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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용진 Jul 23. 2020

'건물주 페르소나'

텔레비전 예능 유감


최근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 ‘부캐’로 활동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자신의 원래 캐릭터가 아닌 제2의 캐릭터 즉, 하부 캐릭터로 활동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말이다. 유재석이 트롯가수인 ‘유산슬’로 활동하거나 개그우먼 김신영이 ‘둘째 이모 김다비’로 활동하는 것이 그 예다. ‘카피추’도 개그맨 추대엽의 ‘부캐’다. 부캐가 널리 유행하는 것은 수용자들이 그를 선선히 받아들이는 탓이다. ‘본캐’와 ‘부캐’를 잘 구분하면서도 그를 혼동하는 척하는 놀이로 즐거움을 얻고 있다. 지금까지의 부캐 놀이의 성공에 힘입어 이 놀이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부캐 놀이와 유사하지만 차이가 나는 ‘페르소나’ 놀이도 있다. 페르소나 놀이는 한 인물에 여러 성격을 부여한다. 특정 인물을 다중화시키고 점차 그중에서 하나를 뽑아 페르소나를 확정하는 놀이다. 개그맨 김구라의 예를 들어보자. 그는 원래 쓴소리, 정치 이야기를 하는 엘리트 페르소나로 방송계에 데뷔했다. 당시로선 낯선 페르소나였던 탓에 잘 풀리지 않았고 욕설하는 페르소나로 옮겨 갔다. 점차 인지를 얻자 지상파 방송 등에 출연하며 욕설을 뺀 독설가 페르소나를 굳혔고 성공을 거두었다. 정치, 욕설을 주 메뉴로 하는 과거 페르소나는 숨김없이 모든 것을 드러내는 독설 페르소나에 가려졌다. 부캐 놀이가 캐릭터의 분열로 즐거움을 얻는다면 페르소나 놀이는 캐릭터 확립 과정에서 재미를 얻는다.

방송인 서장훈 이야기를 꺼내려 길게 부캐와 페르소나를 이야기했다. 방송인 서장훈은 성공한 농구 선수 페르소나로 방송계에 데뷔했다. 화려한 경력, 최장신이라는 외모, 수려한 말솜씨가 보태져 그의 페르소나가 형성됐다. 그러다 그에게 어느 틈엔가 농구 선수가 아닌 다른 얼굴이 덧씌어졌고 그 이름으로 호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건물주 서장훈. 처음엔 그도 쑥스러워하고 다른 이들도 서장훈이 다수의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며 그를 내세워 그를 소개할 땐 계면쩍은 웃음을 보내곤 했다. 농구 선수 페르소나에서 건물주 페르소나로 옮겨가는 기간 동안 건물주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의 표정이나 그를 받아들이는 수용자들의 태도도 많이 바뀌었다. 이젠 그는 탐낼 만한 건물주 신랑감으로 대접을 받고 있다. 급기야는 건물주라는 이유로 구애를 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여성 연예인도 등장했다.


서장훈은 자신이 그 페르소나를 연출하지 않았기에 이 같은 이야기가 논의되는 것 자체가 분할 수도 있다. 건물주 페르소나가 아무렇지 않게 대화의 소재가 되고, 때론 부러움의 대상인 것처럼 연출되는 것은 본인의 의도는 아닐 것으로 알고 있다. 그의 거듭되는 손사래를 보면서 그런 믿음을 갖게 된다. 다만 방송계가 제작자와 출연자 모두 그 같은 페르소나 형성을 관용하며 심지어는 즐겨했음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그 같은 담론 생산에 무뎌져 있으며 그것이 사회에 미칠 해악을 고민해 봤는지를 따지려 한다.


부동산 대책, 집값 잡기, 내 집 마련 담론이 여름의 열기를 더하고 있다. 문제의 파악이 미비했고, 당연히 부실한 대책이 등장한다. 이어 미디어는 그를 비판하고, 여론은 힐난 일색이 된다. 그런 일이 언제나처럼 반복되고 있다. 모두가 이 문제의 당사자이니만큼 이 문제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든 할 말이 있고,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다. 모두가 목소릴 높이지만 언제나처럼 좀체 드러내지 않고 숨기고자 하는 존재가 있다. 부동산 매매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올리는 것에 대한 욕망을 대부분이 강하게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자신의 욕망을 좌절시킨 정책은 더욱 비판을 받는다. 미디어는 그 지점을 절묘하게 후벼 파고든다. 서장훈을 부러워하고, 그의 페르소나를 순순히 받아들이게 한다는 말이다.


미디어는 사람의 머릿속 지식 정리 역할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욕망의 흐름을 강화시키기도 하고 차단하는 에너지 발전소 같은 역할도 한다. 부동산 이야기를 들으면 ‘꼭지가 돈다’ ‘다리가 후덜거린다’라는 말은 미디어가 에너지를 전파하는 존재임을 확인시키는 언설이다. 부동산과 관련해서 지닌 우리의 욕망은 태초부터 가진 원시 욕망은 아니다. 전파되었고 가꾸어진 에너지이자 파동이다. 미디어가 은연중에 떠들어 만들고, 확산시킨 퇴행적 에너지다. 경계하고  질타해야 할 에너지다. 그 같은 퇴행에 쉽게 눈감아선 안 된다. 그 퇴행을 더 이상 오락 감으로 삼아서도 안 될 일이다. 오히려 불쾌하게 여기며 잘못된 정책에 대한 비판, 부의 독점에 대한 강한 반발 위에다 포개 올려야 한다. 그래서 서장훈의 건물주 페르소나 형성은 본인으로서나 사회적으로나 분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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