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공간에서 장소로

디자인이 삶을 바꾸는 순간

by Utopian

공간과 장소의 차이

다음 세기를 이어갈 공간의 창조, PBV는 단순히 이동을 위한 잠깐의 비공간이 아니라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이동을 목적으로만 쓰이던 운송기기의 영역이 이제는 그 안에서 머물고, 그 안에서 삶의 목적을 이루는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기존의 카라반과 같은 거주를 위한 임시 장소이거나 레저를 위한 별도의 공간이 아니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장소의 한 장르가 되고 있다.

미래 모빌리티는 이렇게 다양한 가능성을 담아내며 제시되고 있으며, 이를 현실로 만드는 자동차 메이커들의 도전은 단순한 제품 판매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다.

지금까지 자동차를 선택하는 기준은 주로 성능, 디자인, 가격이었다. 소비자는 여러 모델을 비교하며 장점과 단점을 따졌고, 그 기준 안에서 구매 여부를 결정했다. 하지만 테슬라는 이 전통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난 사례다. 테슬라는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지속적인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OTA를 통해 진화하는 생태계의 일부로 제시했다. 소비자는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관 속의 삶을 상상하게 되었고, 결국 자동차는 하나의 물건을 넘어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자동차 구매자가 지불하는 수천만 원이 단지 물리적 제품 하나에 머무르지 않고, 시간이 흐르면서 끊임없이 개선되는 사용 경험으로 이어진다는 확신이 자리 잡은 것이다. 작은 기능이나 외형보다 더 큰 가치, 즉 나의 삶을 업데이트해 주는 가능성이 중요해졌다. 그 결과, 테슬라는 전통 메이커와는 다른 방식으로 장기간의 제품 개발과 모델 변경을 진행하면서도 더 높은 수익을 얻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었다.

EV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분명히 미래의 현실이다. 과거에는 엔진 성능과 속도가 자동차의 가치를 대표했지만, 이제 자동차는 삶의 도구가 되고 있다. 더 나아가 특정 기업이 제공하는 생태계는 팬덤을 형성하고, 고객의 행동 패턴마저 바꾸어 놓는다. 이는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양식 자체를 재구성하는 힘이다.


“사람은 오직 꽃을 심을 뿐 꽃의 모양을 디자인할 수 없다.”


장소와 제품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삶과 행동을 고려해 장소를 만들고, 제품을 준비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이 삶의 일부가 되지는 않는다. 만약 그 안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지 못한다면, 그것은 기능에만 묶인 단순한 물건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특정 기능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필요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하는 일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서사는 다시 생태계로 피드백되고, 다른 사람들과 공감을 나누는 기반이 된다. 결국 핵심은 ‘사람의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다.

PBV가 지향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우리는 그것을 단순히 미래 모빌리티의 새로운 수단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는 바탕이자 장소로 정의하려 한다. 사용자는 단순히 기능을 활용하는 소비자가 아니라, 그 공간 안에서 자신만의 삶의 이야기를 쓰는 주체가 된다.

만약 제품을 넘어선 생태계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 가치는 금세 날카로운 비판에 갇힐 수밖에 없다. 결국 질문은 이렇게 귀결된다. ‘어떤 삶의 모습을 담을 것인가?’
단순히 물건을 사고, 물품을 배송하고, 사람을 태워 목적지에 도착하게 하는 것은 기능의 이야기일 뿐이다. 진정 필요한 것은 사용자의 마음을 건드리고, 그로 인해 달라진 삶의 표정을 드러내는 서사를 담아내는 것이다.

PBV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거주의 형태를 제공한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지어 나가고, 그 자체가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 공간을 짓는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행위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 틀을 제공하는 일이다. PBV는 바로 그 틀을 제공함으로써, 양산 체계에 묶인 기존 모빌리티의 한계를 넘어 사람들에게 삶을 짓는 공간을 내어주려 한다.


“밭도 나무도 정원도 내게는 그저 하나의 공간이었다. 나의 가장 사랑하는 당신이 그것을 장소로 바꾸기까지는.”– 괴테


우리는 흔히 공간과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한다. 일정한 크기의 면적을 두고 단순히 공간이라고 말하거나, 무언가를 하는 장소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두 개념은 같지 않다. 자동차의 공간이 모빌리티의 공간으로 확장되는 변화는 이미 이해되고 있지만, 그 공간이 ‘나’라는 존재와 연결되어 ‘장소’로 변모하는 과정은 아직 충분히 정의되지 않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Space & Place’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단순한 공간을 넘어 나와 우리의 이야기가 담긴 장소가 될 때, PBV의 진정한 의미가 드러난다. 공간은 물리적 조건이지만, 장소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다. PBV가 장소가 되려면, 단순한 이동 기기가 아니라 삶을 담는 무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만들어 가는 모빌리티의 핵심적인 전환점이며, PBV의 공간성을 새롭게 정의하는 열쇠다.


공간은 해의 움직임과 함께 변하고, 장소는 사람의 움직임과 함께 변한다.
- 거주하는 장소 김광현-


Dymaxion Car (1933) Richard Buckminster Fuller
Dymaxion Car (1933) Richard Buckminster Fuller

다이맥시온 하우스에서 PBV까지

1933년, 버크민스터 풀러는 다이맥시온 카와 하우스를 통해 미래 거주의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단순한 건축을 넘어, 기술과 인간의 삶을 연결하는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고자 했다. 당시에는 파격적인 실험으로 여겨졌지만, 오늘날 우리는 풀러가 던진 질문을 다시 마주하고 있다. 거주와 이동, 그리고 삶의 공간은 어떻게 결합될 수 있을까?

Buckminster Fuller's Dymaxion House
Dymaxion House Interior

그동안 자동차 제조사들이 집중해 온 가치는 명확했다. 브랜드마다 ‘운전의 재미’, ‘안락한 승차감’, ‘안전성’과 같은 아이덴티티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들은 소비자들의 취향과 요구를 세밀하게 추적해, 가장 적합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데 힘을 쏟았다. 그래서 내연기관 자동차는 성능과 디자인에서 이미 완성에 가까운 수준에 도달했고, 쉽게 따라올 수 없는 높은 진입장벽을 형성했다.

하지만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배터리와 모터 중심의 단순한 구조 덕분에 기술적 장벽은 낮아졌고,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무대가 열렸다. 이제 자동차는 단순히 달리는 도구가 아니라, 정지 상태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가 등장했다. 이동 그 자체에서 가치를 찾는 것이 아니라, 멈춰 있을 때 어떤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진 것이다.

전통적인 제조사들은 여전히 ‘이동’이라는 틀에 머물러 전기차를 해석하려 한다. 그러나 새로운 도전자들은 다르게 묻는다. “이 공간에서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움직임의 경험이 아니라, 멈춤의 경험. 이것이 앞으로의 모빌리티를 정의할 핵심이다.


공간에서 장소로

자동차 디자인과 제조는 이제 근본적인 전환점을 맞고 있다. 과거에는 주어진 크기와 형식 안에서 최대한 완벽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이제 중요한 것은 완성도가 아니라 비워둠이다. 사람마다 다른 의미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도록 여백을 주는 것, 그것이 새로운 디자인의 역할이 된다.

즉, 자동차는 ‘완제품’이 아니라 ‘틀’이 된다. 사용자가 자신의 취향과 필요에 따라 공간을 장소로 바꾸어 갈 수 있어야 한다. 이때 비로소 자동차는 소비자가 아닌 사용자의 삶을 담는 그릇이 된다. 내가 기억을 쌓고, 이야기를 남기며, 일상의 목적을 이루는 장소. 그것이 앞으로의 모빌리티가 지향해야 할 가치다.

이 변화는 단순히 제품의 성능을 개선하는 차원이 아니다. 도시의 의미 자체를 재편할 수 있다. 기존의 도시는 고정된 건축물과 부동산에 의해 형성된다. 하지만 모빌리티가 거주의 틀로 확장된다면, 이동하는 도시, 움직이는 집이라는 새로운 물리적 플랫폼이 나타날 수 있다. 그 순간, 장소의 가치는 특정 지점에 고정되지 않고, 이동을 통해 끊임없이 새롭게 정의된다.

따라서 앞으로의 모빌리티는 단순히 “무엇을 하기 위해 구입하는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이루고자 하는 성취를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 된다. 사용자가 목적에 도달했을 때, 그 옆에 있어야 할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디자이너의 새로운 역할

이제 자동차 디자이너의 일상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프로젝트의 크기와 형식에 맞추어 스케치를 시작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가능한 미래상을 먼저 그려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고자 하는 방식,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상상해야 한다. 그 상상 위에 기능을 더하거나, 사용자의 취향이 제품을 개선할 수 있는 여유를 마련해야 한다.

즉, 디자이너는 더 이상 “형태를 만드는 사람”에 머물지 않는다. 새로운 플랫폼의 사용자가 되어 먼저 경험하고, 그 경험을 통해 공감을 설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공감 없는 디자인은 생명을 얻지 못한다.


“ 장소는 주거에 가깝고, 공간은 도시에 가깝다”

거주하는 장소 -김광현-


도시와 모빌리티

세계 각국은 앞다투어 스마트 시티를 구축하고 있다. 교통과 에너지, 서비스가 연결되어 끊김 없는 도시를 만들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민의 필요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대응하려 한다. 이런 도시 공간에서 모빌리티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개인의 삶을 담는 장소가 된다.

자동화된 도시는 사람을 고립시키는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공유 공간을 활성화하며, 교류와 연결을 촉진한다. 모빌리티는 이러한 도시의 활력에 기여해야 하며, 개인을 닫힌 공간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도시와 사회로 확장시키는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


디자인과 가치

자동차 디자인의 본질은 결국 공간을 장소로 바꾸는 일이다. 엔지니어가 만들어 놓은 기술적 구조를, 사람의 삶을 담는 무대로 전환하는 것은 디자이너의 상상력이다. 자동차는 단순한 성능의 집합체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이어주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긴장이 존재한다. 세상은 언제나 가치를 보상받으려는 사람들과, 남의 가치를 빼앗아서라도 성공하려는 사람들 사이의 경쟁으로 움직인다. 원래의 아이디어와 노력이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진정한 창의성이 빛을 보지 못하고, 약삭빠른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자동차 디자인 분야는 거대한 기업 구조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빈번하다. 진짜 재능 있는 디자이너의 열정과 순수함은 종종 충분한 역량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 짓밟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결국 새로운 모빌리티의 미래는 진정한 이해와 공감, 그리고 끊임없는 상상력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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