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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Dec 01. 2024

아버지의 빈자리

5. 상속

아버지에게는 논과 밭이 있었다. 


1986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물려받은 땅이었다. 아버지는 그 땅을 하나도 팔지 않으시고 온전히 지켜내셨다. 땅을 지키는 것이 뭐 그리 힘든 것이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땅이 경작이 가능한 논과 밭이라면 쉬운 문제가 아니다. 농지는 농민이 직접 경작을 하며 가져야 세부담이 적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토지 거래가 쉽지도 않다. 

증조할아버지
 이래 대대로 내려오던 땅이었다. 옛 방식대로 큰 아들에게서 큰 아들로 승계된 곳이다. 아버지는 퇴직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셨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시던 아버지께서 농업에 뛰어드셨으니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퇴직자를 동네 사람도 처음에는 그리 반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농번기에는 동네에서 품앗이를 구하기 힘들어, 멀리서 사람을 하신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농부가 되어 땅을 지키신 30년 동안 땅 값이 올랐다. 급여소득자이셨던 아버지가 받으셨을 당시에는 상속세나 취득세가 부담이 안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30년의 시간이 땅의 가치를 높여 놓았다.


그 땅을 나누는 것이 상속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피상속인이셨고, 어머니와 남은 자식이 상속인이었다.  상속의 과정에는 아버지의 뜻이 있었고, 어머니의 고민이 있었다. 더 받고 싶은 자식의 욕심이 더해졌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버지는 그동안 유언장을 네 번이나 쓰셨다. 한 번은 공증을 받으셨고, 나머지는 자필로 유언장을 남기셨다. 그런데 그간의 유언에는 장자에게 많이 남기셨는데 이게 법에서 정한 비율과 달랐다. 


상속인은 배우자와 자식이다. 모든 상속인이 1/N로 가져가는 것이 원칙이지만, 배우자에게는 그 그 배분비율에 50%를 더 주는 것이 법이 정한 원칙이다. 즉 배우자는 1.5. 자식은 1의 비율로 가져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배우자가 한 사람이고 자식이 셋이라면 1,5: 1: 1: 1로 나누는 것이다.  그 1의 반, 즉 1/2가 유류분인데, 이는 유언으로도 해치지 못하는 비율이다. 아무리 망인이 미워하는 사람이라도 법이 1/2은 유류분으로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비율로 나누자면 전체 재산 가액을 알아야 한다. 말이 쉬워서 비율로 나누는 것이지 분모에 해당하는 재산가액을 정확히 파악해야 비율대로 나눌 것이 아닌가? 재산 가액에 대한 평가가 개인의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많이 받고 싶은 쪽은 재산 가액을 늘릴 것이고, 적게 주고 싶은 쪽은 재산 가액을 줄일 것이다. 개인이 재산 가액을  감정 평가받는 것은 적게는 수백만 원, 많게는 수 천만 원이 드는 일이다. 이런 복잡한 계산에 개인의 욕심, 그리고 골 깊은 감정이 더해져 상속의 문제는 갈등의 원인이 되곤 한다. 


아버지가 정신이 온전하신 두 달 반 동안, 상속 문제를 얘기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진의를 확인했고, 그에 따라 형제와 만나 상의했다. 아버지가 건강하셨을 때 당신께서 직접 처리했으면 좋았으련만, 결국은 장남인 내가 나서서 이야기를 진행해야 했다.  그래도 아버지의 뜻을 분명히 알았기에,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었다.


돌아가신 다음에 상속을 처리하면 늦다. 부모님의 의식이 온전할 때 미리 나누어야 한다. 최소한 자식에게 부모의 뜻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시간이 있어야 한다.  미리 준비하고 계획할수록 갈등이 적고, 세금을 적게 낸다. 우리 집은 그나마 아버지가 시간을 주셔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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