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선 디자이너

ㄷ ㅣ ㅈ ㅏ ㅇ ㅣ ㄴ ㅓ # 1

by Utopian
나는 디자이너와 예술가의 그 어딘가의 경계에 있고자 했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것은 변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서 많은 고민과 새로움과 좌절을 겪어왔습니다.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이상적인 미래상을 그려놓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서 그곳에 다다르고자 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당장 제안 해야 할 알로이 휠의 디자인을 하면서도 브랜드 가치에 기여할 아이덴티티를 가진 휠디자인을 상상하고 있다면 분명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당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빨리 선진 시장을 따라가기 위했던 패스트 팔로워의 입장에서는 근본적인 아이덴티티를 고민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팀장들은 당장 맘에 드는 안이나 가져오라고 소리를 쳐대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렇게 3년이면 익숙해질 줄 알았던 회사에서의 삶은 아직도 그러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입니다. 좋은 점은 뜻하는 바를 이루는 데에 필요한 기술이 늘어가는 것입니다. 요령을 터득해 가기 때문이죠. 여전히 거시적인 가치를 이루고자 하고 세상의 흐름은 대의를 만족시키기에 필요한 기술의 발달로 인해 더 용이해졌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제안을 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입니다.


다가오는, 아니 이미 들어와 버린 VUCA (Volatile Uncertain Complex and Ambiguous ) 시대에 디자인은 또 어떻게 변화해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정리해 두려 합니다. 그리고 연이은 Ai의 공격으로 디자이너의 삶에 대한 가치를 정리하고자 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내게 묻는다면


당신은 왜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너무나 순수하거나 몰랐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저 지나는 자동차와 우리가 쓰는 물건들, 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건물들과 각종 매체들에서 뭔가 "이랬으면 좋겠다"라는 게 많은 편이었고 " 이러면 어떨까?" 하는 생각들을 해 왔습니다. 그것이 "디자인" 이란 분야라는 것을 안 것은 나중에 고등학교를 들어와서였고 "산업디자인"이라는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산업'이라는 말이 들어가니 분명 그것은 공과대학에 속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난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뉘는 '이과, 문과에서 이과를 선택해야 하는구나' 라며 호기 있게 이과를 선택해 고등학교 2학년을 거의 지나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알아보지 않거나 정보가 부족한 상태를 쉽게 믿어 버린 어리석음에 가깝지만 호기 있는 행동에는 칭찬을 보냅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인 해의 10월이 되어 교내 작품 전시회를 하게 되고 나름 그림 좀 그렸다 싶어 당시 유행하는 자동차를 흔히들 이야기하는 '정밀 소묘' 마치 흑백사진처럼 그리는 방식으로 그려 작품 전시를 신청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작품 전시를 위해 그려놓은 자동차를 제출하려 할 때 학교 미술부원이 아니면 전시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얼마나 화가 나던지 그럼 그 미술부원을 들겠다고 하니 이미 2학년이고 이제 3학년 대입 준비를 해야 하는데 불가하다는 말을 듣고 분노에 차 있던 순간 그 미술부원 중에 한 명인 친구가 와서는 미술학원을 가자는 제의를 합니다.

그렇게 따라간 학원 아니 화실에서 원장님을 뵙고는 하는 저의 첫마디는

"저기 벽에 있는 것 정도로 그리면 되나요?"

분명 순간의 정적이 흘러나왔을 것이고 원장님은 어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잘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냥 웃으시면서 할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뒤늦은 미술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어떤 종교단체에서 “휴거”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퍼트려 그 종교를 따르면 천당을 가고 혹시 올라가는 과정에서 떨어질 수도 있으니 낙하산을 사는 사람들이 그 해겨울을 정신없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아무리 이해를 하려 해도 할 수 없었던 시간입니다.

“천당?” 그리고 하늘로 날아오른다고?

어차피 날아오르는 능력이 있다면 낙하산은 왜 필요하지?

말도 안 되는 비이성과 비과학이 어설픈 현실인지와 함께 반죽이 되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광기가 몰아치고 있었고 그렇게 10월 말 휴거가 있어야 했던 날은 아무 일 없이 지나고 새로운 날이 시작되고 저 또한 처음 화실로 가서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2학년말부터의 입시준비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1년여간의 짧다면 짧은 시간의 본격적인 미술수업이 시작되고 그"산업디자인"은 미술대학에 속해 있으며 보통 미대 준비를 하는 학생은 '문과'를 지망해서 내신성적에 유리한 상황으로 대입을 준비한다는 상식을 넘어 이과에서 미대 입시를 준비합니다. 지금은 문과 이과의 구분이 어떤 식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당시에는 '과학자', '기술자'등의 분야가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분야였고 그러다 보니 이과생들의 성적이 더 우수했습니다.

결국 내신성적을 올리기에 이과는 불리한 조건이었습니다.

그렇게 산업디자인 그리고 운송기기 전공의 학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자동차를 그리고 제품의 모양과 기능을 살펴보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디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은 아직도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질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여도 이야기하자면

"디자인은 삶을 이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잘 만든 도구"

라고 생각합니다.

선진적인 디자이너들에 의해 기존의 도구들은 대량생산의 방법론을 터득하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더 편리하고 아름다운 물건을 원하게 되는 욕망이 확대되어 생산과 소비를 가속화해 그로 인한 산업의 발전은 있었지만 그만큼의 환경 파괴가 이루어졌다는 생각들도 있습니다.


제 스스로도 "아름다움"은 디자인의 최고의 가치였으며 더 아름답게 더 달라 보이도록 디자인을 하기 위한 스타일링에 온 힘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위해 미술적 소질을 가진 이들이 디자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고 그곳에서 아름다운 스케치를 통해서 디자인 안이 선정됩니다. 그 이후에 생산할 수 있는 수준의 엔지니어링을 통해 제품으로 소비자들에게 선보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시간을 지나고 다양한 경험을 쌓게 되면서 진정 훌륭한 디자인은 환경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언제 봐도 어색하지 않으며 실용적인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디자이너는 아름다운 모양을 만들기 위한 노력 이전에 이것이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디자인 선정 과정에서는 이 디자인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낼지를 논의해야 합니다. 여러 개의 안들을 벽에다 붙여두고 고르는 방식의 디자인 선정은 더 많은 생산과 판매를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디자인은 이러한 주변의 영향을 고려한 디자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는 도구. 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도구.


그러면 지금까지의 디자인 중에서 좋은 디자인은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은 각 디자이너마다 자신의 분야에 대해서 관심 있었던 부분이 있었을 것인데 제 경우는 피닌파리나의 모듈로라는 콘셉트카를 예로 들고 싶습니다.

1970년도의 자동차이지만 제게는 앞으로의 자동차가 이런 가치관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차량은 대중을 위했던 차량은 아니라 스타일링 혹은 아름다움에 치우친 디자인이지만 제 생각에는 자동차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사치와 진정성을 같이 가진 자동차라 생각됩니다.

피난파리아 모듈로

특히나 중간을 가로지르는 페라리 특유의 빨간색 라인은 93센티밖에 되지 않는 전고를 더 낮게 보이게 하며 길이 대비해서 가장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퀴의 크기에 따라 최소한의 공간을 제외하고는 덮어주는 형상은 자동차와 어떤 조형물의 경계에서 조금은 더 예술품에 가까운 듯한 움직이는 조형 예술품입니다. 물론 5리터 12기 통 엔진은 550마력을 내며 최고 354km/h와 제로백 3초의 어마어마한 성능을 가지고 있지만 저렇게 단아한 모노 볼륨의 Retro Futuristic 형상과 어우러져 반전의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보통 좋은 디자인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어느 면 선하나 거슬리는 것이 없이 미래상에 대한 당시의 관념이 줄 수 있는 자동차로서 최고의 걸작이라고 생각됩니다.

모듈로의 스케치

현란한 디자인 스케치가 아닌 너무나도 담백한 필요한 부분을 이해 시키키 위한 스케치와 핵심적인 부분만을 강조하는 디자인, 나머지 부분은 그를 보조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는 디자인입니다.


그러면 디자인적인 가치가 무엇이길래 그렇게 평가하시나요?

위에서 이야기한 '사치'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지금은 자동차가 운송수단으로써의 의미가 더 크고 실용적 효율적 경제적 등의 실질적인 의미가 있는 제품이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모듈로는 수납공간이란 존재하지 않고 타고 내리기도 불편할 것이며 관리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콘셉트 카이고 양산과는 거리가 있어 그럴 필요도 없지만 이것이 양산된다 가정하더라도 이 차량은 지극히 불편한 차량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과 성능 그 이외에는 어떤 것도 만족스러운 부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치스럽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동차, 즉 운송기기가 현재의 기준으로는 이런 하나의 목적성만을 띈다는 것은 분명 사치스러운 일입니다. 전고 93센티 전폭은 204센티 전장 448센티의 극적으로 낮고 넓은 비례를 가진 이런 차량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분명히 사치스러운 일입니다. 어느 누군가의 말처럼 비례가 좋은 차량은 흰 천을 덮어 두기만 해도 그 실루엣에서 이미 아름다울 것이라 한 것처럼 이 차량이 가진 비례는 지금까지의 어느 차량보다도 아름답습니다. 그것을 다 이룬 차량입니다. 그래서 양산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진정성'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디자이너가 바라던 자동차의 모습을 얼마나 실현시켰느냐 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차량을 디자인하는 동안 다른 어떤 유혹이나 조건에 앞서 이렇게 아름다운 형상을 찾아내기 위해서 얼마나 고심하였는가입니다. 그리고 다른 장식과 과장을 다 걷어내고 이렇게 근본만 남긴 것이 진정성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필요한 만큼만 남겨 그대로 두기는 쉽지 않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거 하나 저것 하나 더하고 싶은 것이 일반적인 일인데 그 유혹을 다 버리고 필요한 만큼만 남겨둔 것입니다. 진정 바라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요즘은 이런 아름다움을 위한 콘셉트카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곧 양산할 차종의 약간의 장식을 더하고 소재를 고급화해서 사전 행사 혹은 홍보를 위한 쇼카만을 만들어 냅니다. 새로운 생각을 담거나 미래의 환경을 제안하는 콘셉트카는 지금과 같은 불황기에는 만들어 지기가 어렵습니다. 페스트가 지나고 르네상스가 꽃을 피웠듯이 이 시기가 지나고 문화가 꽃을 피우는 때가 오면 다시 아름다운 콘셉트카들이 선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내연기관의 시대가 지고 새로운 파워트레인이 정착할 지금의 시기에 세계적인 재난이 지나면 반드시 새로운 생각들이 꽃을 피워야 합니다.


피닌파리나 모듈로의 리어 휠아치
Form Follow function

디자인은 기능을 따른다라는 의미로써 스타일링 위주의 디자인이 아닌 기능이 형태로 드러난 진정한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에 이를 수 있습니다. 리어 휠 상단부인데 제동 시나 주행 시에 내 부에 쌓일 먼지나 뜨거운 열기를 배출하는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과장 없는 정교한 형상으로 뚫어 놓음으로 해서 생긴 디자인은 가로 세로의 비율, 원의 크기 그 중간을 가로지르는 시그니쳐까지 완벽합니다. 거기에다 휠 교환을 위해 열 수 있게 배려한 파팅라인까지, 거기에 그것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적절히 만족시키는 각각의 요소들이 당연하지만 너무 잘 조화가 되어있습니다.


"엔지니어링이 극에 달하면 아름답다"는 말도 있는데 그것과도 통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픈 이야기이지만 2차 대전 때 전투비행기들은 최적의 효율성과 성능을 위해 엔지니어링 된 기계일 텐데 지금 그 형상들을 보면 너무나 아름 답습니다.

Seafire FR47 늘씬한 비례에 이중 반전식 프로펠러(contra-rotating propellers)까지 더한 아름다운 전투기
모듈로 인테리어

인테리어의 공간은 더 함축적인 디자인의 정수입니다. 중앙에는 스티어링 휠만이 있고 그 작동방식도 일반적인 센터 포스트가 아닌 주변을 감싸는 듯한 형상으로 필요한 부분의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외장의 형식과 마찬가지고 기하학적인 형상의 아이덴티티를 지키는 시트 디자인과 어쩌면 난데없을 수 있는 양 쪽 가장자리에 있는 반원 형태의 기능 버튼의 클러스터까지 지금의 어떤 콘셉트 카라고 하더라도 이보다 더 흥미진진하면서도 안정된 내장 디자인을 보여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예상치 못한 즐거움과 필요한 안정감을 모두 갖춘 그러한 디자인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무언가를 달리 보이게 한다고 하면 어느 한 곳 남겨두지 않고 새롭게 하고자 애쓰는데 진정 새로운 것은 필요한 부분의 필요한 참신성이라고 생각됩니다.

모듈로 백라이트

패턴화 된 그래픽 요소 또한 디자인에서는 여러모로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 또한 기능성을 잃지 않는 요소이면서 전체적인 덩어리와 조형에서 악센트의 역할을 하는 의미 있는 패턴의 반복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넘치지 않는 선에서 또 지루하지 않은 선에서 경계에 서서 적정한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조화된 약간의 불균형이 운동성을 느끼게 합니다. 그것은 자동차 디자인에 필요한 요소입니다.

어떻게 보면 디자인에서 주요한 요소는 비례와 기능과의 조화인 것 같습니다.


그럼 이 디자인이 말씀하신 좋은 디자인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디자인의 가치는 변화한다고 생각합니다. 디터 람스의 10 가지 디자인 법칙은 여전히 A principle 가 아닌 The Principle이지만 그 가치는 진화를 거쳐가고 있습니다.

"디자인은 삶을 이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잘 만든 도구"

여기에 "아름다움"의 가치의 농도가 진해지고 "의미"와 "이야기"강해질수록 그것은 예술에 가까워집니다.

아!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이 많이 담길수록 예술에 가까워집니다. 왜냐하면 예술은 나의 생각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해서 공감을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공감"의 크기가 커질수록 "명성"의 크기도 커지고 유명세를 타게 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디자인의 가치는 변화해 왔고 이전의 아름다움은 앞으로는 의식을 가진 디자이너들의 노력이 필요한 시기가 왔습니다. 분명 "소비자"를 위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고객"이 있고 그것을 앞으로의 세상에는 "사용자"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디자인의 가치는 우리의 삶에 기여하는 것이어야 하고 그것은 여러 가지 적당한 수준의 물건을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물건을 잘 만들고 그것이 사용함에 있어서 여러 가지의 기능을 만족하면서도 심미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다르기 위해서 달라 보이게 만드는 것은 분명 의미 없는 노력이고 가치를 담은 이야기를 우리가 사용할 도구에 아름답게 표현해야 합니다.

필요한 만큼 생산하고 오래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전의 아름다운 자동차는 언제나 감동이지만 이젠 새로운 가치로 넘어가야 할 때입니다.


그럼 앞으로는 어떤 디자인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실 것 같습니까?

아직 나오지는 않았겠지만 앞으로는 디자이너가 정해진 것을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은 점점 사라져 갈 것이라 생각됩니다. 사람들의 인식의 수준은 높아지고 그에 따른 각자의 생각을 담고자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디자이너는 그들의 생각에 전문적인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 다양하고 더 창의적인 디자인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ㄷ ㅣ ㅈ ㅏ ㅇ ㅣ ㄴ ㅓ"는 종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변해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패션 디자이너/건축가/장식품 디자이너 등 개인 스튜디오를 운영할 수 있던 디자이너의 범위가 제품 디자이너 심지어는 다양한 규제와 대규모 연구 개발인력이 필요했던 자동차 디자이너에게도 가능해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초기 자동차 디자인 스튜디오 카로체리아의 새로운 개념일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 디자이너가 가치관과 함께 스스로의 맥락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예쁜 모양을 다듬어 주는 것이 아닌 주문자의 생각과 가치관을 디자이너의 전문 성으로 표현해 주는 것입니다. 아직은 시간이 좀 필요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이들은 지금과는 또 어떤 다른 준비를 해야 할까요?

기본적인 디자인에 대한 관심과 이해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그림실력이 있어야 하겠죠 그리고 한 가지 자신만의 가치관과 신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기존에는 제품 및 자동차 디자이너들은 기업에 속해서 기업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것에 많은 부분을 투자했었는데 이제는 각 개인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의뢰인의 요구를 창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거나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문적인 소양이 반드시 필요한 요건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디자인이 바꾸는 일상은 어떻게 될까요?

개인에게 맞춰진 필요한 만큼의 제품을 소유할 것이기에 미니멀한 디자인이 더 각광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화만큼이나 기업에서 제공하는 제품의 범위도 다양해질 것인데요 모듈화 된 파츠를 적절히 조합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제품도 있을 것입니다. 이는 특히나 제품 디자인에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데요. 가구와 가전제품의 경계는 더욱더 모호해질 것이고 쓰지 않는 동안에서 버젓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제품이라기보다 적극적으로 수납되거나 이동해서 미니멀한 공간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의 제품의 추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이라 하면 많이들 이러한 미니멀 하거나 모던한 공간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러한 환경이 대중적으로 널리 평준화될 것이고 여기에 각종 필요한 가구들이 수납되어 필요할 때만 쓸 수 있게 하는 기능성이 강조될 것입니다.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가치관에도 이러한 "비움"이 자리 잡아 지나친 소비로 인한 낭비를 만들지 않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렇다면 제품 하나하나의 디테일과 써지는 소재의 선택에서도 환경을 위한 배려를 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가격은 올라가야 할 것입니다. 더 싸고 좋은 물건이 아니라 비싸더라도 올바른 물건들이 생산되어 필요한 만큼만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디자인의 가치가 올라가게 되면 어쩌면 예술품과도 같을 것인데요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까지가 디자인이라 할 수 있을까요?

맞는 비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예술은 이해할 수 없어야 예술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즉 이해가 되지 않는 일 혹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끊임없이 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남들은 이해할 수 없거나 하기 어려운 어떤 일을 자신의 신념처럼 반복하고 발전시켜 나가면서 언젠가 그 예술이 누군가의 이해와 연결되면 작품으로 승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쩌면 쓸데없는 것을 만드는 FLEX가 예술의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어떡하면 필요 없는 일에도 저렇게 열심히 일수 있구나 그래서 예술의 경지다라는 것입니다.

너무 억측일 수도 있습니다만 미적인 취향을 가지고 두 가지를 구분 짓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디자이너인 제 입장에서는 필요에 의한 평가가 가장 이해하기 쉬었던 것 같습니다. 필립스탁의 주스 짜는 도구가 그 경계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예술적인 형상과 미적 가치를 가졌지만 분명 기능이 있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다만 알루미늄이라는 오렌지를 짜기에는 취약한 취약한 금속을 형상의 표현을 위해 활용했다는 것에서 제품이 아닌 예술품에 더 가까워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반면 디자인이라는 것은 예전 바우하우스에서 이념을 가졌던 것과 같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도구를 아름다움은 물론이거니와 실용적으로 미리 고려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는 필요 없는 것에 공을 들이는 것이 아닌 필요한 것에 세심한 배려를 하는 것이다 보니 어쩌면 예술의 그것보다 더 많은 고민과 고려가 있지만 예술품은 아닙니다. 여기에 가장 주요한 생산성과 비용에 대한 부분이 적용되면 예술과는 더 거리가 멀어집니다. 그리고 결과물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보니 제품이나 서비스가 나오게 되면 비슷하게 따라 하는 일도 생기게 되어 희소성 가진 예술과의 차이는 더 벌어지게 됩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