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디자이너,
함께했던 디자이너

ㄷ ㅣㅈ ㅏ ㅇ ㅣ ㄴ ㅓ # 11

by Utopian

눈부신 성과를 이뤄 이름을 얻게 되고

세련된 매너를 가진 디자이너의 성공을 부러워하는 다른 디자이너가 있다.

디자이너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알고 보면 디자인과정은 혼자서 해낼 수가 없다. 당연히 주목을 받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노력이 함께 묻어난 것이다. 그런데 이 주목받지 못한 디자이너는 스스로를 탓하거나 질투에 쌓이게 된다.

그러나 디자인이라는 업을 계속 해가는 과정이라면 이것을 배워가는 과정이라 받아들이고 또한 그 과정에서 다른 가능성을 찾는 긍정적인 태도가 있을 텐데 섭섭한 마음에 젖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건 디자인의 영역이 아닌 인문의 영역이다. 사람됨의 가치로 넘어가게 된다.


조명 아래와 그늘 사이 — 디자이너의 질투, 자책, 그리고 가능성

디자인 현장에는 늘 이름이 있다.

그리고 주목을 끄는 어떤 결과에 대해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그 일의 책임자가 될 것이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언론이 찾아오면, 카메라는 한 사람을 향한다.

세련된 어휘로 자신의 철학을 설명할 줄 아는 디자이너, 인터뷰 사진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그 사람.

그의 이름이 작품의 이름이 된다.

그리고 그 이름 뒤에는, 아무도 묻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조명은 왜 한 곳에 모이는가

디자인 팀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세상에 나올 때, 그것은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이름으로 압축된다. 이는 단순히 불공평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인지가 복잡한 집단적 창조 행위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하나의 얼굴과 하나의 이름을 요구한다. 브랜드가 그렇고, 언론이 그렇고, 역사가 그렇다.


조너선 아이브(Jony Ive)를 생각해 보자. 그의 이름은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과 거의 동의어처럼 쓰였다. 그는 약 15명으로 구성된 산업 디자인 팀을 이끌었고, 그 팀이 애플의 가장 중요한 제품들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2019년 아이브가 애플을 떠난 뒤, 세상은 비로소 그 팀원들의 이름을 하나씩 알게 되었다 — 그들이 떠날 때마다. 조디 아카나, 조 탄, 앤서니 애쉬크로프트, 앤드리아 윌리엄스, 바트 앙드레, 던컨 커 — 20여 명의 긴밀한 팀이 사실상 해체되기 시작했다. 던컨 커의 경우, 그가 오리지널 애플 워치의 ‘탭’ 알림 시스템을 고안한 인물이었다 는 사실은 그가 회사를 떠난다는 뉴스 기사에서야 처음 알려졌다. 수십 년의 작업이, 퇴장하는 순간에야 인정받는 것이다.


아이브가 컨설턴트로 재직하는 동안에도 그 팀의 작업은 계속되었지만 공로는 흐릿했다 — 이것이 아이브의 것인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것인가,라는 질문이 해소되지 않은 채로. 조명은 한 사람에게 맞춰져 있었고, 그 그늘 속에서 아이폰의 실제 디자인을 다음 세대로 진화시키던 손들은 보이지 않았다.


최근 페라리와 함께 페라리 최초의 순수전기차를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를 했었는데 여기에도 여전히 그의 이름과 ’ 애플 제품디자이너가 자동차 디자인을‘이라는 호기심을 함께 엮어 이야기하고 있다. 그동안 눈부신 페라리를 디자인했던 피닌파리나의 디자이너들은 어디로 가는가?.

물론 피닌파리나 자체도 피닌파리나가 그 스튜디오의 디자이너들의 총합으로 이야기된다.

심지어는 인하우스 디자인도 그 수장의 이름이 디자인이 된다.

이 구조는 애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디터 람스와 보이지 않는 손들

디터 람스(Dieter Rams)는 20세기 산업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이름 중 하나다. “적게, 그러나 더 좋게(Weniger, aber besser)“라는 그의 철학은 조너선 아이브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브라운(Braun)의 제품들은 현재 뉴욕 현대미술관(MoMA) 영구 소장품이 되어 있다.


그러나 람스가 오늘날 우리가 아는 그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그의 곁에는 결정적인 협력자들이 있었다. 람스 자신이 훗날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 자신의 작업과 내 그룹의 작업은 그들이 닦아놓은 길 없이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그들’ 중 가장 중요한 이름은 한스 구겔로트(Hans Gugelot)였다.


한 독일 디자인 평론가는 구겔로트를 가리켜 “람스의 문제이자 행운이었다”라고 표현했다. 람스는 구겔로트를 통해 제품 디자인의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오늘날 ‘스노화이트의 관’이라 불리며 디자인사의 아이콘이 된 브라운 SK4 라디오-레코드플레이어. 이 제품은 람스가 한스 구겔로트와 함께 디자인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디터 람스를 기억한다.


구겔로트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는 1965년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람스가 브라운의 수석 디자이너로 명성을 쌓아가던 바로 그 시기에. 오늘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디자인 역사를 깊이 공부한 이들 외에는 많지 않다.


브라운의 작업은 람스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한스 구겔로트, 게르트 뮐러, 라인홀트 바이스, 디트리히 룹스 — 이들 모두가 그 고요하고 기능적인 미학을 함께 만들어냈다. 그런데 그 팀의 이름들은 전문가의 각주 안에 머물러 있고, 역사는 람스의 얼굴을 선택했다.


람스 본인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끝내 팀의 힘을 믿었다. 그는 퇴임 후에도 “최고의 디자인은 오직 기업 내의 디자인 팀에서만 나올 수 있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이름을 얻은 디자이너가 그 이름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하느냐 — 람스는 그것을 팀을 향한 겸손으로 응답했다.



개인의 이름과 스튜디오 사이


건축의 세계는 이 긴장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건축 사무소는 대부분 창립자의 이름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Foster + Partners. Heatherwick Studio. 이름 자체가 브랜드이고, 그 브랜드 아래 수백 명의 디자이너가 일한다.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의 사무소는 2021년 기준 약 1,500명의 직원을 둔, 영국 최대의 건축 사무소 다. 홍콩 HSBC 본사, 런던 거킨 빌딩, 베를린 라이히슈타크, 밀로 대교, 애플 파크. 이 모든 것이 ‘노먼 포스터’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알려진다.


그런데 포스터는 처음부터 협업을 설계의 방법론으로 삼은 건축가였다. 그는 경력 초기부터 엔지니어, 산업 디자이너, 비용 컨설턴트 등 다양한 전문가들을 외부 용역이 아닌 팀의 본질적 구성원으로 통합했다. 그에게 테이블은 협업적 접근의 상징적 표현이었다. 1,500명이 함께 만든 건물에 한 사람의 이름이 붙는 것 —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토머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과 헤더윅 스튜디오의 경우는 조금 다른 맥락을 보여준다. 헤더윅은 모든 프로젝트에서 모든 건축가, 디자이너, 제작자가 아이디어를 도전하고 기여하도록 독려하는 과정을 스튜디오의 설계 방식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 스튜디오는 그 구조를 공개적으로 설명한다. BT 타워 프로젝트에 관해 헤더윅은 “나와 내 팀이”라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미묘하지만, 이것은 적지 않은 차이다.


그러나 언론은 여전히 헤더윅 스튜디오의 런던 올림픽 성화대를 ‘헤더윅의 작품’으로, 뉴욕 베슬(Vessel)을 ‘헤더윅이 디자인한 계단 구조물’로 소개한다. 200명이 함께 만든 것은 결국 한 사람의 서명으로 세상과 만난다.



자책과 질투 사이에서


이 구조 속에서, 조명 밖에 있는 디자이너는 무엇을 느끼는가.

처음에는 자책이 온다. 나는 왜 저 사람처럼 되지 못했는가. 내 아이디어가 부족했던 것인가. 내 발표가 매끄럽지 않았던 것인가. 내가 더 열심히 했다면, 더 영리했다면, 더 매력적이었다면.


그다음에는 질투가 온다. 나도 저 프로젝트에 있었다. 나도 그 문제를 풀었다. 저 건물의 특정 디테일은 내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왜 저 사람이 인터뷰를 받고, 왜 저 사람의 이름이 잡지 표지에 실리는가.


자책과 질투는 모두 이해 가능한 감정이다. 하지만 둘 다 방향이 틀렸다.

자책은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결함으로 오인하는 것이다. 조명이 한곳에 집중되는 것은 그 사람이 압도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다. 복잡한 집단적 작업을 단일한 서사로 소화하려는 미디어와 시장의 논리 때문이다. 자책은 그 논리에 자신을 굴복시키는 행위다.


질투는 더 위험하다. 질투는 에너지를 소모하지만 방향을 주지 않는다. 타인의 성공을 계속 주시하는 사람은 자신의 작업에 집중할 수 없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질투하는 사람은 결국 질투의 대상에게 계속 종속된다 — 그의 성공을 척도로, 그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기 때문에.



그늘이 가르쳐주는 것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다른 결말도 가능하다.

디터 람스의 동료였던 디자이너들을 다시 생각해 보자. 그중 일부는 스스로 브라운의 설계 언어를 더 깊이 이해하는 전문가가 되었다. 팀 안에서 일했기 때문에, 그 철학의 문법을 체화할 수 있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그 경험의 깊이를 지워버리지는 않는다.


애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이브의 팀에서 일했던 디자이너들은 아이폰과 맥북이 세상에서 가장 세밀하게 다듬어지는 과정을 직접 경험했다. 그 경험은 그들의 것이다. 이름이 어디에 붙었든 간에.


조명 밖에 있다는 것은, 사실 다른 종류의 자유이기도 하다. 이름이 곧 브랜드가 된 디자이너는 그 이름의 무게를 지고 다녀야 한다. 그는 언제나 ‘Jony Ive다운’, ‘헤더윅답 다’는 기대치와 싸워야 한다. 반면 그늘 속의 디자이너는, 아직 자신이 무엇인지 증명해야 하는 자유가 있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은 아직 가능성이다. 물론 정신승리라는 비아냥을 할 수 있지만 스스로를 탓하는 시간에 가능성을 찾아가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을 안다. 현실에서의 경력, 클라이언트, 기회 — 이 모든 것이 이름과 연결되어 있다. 그 불균형은 실재한다.


그러나 디자인을 업으로 계속 이어가고자 한다면, 결국 자신의 내부에 기준을 세워야 한다. 타인의 조명이 내 기준이 되는 순간, 그것은 끝없는 비교의 게임이 된다. 그리고 그 게임에서 지는 사람은 항상 자신이다 — 조명 아래에 있든, 그늘 속에 있든.



다른 가능성을 찾는 태도


역사 속에서, 그늘 속에 있던 사람들이 결국 다른 방식으로 스스로를 드러낸 사례는 적지 않다.

람스의 동료였던 게르트 알프레드 뮐러(Gerd Alfred Müller)는 브라운에서 수십 개의 제품을 만들었고, 그중 SM-3 면도기는 디자인 컬렉터들에게 지금도 고전으로 손꼽힌다. 그는 람스의 그늘 속에 있었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설득력 있는 작업을 남겼다.


헤더윅 스튜디오에서 런던 올림픽 성화대를 실질적으로 이끈 그룹 리더들, 포스터 파트너스에서 수십 년간 홍콩 공항과 라이히슈타크 리노베이션을 실무로 구현한 파트너들 — 그들 중 일부는 결국 독립하거나, 혹은 조직 안에서 자신만의 지형을 만들어냈다.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질투의 시선을 안으로 돌렸다. 저 사람의 성공이 부럽다면, 그 성공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해부했다. 그리고 그 해부의 과정에서,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했다.


이것이 디자인을 업으로 삼는다는 것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결과의 조명이 누구에게 향하는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를 보는 것. 디자인은 결국 문제를 풀어가는 능력의 축적이고, 그 능력은 이름이 어디 붙든 상관없이 자신에게 남는다.


조명 아래 선 디자이너와 그늘 속의 디자이너. 이 둘 사이의 거리는,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재능의 차이가 아닐 수 있다. 타이밍, 맥락, 언어 능력, 관계, 운 — 이 모든 것이 뒤섞인 결과다.


그렇다면 그늘 속에 있는 디자이너에게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이 과정이 나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 그리고 이 불편함 속에서, 나만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무엇인가.


조명은 언제나 한곳에 집중된다.

그러나 디자인은, 그 조명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계속 만들어진다.


그렇게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삶은 스스로를 가장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으니.

그만큼 더 깊어진다.

디자인은 그저 겉모습을 꾸미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요일 연재
이전 10화Why Designers Write Nov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