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운숙* (정예진, 선문대 제약화장품공학과 25학번 1학년)
[독자분들에게] *아래의 에세이는 선문대 2025학년도 2학기 <창의적 사고와 글쓰기> 수강생 중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여 별도의 브런치 원고를 작성하게 한 결과물입니다. 아직 학부 1학년들의 글이기에 '비문', '문법오류', '논리 부족' 등의 결함이 있을 수 있지만 독자 분들께서 너그러운 시선으로 읽어주시고 응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고대의 국가는 제정일치 사회로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며 권력이 나뉘고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면서 샤먼의 위치는 자연스레 밀려났다. 그러나 한국의 샤먼이라는 것은 단순한 종교나 신앙이 아니었다. 공동체의 삶과 죽음을 보듬어주는 정신적 기반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국적인 것”을 말할 때, 보기 좋고 자랑하기 좋은 요소만을 꽃꽂이하듯 골라내는 듯하다. 무당, 즉 샤먼은 늘 감춰지는 존재였다.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속된 것, 또는 미신이라는 시선으로 쉽게 내려쳐진 것이다. 특히 도서[무당도 직업이다]에서 지적하듯, 무속이라는 말 자체가 일제강점기 식민 통치 과정에서 ‘미개하고 속된 것’이라는 뉘앙스로 만든 표현이다. 이 탓에 샤머니즘은 근대화 과정속에서 ‘청산 대상’, ‘후진성의 상징’이 되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샤먼에 대한 혐오와 편견은 단순한 인식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주입된 혐오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샤머니즘은 오히려 우리가 잃어버린 ‘기억’과 ‘정체성’을 담고 있다. 이 글에서는 영화 <만신>(2014) 속 실제 만신 ‘김금화(1931~2019)’의 삶을 통해 한국 고전 오컬트가 어떻게 역사 속에서 지워졌고 다시 어떻게 살아나는 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영화는 오컬트가 그렇듯, 어린 금화가 타인은 볼 수 없는 존재들을 인식하며 두려워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는 단순히 귀신을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잊어버린 감각인 죽음의 세계, 무형의 존재, 그것을 다루는 힘이 금화로 인해서 되살아나는 장면이다. 가족은 이 능력을 단순히 귀신들림으로 인식하지만, 영화는 오히려 샤먼이 ‘선천적인 매개자’라는 것을 강조한다. 샤먼은 이처럼 하고 싶다고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신비로운 신 스스로 들어갈 몸〔인간〕을 선택하며, 매개자가 되는 몸〔인간〕은 신에게 선택 받는 피동적 존재이다. 영화 속 만신의 만신받이 과정은 무당 ‘금화’의 존재를 통해 무속이 미신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땅과 하늘의 사이를 이어주는 감각적이고 추상적인 종합예술라는 것을 증명한다. 이 장면은 한국의 오컬트가 단순히 주술이나 신비로운 행위가 아니라, 삶과 죽음, 세계를 읽어내는 행위라는 것을 나타낸다.
영화의 중반부, 미신타파운동과 국가 폭력으로 인해 굿판이 부서지고, 무당들이 끌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금화는 몰래 굿을 이어나가는데, 국가의 탄압에도 멈추지 않고 굿을 지속되었다는 것은 샤머니즘이 단순한 주술 행위가 아니라,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정신적 기반이었음을 말해준다. 굿은 억압의 시대에 더욱 강해지고 결속되었다. 국가가 제거하려 했던 ‘미신’은 언제나 공동체의 가장 낮은 계급에서 끊임없이 되살아나곤 했다. 이 장면으로부터 한국 오컬트가 왜 사라지지 않았는가에 대한 답의 일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필자가 얻은 결론은 이것이었다. “(민중에게 무속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라고.
영화 후반부에서 김금화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순간은 한국 샤머니즘이 공식적으로, 제도적으로 부활하였음을 보여준다. 오랜 세월 미신, 속된 것, 낮은 것으로 취급받고 탄압받던 무당이, 이제는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존재로 인정 받는다는 사실은 단순히 김금화 개인의 명예가 아니다. 샤먼의 춤, 노래, 굿 그 자체가 문화유산으로 인정받는 것은 샤머니즘이 이 땅의 기억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문화라는 것을 인정하는 장면이다.
이로서 샤머니즘이란 것은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공동체의 슬픔과 상실을 견디기 위해 의지해 온 가장 오래된, 가장 한국적이며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지금 우리가 샤머니즘을 잊지 않고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잊힌 전통을 복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 즉, 죽음, 상실, 두려움 등을 다루는 능력을 되찾기 위한 것이다. 만신 김금화가 무속에 자신의 인생을 몽땅 바쳐 민중들에게 보여준 것은 고답적인 샤먼의 삶이 아닌, 너무도 낮은 곳에 머문 인간의 삶이었다. 그것이 억울한 민중들의 한을 푼 해원의 비결이었을 것이다.
글 감수: 굴레방타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