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내 감정은 근무 중
아버지의 하루
먼 동이 트면서 자동적으로 잠자리에서 눈을 뜨게 된다. 잠자리에서 앉은 채로 제대로 잠도 깨어나지 않은 정신으로 주기도문을 외운다. 정신을 차려 화장실로 향한다. 그곳에서 나를 괴롭히고 내가 잘못한 일들을 생각하며 회사에서 해야 할 일들을 차분히 생각하고 마음속에 메모해 둔다.
그 후 난간에 걸터앉은 채로 양치를 한다.(당시 우리는 2층 주택에 세 들어 살았다.) 그러는 동안 아내가 아침을 준비하여 준다. 첫째의 얌전한 기도와 둘째의 우렁찬 기도소리에 웃음꽃을 피운다.
대문을 나서기 전 꼭 아이들에게 아침 뽀뽀를 해야 한다. 그냥 나서면 용진이 입에서 아빠 뽀뽀! 외치는 고함이 내 조그만 귀 막을 쨍하게 울린다.
삼천리(3000리) 자전거는 아무런 부담 없이 나를 태워서 회사까지 운반하여 준다. 추우나 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유 없이 나에게 순종하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소중한 것 중의 하나다.
작업장에 도착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현장 안을 구석구석 돌아보고 다시 책상에 앉아 결재할 현황을 챙겨본다. 그날 해야 할 일들은 메모한 대로 반장을 불러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지시한다. 어제 있었던 일을 반성하고 또 지적하고 잘못된 작업을 반복하지 않도록 부탁한다.
요즈음 원단 재단에 거의 시간을 보낸다. 앞가슴과 얼굴 안면 몸 구석구석 땀으로 범벅이 된다. 순간순간 부지런히 민첩한 행동으로 성실하게 일하고, 120여 명의 관리자로서 모범을 보이려고 무척이나 애를 쓴다.
작업에 쫓기다 보면 점심도 제시간에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작업에 얽매이게 된다. 요즈음 밤 10시까지 잔업을 하기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로가 나를 더욱 억누른다. 하루 종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 보면 퇴근 때 발바닥이 아프고 발등이 부어오른다.
내가 처음 이곳(한일합섬 개발 견본실) 왔을 때 얼마나 바쁘고 힘들게 일했는지 회사 정문을 나와 집에까지 갈 때 중간에 한번 정도 쉬어야 갈 수 있을 정도로 일을 했을 때가 있었다. 소띠로 태어나서인지 소처럼 무거운 멍에를 짊어지고 말없이 일을 해야만 했고 무더운 여름철에도 그렇게 달라붙어 일을 했다.
집에 귀가하는 시간은 밤 10~11시가 된다. 내 생활은 이런 식으로 반복된다. 아이들과 대화나 가정교육 시간이 전혀 없는 것이 안타깝다. 세상모르고 잠든 두 뺨에 입을 맞추며 나의 체온으로 아빠의 사랑을 전한다.
-1981년 8월 아버지 일기장 중에서
일기장에서 40년 전 아버지의 하루를 발견했다. 지금을 살아가는 나와 별반 차이가 없음에 이상하게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아버지는 언제나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밤늦어서야 돌아오셨는데, 그것은 가족을 위한 사명감 때문이었다. 왜 어릴 때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왜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지...
사명감(使命感)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해내려는 마음. -출처: 다음 어학사전
단어 속에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가 느껴진다.
사명감은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어깨 위에 군림한 체 짓누르며 가족을 위한 희생을 강요한다. 그리고 가족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자신의 삶을 포기하게끔 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음을 알기에 그렇게 우린 순순히 수긍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바로 아버지라는 이름의 사명감으로 말이다.
그래서 난 오늘 하루도 어디선가 최선을 다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아버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니 사명감에 자신의 삶과 꿈을 포기했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사랑과 희망을 선물하는 아버지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