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를 위한 이솝우화 - 태도와 자세
배고픈 여우가 포도밭에 들어갔습니다. 머리 위로 탐스러운 포도송이가 매달려 있었고, 여우는 그것을 따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뛰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포도에 손이 닿지 않았습니다. 결국 지친 여우는 포기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저 포도는 분명히 덜 익어서 실 거야. 먹어봤자 맛도 없을걸?"
이 우화는 자신의 무능력이나 상황의 한계를 인정하기보다, 목표의 가치를 깎아내림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는 인간의 심리를 꼬집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틀림이 없습니다.
특히나 무언가 새로운 것 혹은 조화로운 것을 찾아내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에겐 더욱더 그렇습니다.
지금이 그 중요한 변혁의 시기의 태풍에 눈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지금까지의 틀을 완벽하게 바꿔버리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020년 팬데믹의 시작과 함께 변해버린 삶의 형태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어 갈즈음에 조금씩 원래대로 돌아올 것 같던 삶을 준비했습니다.
원격업무는 줄어들고 대면 미팅과 아날로그 적인 감성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변화한 부분을 적용하며 예전의 법칙으로 돌아가 살아가는 삶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던 2022년의 11월 격리라는 자연재해 수준의 변화와는 달리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산업혁명급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클라우스 쉬밥의 발표문에 표현된 제4의 혁명이라는 주장을 넘어 현실로 훅 들어와 버린 수십 년의 미래입니다.
Ai는 그렇게 디자이너의 삶의 방식과 일하는 방식 그리고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 버릴 수 있는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변화에 대비하는 사람과 그저 비전문가들의 흥미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혁신은 똑같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제가 업무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종이에 스케치를 하고 마카와 파스텔을 활용해서 디자인을 제안하며 도면이라는 것을 종이에 그려서 제작해야 할 파츠의 의뢰를 맡기고 모델러분들은 그것을 손으로 제작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포토샾을 활용해 스케치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스케치를 하다가 실수를 해도 새로운 레이어와 undo기능으로 다시 그릴 수 있고 실수나 원하지 않은 것에 대한 수정을 하는 일이 훨씬 쉬워진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때에도 누군가는 “역시 스케치는 손맛이야”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수십 장의 디자인 안을 뽑아내야 하는 경쟁에서는 더 이상 버티기 힐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이젠 2D그래픽을 넘어 아예 3D모델을 쉽게 만들 수 있으면서 스케치력 보다는 형상 자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지난 수십 년간의 디자인 과정에 대해 단계를 줄이거나 속도를 높이는 과정이라고 크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Ai의 도입은 이 모든 것의 룰을 바꿔버리는 차이가 생겼습니다.
하니씩 그려가는 일에서 갑자기 그려지는 것, 그리고 애 그렇게 그렸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는 것.
이렇게 이 지금의 현상을 잠시동안의 유행으로 지나갈 것인 것으로 지나치는 것은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 되는 것입니다.
또는 이것이 직업을 잃게 한다거나 스스로를 대체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빠지는 것은 더없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언젠가의 러다이트 운동이 있었던 것처럼 지금 세상은 혁명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솝우화 속 여우는 높은 곳에 달린 포도를 따지 못하자 이렇게 말합니다.
“저 포도는 어차피 시어.”
이 장면은 어리석음의 상징처럼 소비되지만, 사실 훨씬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에 가깝습니다.
손에 닿지 않는 것을 욕망하지 않는 척함으로써, 스스로의 좌절을 보호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디자이너들이 AI를 대하는 태도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건 진짜 디자인이 아니야.”
“아이디어는 사람이 하는 거지.”
“결국 손으로 그려야 감성이 살아.”
이 말들은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선택이 아니라 자기 합리화가 되는 순간입니다.
포도에 손을 뻗어보지도 않은 채, 혹은 한두 번 실패한 뒤에 그것의 가치를 부정해 버리는 태도.
여우가 포도를 시다고 말한 순간, 그는 더 이상 도전하지 않아도 되는 명분을 얻었습니다.
AI를 거부하는 일부 디자이너들 역시 비슷한 안도감 속에 머무릅니다.
배우지 않아도 되고, 따라가지 않아도 되며, 지금까지의 방식이 여전히 옳다고 믿어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 여우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포도는 그대로 자라고, 더 높은 담장 위에 더 탐스러운 열매가 맺힐 뿐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여우와 달리 디자이너에게는 여전히 선택지가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AI는 포도를 대신 따주는 존재가 아니라, 사다리를 만들어주는 도구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 사다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이전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게 되고
누군가는 여전히 땅에서 포도를 평가하는 데 그치게 됩니다.
과거에도 우리는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프롬프트의 작성을 통해서 만들 수 있는 자동차 이미지,
물론 조잡한 부분은 있고 선진적인 형상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지만 충분히 스케치의 바탕에 두고 참고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이것을 몇 분만에 만들었다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 어떤 조합이 필요한지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대단한 부분입니다.
디지털 스케치를 거부하던 사람들,
3D 모델링을 ‘디자이너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던 사람들,
그리고 그 변화가 완전히 자리 잡은 뒤에야 뒤늦게 뛰어든 사람들.
결국 남는 차이는 재능이 아니라 태도였습니다.
새로운 도구 앞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것인가, 아니면 불완전한 상태로라도 다시 초보자가 될 것인가.
여우와 포도의 이야기는 실패담이 아니라 질문에 가깝습니다.
“너는 정말로 원하지 않았는가, 아니면 닿지 않을까 봐 포기했는가?”
지금의 AI 혁명 앞에서, 디자이너는 다시 그 질문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말이 아니라, 어떤 선택을 하느냐로만 증명됩니다.
포토샵을 쓰지 않아도, 3D를 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AI는 다릅니다.
이제 AI는 툴이 아니라 공기처럼 존재하는 환경에 가깝습니다.
디자이너가 “AI를 쓰겠다 / 안 쓰겠다”를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이미 사용되는 세계 안에서 어떤 위치에 설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준비하는 디자이너는 이 사실을 가장 먼저 받아들입니다.
거부하지도, 과장하지도 않고 “이제 디자인이 이루어지는 바닥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손으로 하는 능력’보다 판단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AI는 결과물을 만듭니다.
하지만 좋은 결과를 고르는 일, 그리고 “이건 맞고, 이건 틀렸다”라고 말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입니다.
앞으로 디자이너의 핵심 역량은 얼마나 잘 그리느냐보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의하고
무엇이 과한지, 부족한지 판단하며
왜 이 방향이 맞는지 설명할 수 있는 능력
즉, 미감 + 맥락 + 책임감 있는 선택입니다. AI 시대의 디자이너는 ‘제작자’에서 ‘결정자’로 이동합니다.
AI는 속도를 압도적으로 높입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속도 자체는 더 이상 경쟁력이 아닙니다.
대신 중요한 것은
이 수많은 가능성 중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만들지 말아야 하는지
지금 이 브랜드·사람·사회에 필요한 답이 무엇인지를 정하는 일입니다.
준비된 디자이너는 AI를 통해 더 빨리 많이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덜 만들지만 더 정확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AI는 질문의 질만큼만 답합니다.
그래서 준비된 디자이너는 툴을 배우기 전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합니다.
나는 어떤 디자인을 옳다고 생각하는가
무엇을 불편하게 느끼는가
어떤 조화가 나다운가
이 언어가 정리된 사람은 AI를 사용할수록 더 선명해지고, 정리되지 않은 사람은 사용할수록 더 흐려집니다.
AI는 스타일을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드러나게 할 뿐입니다.
‘배움’을 기술이 아니라 자세로 유지해야 합니다
가장 위험한 디자이너는 “이 정도면 충분히 안다”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AI 시대에는 새로운 툴을 배우는 속도보다 다시 초보자가 될 수 있는 태도가 훨씬 중요합니다.
준비하는 디자이너는 능숙함보다 미숙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완성보다 탐색을 선택합니다.
이 태도 하나가 여우와 포도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나는 무엇을 판단하는 사람인가, 그리고 이 시대에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
그 질문이 있는 디자이너에게 AI는 위협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증폭기가 됩니다.
Ai라는 툴이 장년층 노동자를 대체할 것이라는 예상은 오히려 그들의 도구가 되어주고 마치 몇 명의 주니어를 데리고 일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새롭게 사회에 진입하는 사람들의 사다리를 걷어 차는 것이다라는 것까지는 의문이 생깁니다.
“너는 그 입장이 되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니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위험이나 기회가 선택적으로 오는 것일까요? 이 모든 것은 선택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회가 없다면 기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고 오히려 배움이 늦은 장년층 보다 빠르게 습득해서 자신들의 독특함을 완성해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안목’은 기업에서 얻어진다거나 전문적인 일을 해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높여가는 모든 과정이 ’ 안목‘을 쌓아가는 길입니다.
예전에는 모터쇼, 잡지, 혹은 다른 분야의 사람을 만나서 얻을 수 있었던 지식도 이젠 더 빨리 어느 곳에서나 얻을 수 있고 거기에 생각을 구체화하는 것을 자연어 대화로 만들 수 있는 도구도 생겼습니다.
불평하기보다 움직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차피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거나 지나지 않았거나 기회의 얼굴은 추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스스로의 선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