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기 전에 우산을

그래도 해가 떴는데 다음 비올 날을 일부러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by Jake

이번 여행에서 첫 번째로 한 소비는 Bottle Water다. 물론 여행 전에 예매한 교통편이나 숙소를 제외하고. 엘에이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길에 버스가 한번 멈춰 쉰 휴게소에서 산 큰 Bottle Water. 꼭 목마른 것도 아니었지만 하나쯤 가지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샀다. 이왕이면 큰 사이즈로 샀다. 두고두고 마시고 물 살 돈마저도 아껴야겠기에 기회가 될 때마다 빈 병에 다시 물을 채워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수돗물을 거리낌 없이 먹을 것이 아니라면 물병을 다시 채울 기회는 딱히 없었다. 딱 한번 샌프란시스코에 도착 한 날 점심, 아는 분 댁에서 한 끼 얻어먹고 나서는 길에 물병에 물이라도 채워가라셔서 어느 정도 비운 병을 다시 가득 채운 일 말고는 다시는 기회가 없었다. 어쩌면 그게 다행이었다 싶었다. 채울 기회가 많았다면 안 그래도 거추장스러운 물병에 최대한의 무게를 더해 들고 다녔어야 했을 테니까.


나는 2박 3일 내내 물병을 들고 다녔다. 그 기간에 내가 알게 된 것은 나는 그렇게 물을 많이 마시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일정 마무리쯤이 돼서야 물은 거의 바닥났다. 그나마도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기보다는 그저 손에 물병이 항상 들려있으니 습관적으로 조금씩 마신 덕에 그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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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를 떠나기 전 공항 검색대 앞 줄에 서서는 한참을 고민했다. 물병을 들고 들어갈 것인가? 여기서 작별을 할 것인가? 어차피 검색대 너머로는 액체 반입이 되지 않기에 조금 남은 물을 입에 털어 넣고선 빈병 앞에서 갈등을 했다. 아마도 여기서 빈 병을 움켜쥐었더라면 여행 끝까지 나와 함께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 목마르지도 않았음에도 조금 남았기에 그냥 마셔버린 터인지라 미련이 덜 생겼지 싶다. 줄이 다 줄어들어 검색대 바로 앞까지 도착해선 그 앞에 있던 쓰레기통에서 과감히 작별을 하고 검색대로 들어갔다.


나답다 싶었다. 평소 소비 혹은 소유 스타일을 보면 그렇다. 필요하다가 아니라 필요할 수 있겠다에 맞춰 무언가를 장만한다. 하긴 그나마도 필요에 대한 생각이 먼저 들어서도 아니다. 무언가를 우연히 보고선 필요를 느낀다. 아니 필요를 느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렇게 집에는 바닥에 쌓일 먼지를 온몸으로 막아주고 있는 물건들이 많다. 수년째 손길이 가지 않을지언정 필요할 것 같은 물건들이 집안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번 여행을 떠나며 짐을 줄이는 데는 성공했었다. 하룻밤을 나가 자더라도, 이건 아니지 싶으면서도 여벌의 옷을 몇 벌씩 챙기던 기존의 습관에 비하면 한 달을 떠나며 백팩 하나만 들고 출발한 사실은 나에게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나름 성공적인 출발이었지만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 습관은 불쑥 튀어나왔다.


여행 기간 동안 필요할 물건은 이미 집에서 싸왔다. 필요할 물건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필요한 물건만 확보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할, 사실 필요 없을 수도 있는, 물건들 때문에 지금을 즐기지 못하면 그런 바보가 어디 있을까? 여행에서 배우는 것들이 많겠지만 이렇게 필요 없는 것을 포기할 줄 아는, 그저 바보가 되지 않는 방법 또한 배우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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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비오는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떠나 포틀랜드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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