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떠난다
2000년 4월쯤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횡단했다. 워싱턴에서 엘에이로 가는 비행. 드문드문 떠있는 구름 아래로 엄청난 광경을 목격했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벌판에 쭉 뻗은 가는 실선과 같은 도로. 그리고 그위를 달리는 딱 한대의 자동차. 나도 꼭 해봐야지 했었다. 하지만 뉴욕에서는 한 끼 한 끼 먹고살기에 바빴고 캘리 와서는 7년 비즈니스 한다고 꼼짝 못 하였고 또 바로 이어지는 7년 사역으로 자리를 지켜야 했다.
난 조그마한 교회 전도사이다. 아니 전도사였다. 7년간의 교회 사역이 마무리되었다. 내가 안식년을 따질 레벨은 절대 못되지만 자연스럽게 7년을 채워지는 즘에 자연스럽게 마무리되었다. 교회일은 내 삶의 중심이었다. 교회 일 말고도 삶을 영위하기 위한 다른 직업들이 있었지만, 삶의 나머지 부분들은 결국 사역의 뒷받침 역할이었다 보니 그리 큰 미련이 생기지 않는다. 편안히 내려놓고 드디어 나의 오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농구 경기에서 경기의 흐름을 우리 편으로 끌어오기 위해 파울이나 작전타임으로 경기의 진행을 끊는 경우가 있다. 사실 나도 지난 수년간 몇 번의 망설임이 있었다. 여러 가지로 교회 일이 벽에 부딪침을 느낄 때 작전타임을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하지만 내 삶의 총감독이신 그분께서는 항상 keep going이라는 메시지를 주셨다. 내가 잘못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멈춰 서게 해 주신 이때에 돌아보니 얼추 전반전을 마친 하프타임까지 왔나 싶다. 억지로 서지 않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멈춰 선다. 치열한 요즘 시대에 하프타임까지 챙기고. 하고 싶어 했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하다.
우리 엄마 막내아들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 소속감 없는 이 기분. 유치원 들어가기 전 이후로 첨 느껴보는 느낌 아닐까? 편한 마음. 동시에 약간의 긴장감. 처음 미국 땅에 내딛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그렇게 떠난다. 비록 직접 운전은 아니지만 버스 타고 기차 타고, 작은 백팩 하나 메고 발걸음을 내딛는다. 최대한 많은 땅을 밟아 봤으면 싶지만 모르겠다. 중간쯤 체력 고갈을 호소하며 돌아올지도. 아직 전체 여행의 절반도 미쳐 계획해 놓지 못한 채 이렇게 일단 출발한다.
전에 한 방송에서 허지웅이라는 사람이 책을 냈다 말하자 이에 놀라는 주위 사람들에게 "저 원래 글 쓰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았다. 방송에서 유명해졌기 때문일까? 사실 그간 몇 권의 책도 냈고 기자로 활동도 했다고는 하지만 그가 글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쉽사리 인정하기 힘든 모습들이었다. 어찌 되었든 그냥 당당히 세상이 인정을 하든 안 하든 나는 뭐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좋았다.
나는 과연 내가 뭐 하는 사람이라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난 이야기 꾼 인 거 같다.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함께 웃고 울고. 내 이야기에 재미있어하고 힘을 얻고 힐링을 받고 기운을 내고 하는 모습을 보면 좋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야깃거리가 많이 떨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이렇게 떠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하지만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많이 보고 듣고 느끼며 내 후반전을 풍성히 해줄 이야깃거리들을 모아 올 수 있다면 좋겠다.
아무튼 나는 떠난다. 김동율의 노래 한 구절 "아주 멀리까지 가보고 싶어~"를 흥얼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