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디자인

ㄷ ㅣ ㅈ ㅏ ㅇ ㅣ ㄴ ㅓ #8

by Utopian

"말이 안 되는 것이 미래가 된다" — 선행디자인, 착한 디자인의 시대

선행디자인의 현장에서 20년을 보낸 디자이너와의 대화.


선행디자인이라는 말 자체가 두 가지 의미를 품고 있더군요. 앞서간다는 의미와, 옳은 일을 한다는 의미. 이게 우연의 일치일까요?

전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엔 저도 그냥 "먼저 가는 디자인"이라고만 이해했어요. 근데 일을 하다 보니까, 진짜로 앞서가는 디자인은 결국 사람을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수렴하더라고요. 반대로 단순히 트렌드를 조금 앞서가는 것만으로는 선행이라고 부르기 어렵다는 걸 느꼈습니다. 앞서간다는 것의 진짜 의미는 방향성이 옳아야 한다는 거니까요.

무언가 앞서있다는 선행 그리고 이것보다도 이젠 더 중요해진 선행 즉 옳은 일에 대한 선행디자인.

언젠가 선배 중 한 명은 선행디자인팀은 머 착한 디자인팀이냐?라는 비아냥 거리는 말을 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정말 그 착한 디자인이 중요한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솔직히 그때는 좀 억울했죠. 우리가 낭만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데, 왜 현실감각 없는 사람으로 보이나 싶었으니까요. 근데 지금 돌아보면 그 선배가 틀린 말을 한 게 아닐 수도 있어요. 다만 시대가 달랐던 거죠. 그때는 "착하다"는 게 경쟁력이 아니었으니까. 지금은 달라요. ESG, 포용적 디자인, 지속가능성... 결국 착한 디자인이 시장에서 살아남는 디자인이 됐잖아요. 그 선배가 지금 이 시대를 본다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말이 된다"와 "말이 안 된다"는 기준, 현장에서는 어떻게 작동하나요?

말이 돼? 는 늘 듣던 이야기입니다.

물론 말이 안 될 거 같으니 그런 의견을 주는 것은 인정합니다만

결국 미래를 만드는 디자인은 말이 안 되는 것이라야 미래가 됩니다.

말이 되는 건 지금의 디자인 아니 약간 뒤늦게 따라가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이라는 작업자체가 근본적으로 미래가 근거가 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이 된다는 건 지금의 맥락 안에서 설명이 가능하다는 뜻이에요. 그러면 그건 지금의 디자인이거나, 사실은 이미 조금 늦은 디자인입니다. 말이 안 된다는 건 지금의 언어로 설명이 안 된다는 거고, 그게 바로 미래의 신호거든요. 저희가 10년 전에 "차 안에서 운전자가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공간"을 디자인하자고 했을 때, 대부분이 말이 안 된다고 했어요. 지금은 자율주행 인테리어가 산업의 핵심 화두잖아요. 현장에서는 "말이 안 된다"는 말이 나올 때가 오히려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다는 신호라고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선행디자인이 가장 잘 작동하는 조건은 뭐라고 보시나요?

조직이 단기 성과 압박에서 잠깐이라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디자이너 개인이 "왜 이게 세상에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붙들고 있어야 하고요. 사업 논리는 항상 지금을 향하거든요. 선행디자인은 본질적으로 지금을 희생해서 미래를 만드는 일이에요. 그러니까 그걸 버텨낼 수 있는 신념과 구조가 동시에 필요합니다. 그 신념의 가장 강한 연료가 이타심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이걸 왜 하나,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라는 답이 있을 때 가장 오래, 가장 멀리 갈 수 있으니까요.


어떤 일이라 하더라도 제품화되기 이전의 단계이니까요.

마치 상상과 같습니다.

디자인은 상상의 영역에서 가상의 영역을 지나 사람들에게 보이고 이상이 됩니다.

상상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디자인은 상상에서 출발해서 가상을 거쳐 현실이 됩니다. 그 긴 여정에서 제일 많이 지워지는 게 상상의 단계예요. 너무 일찍 현실적이 되려는 압력에 굴복하니까요. 선행디자이너는 그 상상의 단계를 가장 오래 지켜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상상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 그게 결국 이상이 되고 기준이 됩니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저 또한 차량을 운전해서 출근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보이는 교통약자 차량은 대부분 카니발이나 스타리아 같은 승합차 혹은 가끔씩 레이 같은 경차에 리어 범퍼를 절단하고 개조한 차량으로 이동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차량의 후면부가 엉망으로 되는 것은 다음 문제라 하더라도 차량을 타는 그 교통약자는 어떤 기분일까요?

대부분 테일게이트 즉 후면부 도어는 짐을 싣는 용도입니다. 교통약자가 느끼는 기분이 '실린다'아닐까요? 그분들도 대접받는 느낌을 드려야 합니다.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을 때 현관문이 아닌 뒷문으로 들어오라고 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물론 아파트는 뒷문이 없지만 충분히 예상되실 것입니다.

그래서 PBV를 디자인하면서는 이 점을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두었습니다. 차량의 옆이 넓게 열리면서 고객을 맞이할 수 있도록 그리고 지금까지의 차량은 동반하는 친구나 지인이 함께 옆에 타기에도 불편했습니다. 이동 중에 따뜻한 이야기는 시시콜콜한 농담이라도 하려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서 동반인이 휠체어를 밀어주고 차량 안에서는 옆에 앉아 이동합니다. 그렇게 옆에 앉아 이동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은 것이 목적에 따라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차량이 됩니다. 자동차 디자인이 분명 사회적인 따뜻함을 전달하는 순간이 됩니다.


솔직히 물어볼게요. AI가 디자인을 대체하는 속도가 무섭도록 빠른 지금, 먼 미래를 보는 선행디자인이 사치가 아닌가요? 지금 당장 살아남는 게 먼저 아닌가요?

그 질문, 저도 매일 스스로에게 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이 나올 때마다 오히려 확신이 더 강해져요.

AI가 빠른 건 맞아요. 근데 AI가 빠른 이유가 뭔지 생각해 보면, 결국 지금까지 축적된 데이터와 패턴을 처리하는 속도가 빠른 거잖아요. 다시 말하면 AI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것들을 기반으로 움직입니다. 그게 AI의 힘이면서 동시에 AI의 한계예요.


선행디자인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질문입니다. AI가 학습할 데이터가 없는 영역이에요.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AI 시대일수록 선행디자인의 가치는 올라갑니다. AI가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영역은 AI에게 넘기면 되고, 인간 디자이너는 AI가 아직 볼 수 없는 곳을 봐야죠. 그게 생존 전략이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해도 기업 입장에서는 당장 분기 실적이 중요한데, 미래를 보는 팀에 투자하는 게 쉬운 결정이 아니잖아요.

맞습니다. 그래서 선행디자인팀이 살아남으려면 언어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미래를 연구합니다"라고 하면 경영진 입장에서는 비용 센터로 보이거든요. 근데 "우리는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3년 후에 따라잡을 수 없는 방향을 먼저 확보합니다"라고 하면 얘기가 달라져요. 이건 단순히 말을 바꾸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걸 증명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제가 경험한 가장 설득력 있었던 순간은 우리가 2년 전에 그린 콘셉트가 경쟁사의 신제품 발표에서 나왔을 때였어요. 그걸 임원들한테 조용히 보여드렸더니, 그다음 분기부터 우리 팀 예산이 달라졌어요. 말보다 그 한 장의 타임스탬프가 설득했던 거죠.


결국 선행디자인이 살아남으려면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는 건데, 그게 착한 디자인이라는 방향과 충돌하지 않나요? 착하면서 동시에 이겨야 한다는 게 가능한 건가요?

그게 핵심 질문이에요. 그리고 저는 이제 그 둘이 충돌하지 않는다고 확신합니다. 오히려 지금 시대에는 착한 게 이기는 방법이에요.

이유를 하나씩 들어볼게요.

첫째, 소비자가 달라졌습니다. 특히 지금의 3040세대, 그리고 곧 주력 소비자가 될 세대는 브랜드의 태도를 삽니다. 제품의 기능이 평준화되면 결국 "이 회사는 어떤 생각을 가진 곳인가"가 선택 기준이 돼요. 착한 디자인은 그 자체로 브랜드 자산이 됩니다.

둘째, 규제 환경이 바뀌고 있어요. 유럽을 중심으로 지속가능성, 포용성, 수리 가능성 같은 기준들이 이제 법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미리 그 방향으로 설계한 기업은 규제가 강화될수록 경쟁 우위가 생기고, 뒤늦게 따라가는 기업은 대응 비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요. 착한 디자인을 먼저 한 게 결국 리스크 관리가 됩니다.

셋째, 그리고 이게 제일 중요한데, 사람을 돕는 문제를 진짜로 해결하면 시장이 생깁니다. 없던 시장이요. 아까 말한 극한 단순화 사례처럼, 가장 취약한 사용자를 기준으로 설계하면 기존에 아무도 못 들어갔던 시장의 문이 열려요. 경쟁이 없는 곳에서 이기는 게 가장 확실한 전략이잖아요.


AI 얘기를 좀 더 해보고 싶은데요. AI 도구들이 디자인 생산성을 엄청나게 올려놓고 있잖아요. 그러면 오히려 선행디자인팀이 더 많은 걸 더 빠르게 할 수 있게 된 건 아닌가요?

맞아요, 그건 분명히 좋은 변화입니다. 예전에는 콘셉트 하나를 시각화하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면 이제 하루 안에 수십 가지 방향을 볼 수 있으니까요. 탐색의 범위가 넓어진 거죠.

근데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게 있어요. AI가 만들어주는 이미지들은 엄청나게 그럴듯해 보여요. 너무 완성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상상력이 거기서 멈출 수 있어요. 그림이 너무 현실적이면 그게 기준이 돼버리거든요. 선행디자인에서 초기 단계의 어설픔, 불완전함은 사실 굉장히 중요한 자산이에요. 그 틈 사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AI를 탐색의 도구로는 적극 씁니다. 근데 방향을 결정하는 판단은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한다고 봐요. 특히 "이게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게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은 AI가 답할 수 없어요. 그 질문을 붙들고 있는 게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질문,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게 결국 이타심의 문제잖아요. 근데 이타심이 디자이너 개인의 덕목이 되면 지속이 어렵지 않나요? 조직이 그걸 요구하거나 뒷받침해주지 않으면요.

이타심을 개인의 윤리에만 맡기면 소진됩니다. 그건 맞아요.

그래서 저는 이타심을 방법론으로 제도화해야 한다고 봐요. 예를 들어, 디자인 리뷰를 할 때 항상 마지막에 "이게 가장 취약한 사용자에게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필수 체크포인트로 넣는 거예요. 이게 개인의 선의에 맡기는 게 아니라 프로세스가 되면, 조직 전체가 그 방향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가 포용적 디자인을 내부 필수 프로세스로 넣었을 때, 초기엔 번거롭다는 반응이 많았대요. 근데 그게 자리 잡고 나서 나온 제품들이 장애인 시장을 열었고, 그게 다시 일반 사용자 경험을 향상했어요. 개인의 착함이 아니라 조직의 구조가 착한 결과를 만든 거죠.

이타심을 디자인 프로세스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 그게 선행디자인팀이 지금 해야 할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경쟁이 극도로 치열한 지금, 선행디자이너로서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있다면요?

저는 "10년 후에 이 디자인을 누가 고마워할까"라는 질문을 씁니다.

지금 당장 팔리는 것, 지금 당장 칭찬받는 것에 집중하면 결국 현재에 끌려다니게 됩니다. 근데 10년 후에 누군가가 이 물건을 쓰면서, 혹은 이 경험을 하면서 삶이 조금 더 나아졌다고 느낄 수 있다면,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에요.

그리고 그 고마워할 사람이 나와 먼 사람일수록, 더 약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더 보편적인 디자인이 됩니다. 가장 이타적인 상상이 결국 가장 많은 사람에게 닿는 디자인이 되는 거죠.

AI가 아무리 빨라져도, 경쟁이 아무리 치열해져도, 그 질문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결국 미래를 먼저 보는 사람이라고 믿어요.


목적기반 자동차... 다소 딱딱한 이름일 수도 있지만 이를 사용하는 사용자의 목적을 이뤄 주고 싶은 제조사의 진심이 아닐까 합니다. 특히 운전석 디자인을 할 때 그 사용자의 삶을 생각을 했습니다.

그분들의 일상은 어떨까? 힘들게 오전 업무를 마치고 운전석에 앉으며 몇 분 남지 않은 점심시간에 결국 짜증이 폭발하지 않을까요? "하~ "하는 긴 한숨으로 주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컵라면을 사서 먹기로 했는데 막상 편의점에 앉아 있다가 주차딱지라도 떼면 안 되니 금하게 먹고 돌아옵니다.

이런 일들이 몇 번 반복되는 정말 만감이 교차할 것입니다.


그분들에게는 이 장소는 업무공간입니다. 사무실일수도 아니면 연구소 랩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고객을 응대하는 테스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 공간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합니다. 급하게 들고 온 삼각김밥과 뜨거운 물만 담아 들고 온 컵라면을 조수석 대시보드에 잠깐 놔두고 나무 젓가락을 가르는 순간 현재의 차량의 둥근 대시보드는 컵라면이 미끄러지게 됩니다. 조수석에 놔둔 명세표들과 거래처 정보가 담긴 노트가 라면 국물에 범벅이 되고 면발은 시트사이로 얽혀버립니다. 재난입니다.


정리해야 할 서류 잠깐이라도 편하게 작성할수 있는 테이블 그리고 쉴 수 있는 시트와 무엇을 놓아도 흘러내리지 않는 평평한 테이블 그리고 스마트폰이나 패드를 걸어 둘 수 있는 홀더까지 차량의 대시보드 디자인을 개선한다면 전혀 비용의 증가 없이 운전석을 그들의 사무실로 바꾸어 줄 수 있습니다. 이건 순수하게 디자인 영역입니다. 즉 디자이너가 조금만 더 신경 쓴다면 사용자의 삶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건 디자이너로서의 직무유기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PBV는 넓은 대시보드가 있고 거기에 다양한 액세서리를 장착할 수 있는 외부 커넥터가 있으며 전기기반의 차량으로 V2L을 이용해 따뜻한 음식을 데우거나 다른 장치를 장착할 수 있습니다.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주어지는 것은 단순히 편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존중하는 것이 됩니다. 존중받는 이의 마음은 그것이 어떤 일이라 하더라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 마음이 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타적인 디자이너가 하는 일입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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