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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12. 2023

익숙한 드라마와의 결별?!

2012/02/27

베스티즈에서 가져온 그림. 누가 그린 지는 몰라요.


한 게시판에서 위 표를 보았습니다. KBS 일일드라마에서 반복되는 이야기의 패턴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관계의 핵심을 잘 짚어냈는지 감탄할 지경입니다. 특히 그 인물의 심정이랄까 'MO'(modus operandi :행동방식)를 단칼에 요약해 놀랐습니다. 아마 KBS 일일드라마의 관계자는 이 도표를 보고 마음이 조금 상했을 것입니다. 사실 방송 관계자들은 패턴화 된 일일드라마의 양상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조롱하는 마음이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상당히 부럽기도 하죠. 똑같이 만들었는데도 시청자는 습관처럼 계속 일일드라마를 보고 있으니까요.


위 도표를 만든 이는 KBS 일일드라마를 조롱하고 있습니다. 연출과 작가, 배우가 달라질 뿐이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으니 재방송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방송이 어쩌면 이렇게 시청률이 계속 잘 나올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지만 재방송 같지만 재방송이 아니라는 것이죠. 오히려 KBS 일일드라마는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의 원형을 발굴해 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실은 드라마 기획에 대한 중요한 얘기를 보여주고 있어요. 많은 작가와 연출이 새로운 소재를 찾으려 머리를 쥐어뜯지만, 시청자가 사랑하는 드라마는 그리 새로울 필요가 없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드라마만 이런 것이 아니에요.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지금부터 한 가지 줄거리를 알려드릴게요. 이 줄거리로 이루어진 영화는 과연 무엇인지 맞추어 보세요.


 가족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바보 취급받는 한 아이는 자신에게 숨겨진 재능을 모르고 있습니다.


    "난 뒤 떨어진 아이예요." 


어느 날 아이에게 친구가 찾아오고 그 친구는 아이에게 숨겨진 재능과 새로운 운명, 물리쳐야 할 강력한 적이 있는 것을 알려줍니다.


    "넌 대단한 아이야. 너에게는 대단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어."


아이는 그런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 여정을 시작합니다.


"넌 떠나야 해" 


아이는 곧 새로운 친구, 스승을 만나 자신의 능력을 키우며 모험을 시작합니다. 


    "난 스승처럼 보이진 않지만 너의 스승이자 친구다." 


그 모험의 여정에서 주인공은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사랑을 하기도 합니다.


    "비루했던 내가 새 친구도 사귀고 애인도 생겼다네." 


결국 주인공은 최후의 순간, 가장 강력한 적을 만나 피치 못할 한 판 대결을 벌여야 합니다. 


    "내가 너의 강적이다."


이런 이야기로 만들어진 영화는 무엇일까요?

1. 스타워즈 2. 매트릭스 3. 트랜스포머 4. 반지의 제왕 5. 위의 영화 모두 다


아마 여러분은 답을 이미 아셨을 겁니다. 즉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웅의 이야기는 하나의 원형을 가지고 있고, 그 이야기는 새로운 변종을 계속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조지프프 캠벨이라는 신화학자는 전 세계 민족의 신화에 공통점을 발견하고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라는 책을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민족의 영웅은 모두 다른 모습을 지녔지만 같은 길을 걸었어요.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 살았지만 모두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죠. 


마찬가지로 KBS 일일드라마가 지향하는 가족 드라마나, 멜로 이야기도 어느 정도 이런 원형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결국 콘텐츠 제작자로서 위 그림의 이야기 구조나 인물 관계는 여러 번 나왔으니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속단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위의 이야기를 원형으로 삼고 시청자들이 도대체 어떤 익숙한 틀을 사랑하고 있는지 세밀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원형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틀어주거나 새로운 시도를 해서 시청자의 식상함을 막아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의 도해는 조롱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연구의 대상이 되어야 해요. 드라마를 준비하는 당신은 이 그림의 이야기를 토대로 어떤 새로운 기획을 만드실 수 있겠어요? 기획은 이렇게 완전한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과정입니다. 


오늘 전하고 싶은 내용은 바로 이것이었어요. 시청자들은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비교적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과정이 드라마의 기획이다.'라는 것이에요. 여기서 '비교적'이라는 수식어에 방점이 찍혀야 합니다. 앞으로도 일일 드라마의 주인공은 모두 비슷한 길을 걸어갈 것이에요. 중요한 것은 이들이 그 길을 어떻게 걸어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어떻게'라는 부분에 콘텐츠 제작자는 새로움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무려 이 시절에도 답을 알았으면서, 왜 드라마는 그렇게 한심하게 만들었을까? (2023/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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