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오빠

나는 못 살아도 내 동생들이 다 잘 살면 나는 그게 더 좋아

by 지안

“꿈인지 현실인지 가물가물한데 나 어릴 때 아버지가 남의 집 두드려서 밥 얻어먹은 기억이 있어.”


몇 달 전 엄마랑 셋이 자장면을 먹는 자리에서 오빠가 불쑥 말했다. 그동안 참아오다 오늘은 엄마에게 확인을 하려는 것 같았다.


“동냥을 했다고?” 놀란 내가 물었다.


“진짜야? 엄마도 알았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묻는 말에 오빠도 엄마도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보일 듯 말 듯 엄마의 고개가 위아래로 조금 움직였을 뿐이다.

배고파 우는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남의 집 문을 두드렸을 젊은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와 나는 어디 있었을까.


오빠와 내가 세 살 터울이니 나는 젖먹이였을 것이다. 순간 울컥 코끝이 찡하면서 엄마와 아버지의 고달팠을 한평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어느 한 곳 의지가지없이 고되고 힘들었을 나의 부모님.


"나는 못 살아도 내 동생들이 다 잘 살면 나는 그게 더 좋아."라고 말하는, 태생부터 장남의 그릇으로 그만큼의 무게를 얹고 태어난 우리 오빠.

오빠는 어려서나 지금이나 가족 앞에서 큰소리 한 번 내 본 적이 없다. 일찍부터 어린 노동자가 되어 부모님을 도운 오빠. 손바닥만 한 작고 낡은 오빠의 수첩에서 우연히 본 빼곡한 글씨들은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또렷이 각인되어 있다.


0월 0일 점심 빵 1개-0원. 0월 0일 점심 과자 1개-0원... 꾹꾹 눌러쓴 점심 대신 먹은듯한 비슷비슷한 지출 목록들..


지금 생각하니 열대여섯의, 돌도 씹어 먹을 어린 남자애였는데 종일 일하고 빵 한 조각, 과자 몇 조각으로 배를 채우고 얼마나 허기졌을까?

스무 살이 되어 입영통지서가 나왔을 때 오빠는 통장 하나를 엄마에게 건넸다. 배곯아 모은 돈 십만 원이 들어있는 적금통장을. 지금으로부터 사십오 년 전이니 백만 원쯤의 가치일까?


엄마에겐 요긴하지만 피눈물 나서 쉽게 쓰지 못했을 돈 십만 원. 엄마가 걱정되어 십만 원을 남기고 군인이 된 스무 살의 어린 아들 내 오빠. 어린 날의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마음이 아려온다. 근원적인 통증을 마주해야 하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가족사를 글로 풀어보리라는 오랜 소망을 막는 이유이기도 하다. 겨우 한 줄 나갔나 싶으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있는, 마치 낯선 곳에 던져진 이방인의 외로움이 이와 같을까? 극복할 날이 오긴 하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