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아버지의 일기장

오늘도 내 감정은 근무 중

by onseol
아버지의 일기장


나는 결혼 후 아버지로부터 오래된 일기장을 받았다.

시간의 흔적을 말해 주 듯 누렇게 뜨고 거뭇거뭇 곰팡이가 핀 낡은 일기장. 그것은 어린 시절 몰래 읽던 아버지의 노트였다.


어려서 글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안방 서랍장에 꽁꽁 숨겨둔 노트를 몰래 꺼내 읽었다. 어린 당시 그 글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체 그저 호기심에 눈으로 읽고 넘겼던 것이 아버지의 일기장이었다.


업무로 지친 어느 날 책장 구석에 놓인 노트를 발견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아버지의 일기장이었다. 누런 표지를 넘기자 기름종이처럼 투명해진 종이 위에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쓴 글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몇 장을 넘기자 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1980년 10월의 어느 날을 회상하며 적은 일기였다.



그곳엔 타향살이로 인해 전보를 통해 들어야 했던 아버지의 사망 소식, 걱정하는 가족을 위해 마음으로 눈물을 흘려야 했던 감정 그리고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미안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냥 슬그머니 아버지의 옛 추억을 들춰보려 했던 나는 그날의 아픔에 동화되어 눈시울을 붉혔다. 강한 줄만 알았던 나의 아버지, 그도 사랑을 받고 싶어 하고 어리광 피우고 싶은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그저 나약한 사람이었다.

fathers-day-g2579bd347_1920.png 출처-pixabay.com

자식 앞에선 지구를 지키는 슈퍼맨처럼 무적의 용사였지만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 일기장에서만큼은 자신의 마음을 마음껏 드러낸 체 웃고 울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자신에게 솔직하고 싶었을 것이다. 4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때의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어릴 적 이해되지 않던 글이 이제는 인생의 조언처럼 가슴에 와닿는 것은 아마 그런 연유일 것이다.


일기장은 개인의 감정이 담긴 공간이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글은 소소한 일생에서 얻은 삶에 대한 가치로서 인생의 방향을 제시하기에 충분하다.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 속에 누구나 공감하는 인간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고 지친 우리의 삶에 이정표가 될 수 있음을 안다. 그리고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