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여덟 바람을 담아내며
담당교수: 김용선(선문대 교양학부/한국문학콘텐츠창작학과)
2022년 가을, 천안아산에 자리한 선문대와 인연을 맺었다. 교양학부에서 글쓰기와 토론을 가르치며 세월을 보내다 25년 초가을, 여름 더위의 열기가 여전히 식지 않은 시점에 단과대학의 역사에서 저편으로 넘어가 정리되고 있는 ‘한국문학콘텐츠창작학과’의 강좌를 하나 맡게 되었다. 〈고전콘텐츠의 현대화〉라는 3학점 전공선택 과목. 수강신청 마감이 다가오면서 스물 두 명이었다가, 스물 한 명이었다가 열아홉으로 추려졌는데, 학기가 시작되고 강도높은 수업이 이루어지자 여기에서 여덟 명의 여학생이 지레 겁을 먹고 수강포기를 하고 말았다. 진작에 수강포기를 하겠다는 학생을 포함하여 열 한 명이 남았고, 이들 중에 두 명은 작가소개 마감을 지키지 못해 ‘금기위반’의 서사법칙에 따라 브런치에 함께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여덟 명의 학생이 브런치 원고 업로드 자격을 받았다.
코로나19 이후 소위 ‘뉴 노멀’이라 불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이며 4차산업의 시대. 80년대 신자유주의의 방향이 방황으로 나침반을 잃은 듯한 2025년 가을. 충남 천안아산 탕정면 매곡리에서 담당 수강생을 대상으로 무언가 ‘추억’도 되고 ‘이력’이 될 만한 것을 꾸려보자니 우리만의 ‘야담(野談)’을 엮어보는 것이 어떠한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편자(編者)의 아이디어가 구체화되려면 학생들이 잘 따라와주어야만 했다. 더이상 학생모집이 되지 않는 학과에는 2학년이 된 05년생 24학번부터 4학년 졸업반인 20학번까지 나름의 사연을 가진 청년들이 남아 있었다. 2학년 과목이지만, 고학년들이 보다 많은 전공수업. 이미 취업계를 낸 학생도 포함된 것이었다. 80년대 후반 종합대학 승격 이후 설치된 국어국문학과의 학과명이 2024년 한국문학콘텐츠창작학과로 변경되고 불과 1년만에 ‘폐과’대상이 되며 학생들은 기운을 보다 잃은 듯 했다. 2학년에게는 더이상 새내기 후배가 없고, 3, 4학년들에게는 짧고도 긴 추억이 날아가는 듯한 두려움이 엄습했을 것이다. 이 아이들은 교정에서 ‘야인(野人)’처럼 덩그러니 남게 된 것이다.
선문대의 ‘마지막’ 국문과 학부생들에게 가르칠 만한 서사장르로 무엇이 있을까 하다가 ‘야담’을 고르게 된 연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과목명이 ‘고전콘텐츠의 현대화’이므로 고전을 선정해야 했는데 조선시대 야담을 고전으로 지정하고 주교재로 �천예록�을 선정했다. ‘현대화’의 테마로는 근래 부흥기를 맞이한 K엔터계의 화두 ‘오컬트’로 정했다. 야담, 오컬트, 그리고 천예록. 한국고전서사와 K서브컬처와의 조우를 학생들과 풀어보려는 것이 학기의 강의 계획이었다. 아이들은 겁을 잘 삼키는 학생들이었다. 스무해 넘게 살아오면서 여기저기에서 받은 상처도 있을 것이었고, 회피와 도망을 ‘방어기제’로 삼기도 했다. 수강생들의 눈빛은 이러저러한 아픔으로 ‘경계’를 지니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필명을 지어보라 하고, 자기소개를 써보라고 작은 비공식 과제를 내주었다. 자신들의 캐리커처를 교수가 그려주니 아이들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학생들을 ‘작가’로 대우해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자신을 소개하는 글에 ‘생성형 인공지능’을, 그러니까 챗GPT를 ‘돌리는’ 아이는 없었다. 하지만 대학레포트에서, 과제에서는 적잖이 ‘손쉬운’ 디지털 손길이 엿보이곤 했다. 큰 기대나 욕심을 쉽게 가질만한 환경은 아니었던 것이다. ‘엘리트’로만 구성되어도 콘텐츠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엘리트와는 거리가 먼, 서사의 기본 이론도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학생들과 문화콘텐츠로의 결실을 맺으려니 어찌 어려움이 없었으랴. 그 사이의 과정에는 다양하고도 험난한 갈등도 있었다.
편자의 강의는 학부생의 그것이기보다 어지간한 대학원의 석사과정을 연상케하는 정도의 강도였다. 오컬트가 엔터산업의 모티프로만 그치지 않고, 사회 이면을 굴절시키는 ‘거울’이라는 것을 학생들이 깨닫게 하기 위해 강의 내용에 다양한 정보를 교차시켰다. 이것이 수강생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최대한 재미있게 구성하려고 노력했지만 ‘젠지새대’들에게 효과적이었을지도 의문이었다. 간혹 보여주는 학생들의 미소와 웃음이 그나마 작은 응원이었다. 한국의 입시체제에서 ‘패잔병(敗殘兵)’같은 편견에 갇힌 아이들이 스스로 기운을 내고 사유의 강을 건너 일정한 결과물을 만들어야 했던 강의.
『탕정만담』은 쉽게 태어난 야담집이 아니다. 여덟 명 중에 단 한 명의 글만 남을지라도 일단 엮어보겠다는 심정으로 덤빈 ‘이벤트’였다. 혹자(或者)는 ‘여기 아이들에게 무슨 그런 애정을 주냐? 고마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한참 후에나 깨달을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기브앤테이크’가 아니다. 교수자와 학습자의 관계로 연을 맺은 인문관 2층 202호 목요일 세 시간의 모임 구성원들이 서로 응원해가며 엮은 ‘운동’의 결과물이다. 어쩌면 �탕정만담�은 2025년 가을과 겨울에만 유효한 기록일지 모른다. 더이상 확대 재생산이 어려울수도 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는 없다. 이들의 서사가 전설이 아니라 민담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남학생 넷, 여학생 넷의 여덟 명. 조별과제와 개인과제로 제출한 결과물들을 손보아 카카오브런치의 웹진 �탕정만담�의 바구니에 넣었다. 탕정면 매곡리 인문관 2층에서 목요일 12시반부터 오후 세시 반까지의 만남. 우리는 단톡방을 만들고, e강의동에 과제물을 제출하고 점검하며 어엿한 콘텐츠로의 모색을 꿈꾸었던 것이다. 편자는 교수자로 학생들에게 강의하며 서사이론부터 문화이론, 엔터업계의 실무적인 부분까지 강론했다. 수강생들은 점심도 거르며 수강에 임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화를 보였다. 길지 않은 가을과 겨울의 마주함이지만, 그 사이에도 학생들은 국문학도로의 나이테를 그렸을 것이다.
대학생이다보니 평점과 학점이, A+학점이 F학점보다 중요할지 모르지만, 아이들에게 정작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무엇’임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플라뇌르가 되어 캠퍼스를 산책하며 사색과 사유로 정신을 넓히고 용기내어 세상에 도전하는 청춘이기를 바란 것이다. 기업들은 대학이 부여하는 학점과 성적에 의구심을 가진지 오래되었고, 인재(人材)로의 졸업생들을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하여, 신입사원 채용이 줄고, 경력직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취업률에 명줄을 건 대학으로서도 어려운 현실이다. 한국문학콘텐츠창작학과의 2학년 전공선택 강의 〈고전콘텐츠의 현대화〉 수강생, 브런치에 원고를 올린 여덟 명의 청년들 모두 공들여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꾸려나가기를 바란다. 20대 초반에 쌓아올린 작은 공이 세상을 조금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 훗날 나이들어 다시 뒤돌아보는 순간 이 바구니가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적어도 소금기둥이나 바윗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리라. 〈탕정만담〉의 독자 분들께서 이들을 응원해주시기를 바라며 후문의 문고리를 다시 돌려 열어본다. 푸른 바람이 스친다. 여덟 갈래의 푸른 바람이.
*덧붙여 학부 새내기로 선배들과 조각배 탑승을
용기낸 네 명의 스무살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부록의 사진은 볕뉘의 촬영으로 이루어진
추억의 편린이다. 인화한 사진을 학우들에게
나누어준 볕뉘에게 다시 고마움을 전한다.
학생들의 글은 '비문'과 '논리 결여'로 함부로 내보일 만한 것이 아니었다. 하여, 조별과제만 공개하고 개별과제는 스스로 반성을 기하기로 하였다. 아직 '문단'의 개념조차 제대로 인식되지 않은 원고가 상당하였기 때문이다. 손쉽게 대중과 웹에 업로드할 만한 것이 아님을 학생들에게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 역시 교육의 하나라 생각되었다.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손쉽게 과제하는 것에 익숙한 환경 속에서 빈익빈부익부처럼 생성형 A.I.는 소위 똑똑한 아이는 더 똑똑하게 만들고, 멍청한 아이는 더 멍청하게 만드는 시스템으로 작동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쉽지만 3학년은 물론 졸업학년인 4학년이 포함된 강좌에서 학생들의 과제를 날 것 그대로 내보이기에는 문제가 생각 이상으로 심각함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 곳의 아이들은 누구도 돌보아 주지 않는다. 어쩌면 방치된 청년들이라고 보아도 될 지 모르겠다. 스스로가 자신을 방치하지 않고 수정해 가기를 바랄 뿐이다. 성인의 세계란 누구도 돌보아주지 않는 탓이다. 엘리트 학생들은 자신들끼리 집단지성을 만들고 서로 경쟁하며 수정해가기 바쁘지만 그 세계에서 도태된 청년들이 자신들을 거듭나게 할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우리 학생들은 거듭나고, 또 거듭나리라 기대하고 기도한다. 비록 목차에 걸맞는 결실과 결과물은 맺지 못하였지만 이것이 자신의 냉정한 현주소를 점검하고 나아가는 토대가 될 것으로 그것이야말로 '산교육'일 것이라 스스로 위안을 삼고자 한다. 어쩌면 이는 우리 모두의 위안이다. 날이 점점 추워진다.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모닥불이 무엇인지 우리 기성세대들은 반성해보아야 한다. 청년들 스스로도 자신들을 부디 돌아보기를 바란다.
서울을 향하는 열차의 객실 안에서 담당 교수 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