ㄷ ㅣ ㅈ ㅏ ㅇ ㅣ ㄴ ㅓ #2
더 싸고 좋은 물건이 아니라 비싸더라도 올바른 물건들이 생산되어 필요한 만큼만 쓰게 되는 것입니다.
"가성비"
가격 대비 성능비, 이른바 '가성비'는 오랫동안 우리의 소비를 지배해 온 가치였습니다. 중국이 세계의 생산 기지가 되고 미국의 대규모 소비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이 가성비는 최고의 가치로 여겨졌고, 오늘날의 '풍족함'을 이끌어냈습니다.
하지만 이제 각성해야 할 때입니다. 더 좋은 가격에 더 좋은 제품을 찾아 필요한 만큼 사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가성비는 박리다매(薄利多賣)를 이끌어 결국 지출 수준을 높입니다. 나의 노동은 그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더 많이 벌어야 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악순환의 고리로 들어가게 됩니다.
결국 제대로 된 물건 하나 없이 오래 쓰지도 못할 물건들만 넘쳐나게 됩니다. 그런 제품을 뒷받침하는 디자이너들은 더 다양하고, 더 달라 보이고, 더 유행을 따르는 제품을 디자인합니다.
몇 해전 런던의 디자인 어워드에 참석차 갔을 때 동행했던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불리는 한 분이 함께하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당신의 디자인 덕분에 사람들은 더 많은 소비를 하게 되고 그로 인해 환경오염이 더 심해졌습니다"
이는 비약이 심한 지적입니다. 그분이 아니더라도 좋은 디자인은 얼마든지 다른 이들에게서 나왔을 것이고, 소비자들은 그것을 소비했을 테니까요.
자이너의 업의 본질은 더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바우하우스에서 디자인의 가치가 만들어질 때, 그것은 산업적인 측면을 만족하는 양산 가능한 예술품을 만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칸딘스키, 미스 반데어로에, 그로피우스 등 학교의 교수들은 모두 예술가들이었고, 그들은 전쟁 후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생활용품과 주거 등 산업 분야의 혁신을 가져오고자 했습니다.
앞으로의 디자인이 개선할 삶의 모습은 필요한 물건을 좋은 품질로, 친환경적으로 생산해 오래 쓸 수 있게 하는 장인정신의 시대가 아닐까 합니다.
단순히 명품이라 부르는 비싼 물건이 아닌, 그리고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자원을 지나치게 훼손하는 것이 아닌, 서로의 삶이 적정 수준에서 영위될 수 있도록 적정 수준의 노동과 적정 수준의 수입이 만들어지는 선순환을 만드는 것이어야 합니다.
디자이너들과 기업의 경영진이 먼저 시작해야 하고, 소비자는 사용자로 변해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수선의 개념도 또 다른 디자인의 분야로 각광받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의 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미의식에 대한 개선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가 가진 디자인 자원들을 활용해 주변의 환경이 획기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디자인 혹은 미의식에 대한 개념은 누구에게나 "난 이게 좋아, 아니면 저게 좋아"라는 방식으로 존재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그런 선호도를 체계적으로 다듬어갈 수 있는 학습이 필요합니다.
이런 미의식의 개선은 생활 전반의 보고, 듣고, 만지고, 먹는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해서 우리나라는 문화적으로 진정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너무 거창한 명분을 이야기 하시는 것이 아닌가요? 나의 발전과 국가의 발전에대해서도 생각 하시는것인가요?
경제적인 부유함과 군사력이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고 해서 선진국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나라의 문화와 시민의식이 얼마나 수준이 높으냐에 따라서 그 나라를 찾는 이들이 부러움을 자아낼 것이고, 그것이 진정 선진국의 모습일 것입니다.
문화재가 많거나 볼거리가 많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미의식의 개선은 어릴 때부터 학습을 통해서 수준을 높이고, 고학년이 되면서 각자의 취향이 더해지면서 성인이 되면 적정 수준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누구나 이해하고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디자이너들은 더 높은 수준의, 혹은 더 섬세한 디자인의 경지를 이뤄야만 할 것이고, 전반적인 수준은 올라갑니다.
주변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세상은 욕망과 나태로움으로 지나치게 될지도 모르는 삶의 균형을 바로잡아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사는 곳은 분명 살기 좋은 국가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세계적인 전쟁을 멈추고 삶을 영위하기 시작한 지는 아직 100년이 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전쟁이 벌어지는 지역이 있고 분쟁이 계속되는 지역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 먼저 앞선 의식을 가진 나라부터 이러한 가치를 실현해 나가면, 몇천 년씩 지속되었던, 아니면 우리가 아는 문명 이전에 어떠한 문명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시간에 이루어졌을 오랜 세월의 평화를 우리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창작 활동을 하더라도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지속할 수 있는 지원이 있는 사회적인 시스템도 필요합니다.
가능하다면 지금부터라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먼저 교육체계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현재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효율성과 경쟁을 중시하는 산업화 시대의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습니다. 시험 점수와 입시 성과로만 평가받는 환경에서는 진정한 미적 감수성이나 창조적 사고가 자랄 수 없습니다.
초등교육부터 시작되어야 할 미의식 교육은 단순히 미술 시간을 늘리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창조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아침에 교실에 들어설 때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의 각도와 색감을 관찰하기
점심시간에 식판 위 음식의 배치와 색상의 조화를 생각해 보기
하굣길에 만나는 건물과 간판의 조형성을 평가해 보기
이는 특별한 재능이나 예술적 배경이 없어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보편적 교육이어야 합니다.
더 근본적인 것으로 교사 교육의 변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현재의 교사 양성 과정에서 미적 교육에 대한 체계적 훈련을 받은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대부분의 교사들도 기존의 암기식, 정답 찾기식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입니다. 따라서 현직 교사들을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과 함께 예비 교사들을 위한 새로운 교육과정이 동시에 마련되어야 합니다.
가족들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이건 예쁘다, 저건 못생겼다"는 식의 일방적 판단을 내리는 대신,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왜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아?"라고 묻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 동네를 산책하며 건물의 형태, 나무의 배치, 상점 간판의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미적 감수성은 크게 향상될 수 있습니다.
그다음은 도시 환경의 변화에서도 필요할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미의식 교육을 받더라도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환경이 조잡하고 무질서하다면 그 효과는 반감됩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도시들이 급속한 개발 과정에서 미적 고려보다는 기능성과 경제성만을 추구한 결과, 아름답지 못한 도시 경관을 만들어냈습니다.
서울의 홍대나 명동 거리를 걸어보면 수많은 간판들이 서로 더 크고 더 화려하게 만들어지려 경쟁하며 시각적 소음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의 교토나 유럽의 많은 도시들은 간판의 크기, 색상, 서체까지 세밀하게 규제하여 도시 전체가 하나의 조화로운 작품처럼 느껴집니다. 이는 단순히 규제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들의 미적 의식 수준과 공공의 아름다움에 대한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아파트 단지들은 대부분 똑같은 박스 형태의 건물들이 반복적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건설사들은 시공의 편의성과 비용 절감만을 고려할 뿐, 주거 환경의 아름다움이나 거주자들의 정서적 만족감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아름다운 환경에서 살 때 더 행복하고 창조적이 됩니다. 따라서 건축 법규를 개정하여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에는 미적 심사를 의무화하고, 건축사들이 단순히 기능적 요구만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의 조화, 거주자들의 정서적 만족감까지 고려하도록 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인 기업의 역할도 있습니다
현재 많은 기업들이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의 일환으로 문화예술 지원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일회성 이벤트나 홍보성 활동에 그치고 있습니다. 진정한 문화적 기여를 위해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미의식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자신들이 생산하는 제품의 디자인 품질을 높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품 디자인의 변화는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대기업들이 단순히 기능적으로 우수한 제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사용자의 일상 공간을 아름답게 만드는 제품을 개발한다면 어떨까요? 냉장고나 세탁기, 에어컨 같은 가전제품들이 단순히 기능을 수행하는 기계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질 수 있다면, 소비자들의 미적 감수성도 자연스럽게 향상될 것입니다.
천장이 높은 곳에서는 더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분명 이 공간의 제약은 사람들의 생각을 다르게 조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입니다.
기업들의 사무 공간과 매장 디자인도 중요합니다. 직원들과 고객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공간이 아름답고 조화롭다면, 그들의 미적 기준도 자연스럽게 높아집니다. 스타벅스가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단순히 커피 맛이 좋아서가 아니라, 매장의 인테리어와 분위기가 소비자들에게 '일상 속의 작은 사치'를 경험하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실질적인 현실의 조건입니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다양한 문화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대부분 기존 문화예술 분야의 지원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하지만, 일반 시민들의 일상적 미의식 향상을 위한 정책은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모빌리티와 함께 도시 계획의 변화는 삶의 형태를 바꾸고 프레이스 메이킹등의 사업계획은 더 윤택한 삶을 제공하는 실질적인 제안이 됩니다. 신도시 개발 시 단순히 도로와 건물 배치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미적 조화를 위한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이를 전담할 도시미학위원회 같은 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공간의 구성에는 반드시 공공디자인 투자 확대가 필요하고 지하철역, 버스정류장, 공원 등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공간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공무를 보는 분들에게도 디자인 혹은 미의식에 관한 별도의 체계화된 이해를 높이고, 자연스러운 문화의 수준에 체득할 수 있도록 필요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합니다.
영어, 수학, 국어, 과학.... 에서 맨 끝에 있는 예술교육은 대학을 가기 위한 방법에서 특수 예술 대학을 제외하고는 뒷전으로 밀려 있고 그 교육조차도 예술이 아닌 기술의 교육에 가깝습니다. 예술적 감각을 키우는 그런 교육의 의무화, 미적 체험 프로그램 확대, 창의적 사고를 중시하는 평가 방식 도입 등이 필요합니다. 특히 대학 입시에서도 단순한 암기력과 문제풀이 능력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 사고력과 미적 감수성을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야 합니다.
기업의 본질은 이익의 획득이라고 한다면 팔리는 것을 생산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테면 가치 있는 제품을 소비하는 사회라면 가격만을 위해 막 만들어 내는 것들을 생산하는 기업의 수는 줄어들 것입니다. 즉 이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가치관이 중요합니다. 결국 무엇보다 소비 패턴을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서 언급한 '가성비' 중심의 소비에서 벗어나 '진성비'(진짜 성능 대비 가격) 중심의 소비로 전환해야 합니다. 조금 비싸더라도 오래 쓸 수 있고, 아름다우며, 환경에 해롭지 않은 제품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옷을 살 때: 유행만을 찾아 값싼 패스트패션을 구매하는 대신, 디자인이 세련되고 품질이 좋아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선택
가구를 살 때: 조립식 가구보다는 조금 비싸더라도 견고하고 아름다운 원목 가구를 선택
이런 소비 패턴이 늘어나면 기업들도 자연스럽게 품질과 디자인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할 것입니다. 이런 작은 습관들이 모여서 개인의 미적 감수성을 높이고, 나아가 사회 전체의 문화 수준을 향상할 것입니다.
김구 선생께서 소원하신 문화적으로 부강한 나라. 최근의 K 문화의 확대는 이 문화적인 수준을 이루어 내는 가장 중요한 것이고 김구선생의 꿈이 지금의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단순히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회가 아니라, 문화적으로 성숙한 사회입니다. 모든 시민이 일정 수준 이상의 미적 감수성을 가지고,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회입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단순히 물질적 소유를 통해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경험과 의미 있는 관계를 통해 행복을 찾을 것입니다.
이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변화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부터 시작한다면, 다음 세대에게는 훨씬 아름답고 문화적으로 성숙한 사회를 물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선진국이라 부를 수 있는 사회일 것입니다.
그런 사회에서 우리의 삶도 분명 더 좋아질 것이고 디자이너의 역할도 각광 받을 것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