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다
2박 3일의 샌프란시스코 일정을 마치고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 포틀랜드로 향했다. 이제 정말 처음 가보는 도시로 향하는 발걸음이 기대 반, 긴장 반 그랬다. 아침 일찍 일어나 호스텔 체크아웃을 하고 좀 제대로(?) 차이나타운에서 먹어보자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유명하다고 하는 에그타르트 집에 간신히 찾아갔지만 이미 동 나있고, 딤섬인지 만두인지, 암튼 그래도 이름 있다 하는 집을 찾아가 보았다.
가끔 한인 마트에 가면 외국인들이 보이는데 그들에게 눈길이라도 따뜻하게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인들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그들 사이에 끼어 있자니 왜 이리 긴장되는지.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무척이나 바빠 보이는 곳에서 영어도 잘 통하지 않는 그들에게 제대로 주문하기란 애당초 무리여서 그냥 눈치껏 손가락으로 서너 개를 가리키고, 돈 내라는 대로 내고, 바로 주는 대로 들고 나왔다.
차이나타운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 앉아 봉다리를 열어 맛을 보았다. 비닐봉지, 봉투 이러한 말들보다 왠지 봉다리라는 말이 어울릴 듯싶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하루만 더 있을 수 있다면 하루 종일 이것만 사 먹어 보겠는데 싶었다. 처음 느껴보는 맛에, 맛이 있기도 해고, 일단 가격이 쌌다! 아침은 이렇게 때우고 Bart라는 샌프란시스코의 지하철을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커피를 마시다 빈 컵을 버리고자 쓰레기통을 찾아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찾아보다가 발걸음을 옮겨 둘러보기 시작했다. 플랫폼에 쓰레기통이 많이 없을 수도 있지 하는 관대한 마음으로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훑으며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쓰레기통이 없었다. 무슨 지하철 운영을 이렇게 하느냐면서 혼자서 좀 심하게 격분하기 시작했다. 나름 뉴욕에서 3년이나 살며 지하철을 항상 이용한 나에게 샌프란시스코는 무척이나 불친절한 도시로 갑자기 변해버렸다.
빈 컵이 무척이나 거추장스러웠다. 그렇다고 아무 데나 빈 컵을 슬그머니 내려놓을 만큼 양심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 양심이 없다기보다는 어딘가에 내려놓을 만한 곳이 없었다. 자리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가 그렇지 못했다. 바닥에 쓰레기가 보이지 않게 깨끗해서 감히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뉴욕이라면 어디든 편하게 휙 던져버릴 수 있을 텐데. 아무튼 그렇게 불편한 몸과 마음으로 쓰레기통 찾기를 포기하고 고개를 드는 순간 쓰레기를 그냥 버린 것만큼이나 미안할 안내판을 발견했다.
꼭 다 마신 커피잔이 아니더라도 버릴 쓰레기가 있는 사람에게 쓰레기통이 없는 것은 불편하겠지만, 최소한 내가 불만을 표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딱히 먹던 음식물 쓰레기가 이나라면 굳히 지하철 플랫폼에 와서 갑자기 버려야만 할 일도 없으리라 싶었다. 나부터 지킬 것을 지키지 않은 주재에 불평을 해댄 것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라는 말씀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어느새 당장이라도 던져 버릴 듯이 당당히 들고 있던 빈 컵을 내 몸 어딘가 빈틈에 숨기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었다. 아마도 지하철 플랫폼이 깨끗하게 유지되는 이유들 중 하나 일 수 있겠다 싶었다.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다. 내 방식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방식으로 혹은 그래서 더 나은 방식으로 잘 돌아가고 있다. 나나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