런 문장이 나온다.
예술가는 더이상 규칙을 습득하여 자연을 모방하는 '장인'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내는 '천재'다.
아 질문 하나를 추가해야겠다.
당신은 예술가 인가?
이 전까지의 예술은 이상적인 비례를 정해놓고 그걸 반드시 지켜야할 규칙(카논)으로 삼았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안 된다. 그러니 예술가의 자유가 숨쉴 자리가 없다.
하지만 칸트가 보기에는 예술은 그런게 아니었다.
책상을 만들 땐 물론 치수를 엄격히지켜야겠지만, 예술 작품은 그런 식으로 만드는 게 아니다.
<진중권, 미학오디세이 1>
복잡했던 르네상스 시대. 중세와 근대가 걸쳐있는 시대였다. 이 때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인 다빈치는 과학과 예술을 다른 범주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예술은 한편의 기술이었다. 표현의 기술. 과학, 조각, 건축 같이 말이다. 한편 미켈란젤로는 조금 달랐다. 영감이란 것을 노래했다. 그렇게 근대예술의 시대. 낭만예술이 시작된다.
낭만예술이란?
이념은 너무 자라서 형상과 조화로운 통일 속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다. 물질적 매체는 더 이상 이념을 드러내기엔 적합하지 않다. 여기서 이념과 형상의 통일은 다시 한번 파괴된다. 감각적 매체 속에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표상으로 표현된다. 바깥세계에서 서서히 인간 내면의 정신세계로 옮아간다.
#. 나만의 관점, 규칙
디자인프로젝트 수업을 진행 할 때 디자인과 예술의 차이에 대해 짚고 넘어가곤 했다.
" 디자인은 예술과 산업이 만나 생긴 산물이다."
그리고 이 문장은 자신의 일은 디자인하고, 내 삶은 예술하자. 라는 말로 귀결된다.
디자인의 주체는 상대에게 있지만, 예술의 주체는 자신에게 있다.
디자인의 유효기간은 언제나 존재한다. 마감기간 일 수도, 프로젝트 기간일 수도, 혹은 어떤 트렌드 내 일수도. 여튼 디자인의 가치는 기간이 존재한다. 하지만 예술은 시간이 흐를 수록 가치가 높아진다. 가치의 기간은 존재하지 않고 유기체적으로 커진다.
예술가는 이렇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살아가고 표현할 용기가 있는 사람인 것이다.
미학에 있어서도 이제는
무엇이 아름다운가? 가 아닌 언제 아름다운가?를 물어야한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평범한 대상일 수도, 미적 대상일 수도 있다.
같은 삶을 살더라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평범한 시간을 수도, 미적 시간일 수도 있다.
새로움이 아니어도 된다. 오늘이란 시간동안 난 언제 아름다움이란걸 보았는지를 정의내릴 수 있는지.
정리할 수 있는지. 로도 충분하다. 한 때 #오늘의예술 이라는 해시태그를 붙여 글을 자주 적었다.
같은 24시간을 살지만 혹은 같은 일정을 경험하더라도 나의 고유성은 고유하다. 즉 각자의 하루를 보내게 된다. 때문에 자신만의 하루 기록은 오늘의 예술이 되기 충분하다.
다시 돌아가서, 예술가는 이제 더이상 기술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내고, 언제 아름다운가를 말할 수 있는 관점을 가진 사람이다.
예술가는 삶이든 일이든 게임이든 자신만의 '프로세스'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인 것이다.
'천재' 는 이렇게 탄생하는거다.
그리고 어느새 난 천재가 되었다.
일부러 엉뚱히 찍은 사진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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