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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크 Feb 05. 2020

오늘은 내리쬐는 햇빛을 감당하지 못해 뒤돌았지만

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오늘은 내리쬐는 햇빛을 감당하지 못해 뒤돌았지만
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하이스쿨 로맨스에서 미스터리 스릴러에서 좀비물(!)에서 다시 드라마로.


아니, 동아리 하나 그만두는 게 대수야? 영화로 만들 만큼? 뭔진 몰라도 키리시마. 대단한 사람인가 보다. 키리시마가 동아리를 그만뒀다고 한다. 입에 입을 타고 소문은 퍼지고 키리시마의 주변인들이 들썩인다. 동아리뿐만 아니라 학교에도 결석했다는 키리시마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슬슬 그에 대한 힌트를 줄 때가 되었는데. 웬걸. 정작 영화는 키리시마에 관심이 없다.


영화는 에피소드를 나누듯이 요일로 시간의 구분을 명시한다. 이는 누군가 사라지고 사라진 사람을 남은 사람들이 추적하는 미스터리 장르와 어울린다. 그래서 우리는 장르로의 전개를 기다리다 차차 깨닫는다. 키리시마가 그만뒀다는 액션이 아니라 “키리시마가 그만둔대!”에 대한 리액션을 바라보는 영화였단 걸 말이다.



일본 청춘물 특유의 과잉 감정을 빼고 건조하게 진행할 때, 보이는 것은 인물들의 얼굴이다. 고등학생의 클리셰를 거둔 얼굴은 차라리 어른의 것이라 믿고 싶다. 피로, 권태, 좌절, 고민. 지나치게 현실의 고등학생을 연기하는 인물들은 필사적이다. 그래. 어리다고 주어진 인생에 진심이 아니었던 적은 없었다. 



키리시마의 액션에 대한 리액션은 시간과 함께 인물별로 나뉜다. 그래서 영화는 독특한 구조를 취한다. 금요일의 종례시간이 몇 번이나 반복되기도 하지만 주말은 빠르게 지나간다. 이로 인해, 등장인물의 수가 많음에도 서로 다른 시선을 가졌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각자의 기억으로, 개인의 시선으로 재구성되는 하루는 고등학생들의 일상이라고 하기엔 스펙터클 하다. 며칠의 모음 같지만 단 하루이다. 


영화 속 인물들이 특수한 상황에 놓여서가 아니다. 모두의 학창 시절은 그랬다. 매일매일이 똑같았다고 ‘퉁쳤던’ 학창 시절도 실상 매일이 전쟁이었음을. 학교라는 기이한 사회는 멀리서 보면 모두가 하나로 보인다. 그렇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전부 다른 고민을 앓고 다른 시선을 주고받는 개개인이 있다. 



게다가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던 어른을 눈 앞에 둔 ‘곧 어른’의 마음은 어떤가. 나는 아직 그대로인데 통째로 변하고 있는 스스로를 둘러싼 세계를 견뎌야 한다. 그 중심에 선 나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태풍이 지나가며 남긴 아주 잔인한 교훈은 결국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는 외로움이다.



태풍이 지나간 마음만큼은 좀비들에게 물어 뜯긴 것처럼 낭자한 피를 쏟는다. 이후 누구는 다시 연습을 하러 가고 누구는 얼떨떨하게 옥상을 내려온다. 하지만 태풍을 쉬이 내려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태풍의 중심에 있는 눈은 고요하다고 한다. 누구보다 키리시마를 찾지만 누구보다 리액션이 적었던 사람. 입을 다물고 숨었던 그는 카메라 앞에 서고, 감당할 수 없는 칭찬을 피하지 못해 무너진다. 가장 고요한 중심에 있던 히로키의 무너지는 얼굴은 꽁꽁 참았던 진심이다.



그러나 삶의 태풍을 지나치는 사람이 혼자는 아니다. 그 사실이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 복잡한 나의 세계의 구성은 나 한 사람이 아니다. 나의 카메라에는 다른 이들이 수없이 침범할 것이다. 다른 이의 카메라를 수없이 침범하는 나처럼 말이다.


무시무시한 태풍은 분명 다시 온다. 그러니까 차마 다가가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보기 했던, 어떤 이유들로 선뜻 용기 내지 못했던 그 뒷모습도. 바보 같고 찐따 같았던 시간들도 너무 자책하지 말기로 하자.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키리시마’를 그토록 찾았던 날이 떠오른다. 지금도 누구에게서 찾을 수 없는 것들을 찾으려 헤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진로 조사서를 제출할 수요일이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니 키리시마를 찾는 모든 이에게. 오늘은 내리쬐는 햇빛을 감당하지 못해 뒤돌았지만 무너져도 일어나길. 방향을 틀더라도 멈추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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