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네 번의 죽음을 보았다. 첫 번째는 시할머님 죽음이다. 할머님은 당신의 장남(나의 시아버님)이 위독해지자 먼저 보낼 수 없다고 스스로 곡기를 끊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요히 돌아가셨다. 꼬맹이가 태어나고 이듬해였으니 이십 년 전이다. 장례는 마을장으로 치렀는데 꽃상여를 타시고 동네 구석구석을 두루 돌아보신 후 집이 내려다 보이는 앞산에 묻히셨다.
두 번째는 시아버님이다. 부인이 둘이던 아버님은 평소 작은어머니와 지내시다 우리가 내려가기 하루 전 미리 어머니댁으로 오시곤 우리가 다녀간 후 작은어머니댁으로 다시 가셨다. 나는 이 사실을 오래 지나서야 알았다. 아버님이 어머니댁으로 완전히 들어오신 건 알츠하이머로 거동이 불편해지시면서였다.
안방에서 5 년여를 누워계시던 아버님은 숨이 안 끊어져(남편 표현이다) 며칠을 고생하시다 자정을 넘겨 돌아가셨는데 임종을 지키러 내려간 남편이 내내 자리를 지키다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였다.
아버님도 장례지도사를 불러 집에서 치렀는데 염습을 할 때 나를 가까이 부르더니 내 손바닥에 오일을 붓고 아버님 얼굴에 발라드리라고 했다. 얼음장 같은 아버님 얼굴에 오일을 바르는 동안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렀다. 난생처음 경험인데 무슨 감정이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아버님도 마을을 돌아(일행이 멈출 때마다 돈봉투가 놓였다) 시할머님 근처에 묻히셨다. 어머님과 하얀 소복을 입고 뒤따라 걸은 기억이 선명하다.
세 번째는 시어머님이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홀로 지내시던 어머니는 어느 날부턴가 자주 냄비 등을 태우시더니 뇌수막염 진단을 받았다. 남편에게 듣기로 수술하기 어려운 부위라 장담을 못한다고 했다. 어머니는 장애등급을 받으시고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으셨는데 홀로 계신 주말이 문제였다. 옷에 실수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방문보호사의 걱정 어린 하소연도 늘어났다.
의논 끝에 어머님의 지인이 계신 요양원(평판이 좋았다)에 자리가 있어 그곳에 모시게 되었다. 어머니는 깔끔하고 자존심이 강한 분이셨다. 당신이 요양원에 계시는 걸 못 견뎌하셨다. 몸은 기능이 떨어져도 정신이 또렷하시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머님은 우리가 갈 때마다 남편 아닌 나를 붙들고 "집에 언제 가냐?"라고 하셨다. 남편은 창밖을 보고 나는 "조금만 계시면 가요." 할 뿐이었다.
어머님은 점점 말씀이 없어지셨다. 우리가 가도 눈을 감으시고 침묵하셨다. 시할머님처럼 곡기를 끊을 생각을 하신 걸 나중에 알았다. 어머님은 요양원에 들어가신 지 6개월 만에 위중해지셔서 십여 일 만에 병원에서 숨을 거두셨다.
돌아가시던 날, 어머니는 주무시듯 평온했다. 어머님 얼굴에 걸쳐둔 산소호흡기에 김이 맺혔다가 사라지고 다시 김이 맺히는 것을 지켜보며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여러 이야기를 했다. 사랑한다거나 걱정 마시고 편히 가시라고 했을 것이다. 죽음 앞에 덤덤한 목소리로 사랑한다는 며느리가 얼마나 미우셨을까..
어머님의 얼굴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평온하셨다. 흐렸다 맑았다 하던 산소호흡기에 더 이상 김이 맺히지 않는 순간이 와도 어머님의 체온은 여전히 따스했다. 의사가 오더니 사망선고를 했다.
어머님의 마지막 모습은 내가 평소 갖고 있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든 계기가 되었다. 나의 죽음도 이렇게 고요하기를. 어머님은 남편이 들어둔 상조회사를 통해 병원장례로 일사천리 진행되었다. 꽃상여도 없이 마을도 다시 못 가보고 대개의 일반적인 장례식으로 그렇게. 그리운 어머니.. 가신지 십 년이 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셨다는 생각이 든다.
네 번째.. 나의 아버지.. 4월 초 벚꽃축제도 보시고 생일잔치에서 딸의 노래도 들었던 아버지는 외출했던 분의 코로나 확진으로 옮아 양성으로 격리되었다는 요양원 연락이 있은 후 다시 산소포화도가 낮아 응급실로 가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응급실을 거쳐 1인실에서 산소 고용량으로 7일을 버틴 내 아버지는, 불과 하루 전 나를 보고 큰딸이라고 말씀도 하신 내 아버지는 7일 오전, 가족이 모인 가운데 "오늘 넘기시기 힘들다."는 말을 전한 의사(폐사진을 본)가 나간 지 오분도 안 되어 산소포화도 수치를 급속히 떨어뜨리더니 간격을 두고 긴 숨을 두 번 내쉬고는 숨쉬기를 멈추셨다. 기계 수치도 0으로 멈추었다. 나는 아버지 얼굴을 계속 쓰다듬었다. 여전히 따뜻했다. 믿기지 않는 네 번째..
나의 아버지... 아버지는 아직 떠올리기가 힘들다.. 시간이 더 지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