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내 감정은 근무 중
집 한 채 샀겠네!
40년 넘게 한결같이 복권을 구매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우리 아버지다.
오래된 나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거의 광적으로 복권을 구매하셨다. 하다못해 복권을 수집까지 하셨는데, 아버지 서랍장엔 주택복권을 순서대로 고이 모셔 놓은 앨범이 있었을 정도다.
매주 빠짐없이 복권을 구매했으니 그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었을 것이다. 호기심에 계산기를 두드려 봤다. 과연 복권을 구매하는데 얼마나 돈을 썼을지…
아버지의 첫 복권 구매는 주택복권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정기적으로 발행된 첫 번째 복권으로, 1969년부터 판매가 되었는데 당시 아버지는 학생이었고 서울에서만 판매했기에 아마 구입이 어려웠을 것이다. 전국적으로 판매된 것이 1977년인데 아버지는 그전부터 간간히 복권을 구매하셨다고 했다. 그렇지만 계산의 편의를 위해 1977년부터 계산을 하겠다.
밀레니엄 전만 하더라도 주택복권이 최고 인기였지만 2002년 로또가 등장하면서 주택복권은 뒤안길로 사라졌다. 아버지 역시 로또가 출시되며 주택복권과 이별을 선택하셨다.
또 2011년 연금복권이 출시됐는데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듯 복권 판매점에서 언제나 5장 한 세트를 구매하셨다.
이렇게 1977년부터 복권을 샀다고 하더라도 아버지는 44년 동안 복권과 짝사랑을 하고 계신 것이다. 그동안 구매한 복권의 양만 해도 5000장에서 몇 장 부족하다. 그리고 이를 한 장씩 길게 늘어놓으면 무려 6km가 조금 안된다.
이렇게 구매했다고 한다면 그 비용만 자그마치
8,710,000원
주택복권 500*52*25=650,000
로또복권 2000*5*52*2=1,040,000
1000*5*52*17=4,420,000
연금복권 1000*5*52*10=2,600,000
계산해보니 정말 옛날 집 한 채 값이다. 내 어린 시절 우리 동네 아파트 한 채가 1000만 원이 안되었으니 어른들의 장난스러운 말이 사실이었다. 만약 2장씩 구매하셨다고 하면 거의 2000만 원이다. 이 돈만 모았어도…. 어머니의 한 숨이 이해가 간다.
아버지의 복권 당첨률은 그리 좋은 편도 아니다. 로또의 경우 3등이 최고고, 주택복권은 4등 이상 당첨됐다는 이야기를 듣질 못했다. 연금복권도 마찬가지다. 투자 대비 마이너스인데도 아버지는 매주 복권을 구매하신다.
군대 제대 후 20대 중반 취업을 하셔서 지금까지 50년 가까이 일하고 계시지만 아버지의 재산이라고는 같이 늙어가는 집 한 채가 전부다.
꽝인 줄 아시면서도 매번 복권을 사는 이유는 아마도 가난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흙수저를 벗어나지 못하는 삶. 물려줄 재산 하나 없는 미안함 말이다.
그렇기에 당첨만 되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복권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복권에 당첨되면 아들에게 각각 100만 원씩 증권 또는 예금 선물, 엄마에게 평생 용돈으로 100만 원을 주겠노라고 다짐까지 하셨을까. (아버진 1982년 일기에 복권 당첨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적어 놓으셨지만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희망 사항으로 남아 있다. 그냥 돈으로 주시는 것이 빠를지도…)
로또의 당첨 확률은 814만 5,060분의 1에 불과하고, 연금복권은 500만 분의 1로 정말 희박하다. 사람이 평생 벼락에 맞을 확률이 60만 분의 1이라고 하는데 나는 로또 당첨보다 더 쉬운 벼락도 아직 맞아보지 못했다. 죽기 전까지 벼락을 한번 스치기나 할지 모르겠다.
사실 복권을 사는 돈으로 주식에 투자하거나 적금을 드는 것이 현명한 투자 방법이긴 하다. 실제로 그 돈으로 복권 대신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했더라면 엄청난 수익을 올렸을 것이다. 1985년도 삼성전자의 주가가 4000원이 안됐으니 지금까지 보유했다면 무려 1000배가 넘는 수익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뇌는 언제나 복권을 선택하게 한다. 언젠가는 1등의 주인공이 될 거라는 작은 희망에 우린 우리의 얇은 지갑을 연다.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 위안을 주기 위한 작은 선물이자 인생을 버티게 하는 낙(樂)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매년 복권 판매량은 증가하고 있다. 그렇게 우린 대박을 꿈꾸며 없는 돈에 서로 품앗이하면서 다음 1등을 기다린다. 벼락을 14번 맞을 운이 있어야 대박의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을 잊은 체 말이다.
도와줘서 흐뭇하고 당첨돼서 기쁘다.
1969년 주택복권 캐치프레이즈다.
아버지도, 나도 매주 누군가를 도와줘서 흐뭇하긴 한데 아직 기쁘지는 않다. 하지만 우린 복권을 계속 구매할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돈을 서로에게 품앗이했는지 전혀 개의치도 않을 것이다. 이번 주 대박의 주인공은 ‘나’라는 희망이 주는 행복이 더 크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