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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Aug 30. 2023

시청자와 비평가

2007년 1월에 쓴 글.

새 드라마가 방송을 시작하고 결과를 볼 때 기분이 울적할 때가 있다. 그 드라마의 평가가 시청자와 비평가 사이에 차이가 있을 때이다. 지난 주말 MBC에서 [****]이라는 새 드라마가 방송되었다.  이 드라마가 일본의 드라마를 가져와 다시 만들었음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이 드라마의 원형이 되었던 원작 소설도 일본의 TV드라마도 보지 못했기에 거의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좋은 드라마였다. 때깔 좋고 아기자기한 병원 세트에 감탄했고 저마다의 갈등 상황에 처한 캐릭터의 스토리에 빨려 들어갔다. 무엇보다 들뜨지도 쳐지지도 않게 배우의 연기를 잡아낸 연출력엔 내심 감탄했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업자'로서의 평가를 넘어 오랜만에  시청자로서 다음 주를 기다리게 하는 드라마였다.


방송 후 성적표라고 할 수 있는 시청률을 들여다보니 웬걸 시청자로부터는 그리 환영받지 못한 것 같았다. 특히 2회에서는 오히려 시청자들이 KBS의 사극과 SBS의 멜로물로 옮겨가 앞으로 힘겨운 시청률 싸움을 할 것으로 보였다. 난 이런 경우 무척 우울하다. 내가 이 드라마를 좋아하고 높이 평가한 것은 아무래도 전문가로서의 시각이 작용한 것 같다. 그러나 시청자는 냉담했다. 이럴 때는 괜히 시청자 탓을 한다.  


    "역시 한국 드라마는 멜로 구조가 진해야 돼. 삼각에 사각으로 꼬고 여기에 물론 콩쥐, 팥쥐 식으로 선악구도도 분명해야 해"


또는 이런 불평도 할 수 있다.


"한국의 시청자 대중을 사로잡기에 전문 드라마는 어불성설이다. 드라마가 어렵지 않은가."


TV드라마는 방송사의 입장에서 시청률을 올려야 하는 장르이다. 드라마에서 시청률이 나와야 광고 영업을 잘할 수 있고 이 수익으로 시청률이 담보되지 않는 프로그램도 제작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TV 드라마의 일차적 임무는 시청률을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완성도 높은 작품이 시청률이 나오지 않아 평가절하된다면 참으로 맥이 빠진다. 우리 시청 자기 맛난 음식만 찾지 말고 몸에 좋은 음식도 찾아줬으면 한다. 그래야 드라마 제작진도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용기를 얻지 않을까? 맛있는 드라마 말고 좋은 드라마도  편성할 공간이 필요하지 않은가. 어느 좋은 날 시청자와 비평자가 내리는 평가의 간극이 점점 더 좁아진다면 정말 우리는 볼만한 드라마가 많은 방송을 갖게 될 것이다.


[****]의 선전을 기원한다. 그리하여 멜로에 삼각 구조 없이도, 좀 어렵고 복잡한 전문 용어가 나와도 드라마가 잘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바란다.


사족으로 한마디 덧붙인다면, 어떤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은 개인 취향의 문제이다. 취향이 다른 분에게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아니다. 또 이 드라마가 완성도가 낮다고 생각하는 분에게도 할 말은 없다. 결국 TV 보기는 시청자 개개인의 아주 주관적인 행위일 테니까. 그 수많은 주관적인 행태에 호응하고자 최대로 객관적인 척하면서 결국엔 주관적인 판단과 선택을 하는 것이 드라마 PD가 갖는 직업적 아이러니이다. 


이 글을 쓴 것이 16년 전이다. 위에서 언급한 드라마는 결국 시청자의 사랑을 받아 성공작으로 마무리되었다. 결국 시청자가 명품을 찾아 모여든 것이다. 그런데, 이때 만해도 살만한 시절이었나 보다. '재미있는 드라마 말고, 좋은 드라마도 편성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금으로서는 너무나 순진해 보인다.  

이제 드라마 제작에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그 비용을 단지 '좋은 드라마'이기에 감당하라고 하기엔 그 누구에도 부담이 적지 않다.  그때가 좋은 시절이었다.


p.s : 위에 언급한 드라마는 '하얀 거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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