ㄷ ㅣ ㅈ ㅏ ㅇ ㅣ ㄴ ㅓ #10
왜 디자이너는 소설을 쓰는가
소설 쓰기와 디자인의 상관관계, 그리고 미래를 만드는 자질에 대하여
"훌륭한 소설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묘사한다. 훌륭한 디자인 역시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만든다.
그 출발점은 언제나 같다 — 인간을 깊이 이해하려는 욕망."
어느 유명한 산업디자이너가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제품을 디자인하기 전에 그것을 사용하게 될 사람의 하루를 먼저 소설처럼 써본다." 그에게 디자인은 조형의 문제가 아니라 서사(Narrative)의 문제였다. 선이나 면이 아니라, 한 인간의 아침 여섯 시, 그가 느끼는 피로감, 그가 원하는 작은 위로에서 디자인이 시작된다고 믿었다.
소설을 쓰는 것과 좋은 디자인을 하는 것, 이 둘은 얼핏 전혀 다른 영역처럼 보인다. 하나는 언어의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형태와 기능의 세계다. 그러나 두 행위의 핵심에는 동일한 능력이 자리한다. 바로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실감 나게 상상하는 능력', 그리고 '타인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는 능력'이다.
왜 디자이너들은 이야기를 쓰고, 읽고, 또 말하는가. 왜 소설적 사고가 결핍된 디자인은 오래가지 못하는가. 그리고 지금 한국의 디자인 교육이 왜 이 본질을 잃어가고 있는가.
소설과 디자인이 공유하는 것 — 공감과 예측
소설가가 인물을 창조할 때 그는 수백 가지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이 사람은 왜 이 순간 화가 났는가? 그가 아침에 일어나며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가? 그의 두려움과 욕망은 어디서 충돌하는가? 이 질문들은 본질적으로 디자이너가 사용자를 정의할 때 던지는 질문과 같다.
"공감(Empathy)은 디자인 싱킹의 첫 번째 단계다. 그런데 공감을 가장 체계적으로 훈련하는 인문학적 방법론은 다름 아닌 소설 읽기, 혹은 소설 쓰기다."
인지과학 연구들은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일수록 타인의 감정을 더 정확하게 읽는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소설은 독자에게 수십 개의 삶을 '살아보게' 만드는 장치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자신과 다른 계층, 다른 시대, 다른 몸을 가진 존재의 시각을 획득한다. 이것이 바로 훌륭한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근본 능력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예측'이다. 소설가는 독자가 어느 페이지에서 긴장하고, 어느 대목에서 눈물을 흘릴지를 계산하며 서사를 설계한다. 디자이너 역시 사용자가 어느 지점에서 혼란을 느끼고, 어디서 만족감을 얻을지를 미리 상상하며 인터페이스와 형태를 설계한다. 둘 다 본질적으로 '경험의 시나리오 작가'다.
이야기로 디자인한 사람들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디자이너들은 단순한 조형가가 아니었다. 그들은 이야기꾼이었다.
임스 부부는 가구를 디자인하기 전 먼저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들의 영화와 글에는 삶의 구체적인 질감이 담겨 있었다. 임스 체어는 단순한 의자가 아니라 "전쟁 후 피로에 지친 현대인이 집에 돌아와 처음으로 편안하게 몸을 맡기는 순간"을 위해 쓰인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가 형태로 응고된 것이 바로 그 의자다.
잡스가 아이브에게 끊임없이 요구한 것은 '더 얇은 두께'나 '더 빠른 프로세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언제나 하나의 이야기였다. "사람들이 이 제품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가?" 잡스의 제품 발표가 스토리텔링의 형식을 취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디자인 자체가 이야기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아이폰의 첫 번째 언박싱 경험 — 포장을 여는 속도, 최초로 화면이 켜지는 순간 — 이 모든 것이 치밀하게 계획된 서사의 장면들이었다.
디터 람스의 유명한 "좋은 디자인의 10원칙" 중 상당수는 사실 소설 비평의 언어와 닮아 있다. "좋은 디자인은 정직하다(Good design is honest)"는 원칙은 좋은 문장이 독자를 기만하지 않는다는 문학적 윤리와 같은 말이다. 그의 디자인은 제품이 사용자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 간결하고, 명료하고, 진실한.
자동차는 달리는 소설이다
디자인 분야 중 이야기와 가장 강렬하게 연결된 영역이 있다면 단연 자동차 디자인이다.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하는 오브제이며, 무수한 문화적 서사가 응축된 조형물이다.
"자동차 디자이너는 차를 디자인하기 전에 먼저 그 차를 몰게 될 사람의 인생을 써야 한다. 그가 어떤 꿈을 꾸는지, 어디로 달려가고 싶은지, 어떤 목적을 이루고 싶은지를."
크리스 뱅글 (Chris Bangle) — BMW의 '플레임 서페이스(Flame Surface)'
2000년대 초 BMW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크리스 뱅글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디자인 언어를 도입했다. 차체에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긴장된 곡면 — '플레임 서페이스' — 를 적용한 것이다. 당시 많은 이들이 반발했다. 그러나 뱅글의 설계 노트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이 차를 모는 사람은 그 순간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인가?"
그는 운전자가 도심을 가로지를 때 느끼는 살아있는 감각, 속도와 권력과 욕망이 교차하는 그 순간을 차체에 새기고 싶었다. 플레임 서페이스는 그 이야기의 시각적 번역이었다.
마쓰다(Mazda) — '혼다메(魂動, Soul of Motion)' 디자인 철학
마쓰다의 디자인 철학 '혼다메'는 일본의 전통적 미의식인 '도약 직전의 생명체'에서 출발한다. 마쓰다 디자이너들이 먼저 한 일은 차를 스케치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치타가 달리는 영상을 수백 시간 관찰했고, 그 근육의 긴장과 이완을 언어로 기술했다. 그 언어가 스케치가 되고, 클레이 모델이 되고, 마침내 CX-5와 MX-5 로드스터의 차체가 되었다.
이것은 명백히 소설적 방법론이다. 은유를 탐구하고, 그 은유를 형태로 번역하는 과정.
피터 슈라이어(Peter Schreyer) 기아(Kia) - 직선의 단순화 (Simplicity of straight line)
2006년 당시 최고의 디자인 가치를 올리는 독일 3사 중 정교한 디자인의 정수를 보여주던 폭스바겐 계열의 디자이너가 국내 브랜드의 수장으로 온다. 그리고 맨 먼저 한 일은 브랜드의 상징을 만드는 것이었다. 흔히들 타이거 노즈 그릴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형상이 특별해서라기보다 어떤 브랜드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한 서사를 담아 모양을 정의한 것이었다. 많은 경우에 자동차 사들은 그것을 차량의 정면 중앙에 위치하기 쉬운 라디에이터 그릴의 형상에 적용했고 그것은 전통적인 방식의 계승이었다. 매번 디자인을 하면서 새로운 것 눈에 띄는 것을 주장하던 그 간의 디자인은 오히려 그 어느 것도 하나도 눈에 띄지 않는 형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의 형태를 가치로 끌고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전통을 이어가는 유럽 브랜드의 특징이 한국 브랜드에서 성공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형상이 아니라 그것을 지속하는 브랜드의 자신감에 있었다. 우리는 선후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리고 형상에만 매몰되어 이야기를 들려줄 생각은 아예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음은 이름이었다. 매번 신차를 낼 때마다 알 수 없는 단어들의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담아내어 놓고 그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이름을 제안했지만 그다음 날 그 의미는 바로 사라졌다. 분명 이것도 서사의 일부였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서사가 되지 못했던 건 어떤 어떤 의미가 있다는 공허한 말만 있을 뿐 그 기능과 차량의 디자인이 전혀 무관했기 때문이고 지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안된 K라는 문자는 일관성을 가진 브랜드의 제품 라인업의 기본이 된다.
대치동화된 교육이 죽이는 것 — 이야기할 줄 아는 능력
서울 대치동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입시 중심 교육은 오래전부터 비판받아왔다. 그러나 그 비판은 흔히 '창의성 억압'이라는 막연한 언어에 머문다. 더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대치동화된 교육이 죽이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은 '이야기할 줄 아는 능력'이다. 소설적 상상력이라고 불러도 좋다. 즉, 답이 정해진 문제를 빠르게 푸는 능력은 극도로 발달하지만, 답이 없는 질문을 끈기 있게 붙들고 앉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철저히 퇴화한다. 물론 이런 이야기 능력이 각광받기 시작하면 또 다시 대치동학원가는 그것을 위한 학원과정을 만들어 낼 것이다. 미술대학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주는 지경이니 이야기가 가치를 얻는 순간 그들은 커리큘럼을 만들 것이다.
"정답을 고르는 능력과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은 서로 다른 근육이다. 전자만 쓰면 후자는 위축된다. 한국의 디자인 교육이 글로벌 무대에서 기술적으로는 탁월하지만 서사적으로는 빈곤한 결과물을 내놓는 이유가 연관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
실제로 많은 한국의 미대 입시는 여전히 '정해진 패턴'과 '빠른 드로잉'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인지력보다 손기술을, 사유보다 기법을 먼저 요구한다. 이렇게 훈련된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해서도 "왜 이것을 만드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서 당황한다.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는 알지만, 무엇을 왜 그려야 하는지를 모른다.
이는 비단 디자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문학 독서량의 감소, 자유 작문 교육의 부재, 토론보다 강의 위주의 수업, 이 모든 요소가 합쳐져 '이야기 근육'이 발달하지 못한 세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핀란드 교육과의 대비는 의미심장하다. 핀란드의 디자인 학교들은 입학 전 학생들에게 '당신이 해결하고 싶은 세상의 문제를 이야기 형식으로 써오라'라고 요구한다. 포트폴리오의 그림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이야기의 질을 본다. 그것이 헬싱키 디자인 학교가 지속적으로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배출하는 이유 중 하나다.
내러티브 환경이 만드는 가능성, 그리고 한국의 아이들에게 그것을 돌려주는 방법
연구된 내용들을 보면 아이가 이야기를 들을 때, 그 뇌 속에서는 단순한 정보 처리 이상의 일이 벌어진다. 신경과학자들은 이를 '뉴럴 커플링(neural coupling)'이라고 부른다. 화자의 뇌 활성화 패턴이 청자의 뇌에서도 동일하게 재현되는 현상이다. 이야기를 듣는 아이는 그 이야기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 단지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 메커니즘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인간의 뇌는 사실(fact)의 형태로 주어진 정보보다 서사(narrative)의 형태로 주어진 정보를 훨씬 더 깊이, 오래 기억한다. 스탠퍼드대 연구에 따르면 이야기 형식으로 전달된 정보는 통계나 데이터로 전달된 정보보다 기억 보존율이 최대 22배 높다. 이것은 단순한 기억술의 문제가 아니다. 이야기가 뇌의 '경험 회로'를 활성화시키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탈리아 신경과학자 리촐라티(Rizzolatti)가 발견한 거울 뉴런은 이야기 환경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신경학적으로 설명한다. 거울 뉴런은 어떤 행동을 직접 수행할 때와, 타인이 그 행동을 수행하는 것을 관찰할 때 동일하게 활성화된다. 이야기 속 인물의 고통, 기쁨, 두려움을 '듣는' 아이는 신경학적 수준에서 그 감정을 직접 경험한다.
이 메커니즘은 공감 능력 발달과 직결된다. 사회신경과학 모델은 공감을 두 회로로 구분한다. 감정을 공유하는 정동적 공감(affective empathy)은 전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과 뇌섬엽(anterior insula)이 담당하고, 타인의 관점을 인지적으로 이해하는 인지적 공감(cognitive empathy)은 측두두정 접합부(TPJ)와 내측 전전두피질이 담당한다. 이야기를 통한 양쪽 회로의 동시 훈련은 어떤 교육 방법론보다도 효율적이다.
Sources: Rizzolatti & Craighero (2004); Decety & Jackson (2004); Lamm et al. (2007)
이야기가 길러주는 두 가지 힘 — 창의성과 회복력
내러티브 환경이 아이에게 주는 선물은 공감만이 아니다. 연구들은 두 가지 더 근본적인 능력을 가리킨다. 창의성과 회복력이다. 이 둘은 21세기가 가장 절실히 요구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스토리텔링과 심리적 회복력
2023년 『정신건강 간호 저널』에 발표된 체계적 문헌 고찰은 11개 연구를 종합하여, 스토리텔링 개입(storytelling interventions)이 아동의 심리적 회복력을 유의미하게 향상함을 확인했다. 특히 학교 환경에서 문화적 이야기를 활용한 참여형 접근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회복력(resilience)은 역경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적응하는 능력이다. 이야기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이 어려움도 하나의 이야기의 일부'라는 서사적 프레임을 갖는다.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바라보는 아이는 고난을 '결말'이 아닌 '중간 장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Source: Ramamurthy et al. (2023), Journal of Psychiatric and Mental Health Nursing
왜 한국의 아이들에게 이것이 더 절박한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육열과, 그에 비례하는 깊은 교육적 역설을 동시에 가진 나라다. PISA 성적은 지속적으로 상위권이지만, 같은 보고서에서 아이들의 행복도와 학교에 대한 소속감은 하위권이다. 지식의 습득은 탁월하지만, 그 지식을 '왜 배우는가'에 대한 서사가 빈곤하다.
대치동으로 상징되는 학원 교육 생태계는 아이들의 시간을 촘촘히 채운다. 그 시간에 빠진 것이 있다 — 빈둥거리는 시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책 한 권을 천천히 음미하는 시간, 밖에서 친구들과 역할극을 하는 시간. 이것들이 바로 내러티브 근육이 자라는 시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AI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한국 교육이 가장 집중해 온 능력들 — 빠른 정보 처리, 정해진 공식의 적용, 반복적 연습을 통한 기술 숙달 — 이 가장 먼저 자동화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반면 내러티브 사고력, 공감 능력, 창의적 서사 구성력은 AI가 대체하기 가장 어려운 능력으로 남아 있다.
한국의 아이들에게 내러티브 환경을 돌려주는 것은, 단순한 교육 철학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다음 세대의 생존 전략이다.
이야기를 돌려주는 것은 미래를 돌려주는 일이다
연구들은 일관되게 말한다. 내러티브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더 깊이 공감하고, 더 유연하게 창조하고, 더 강하게 회복하고, 더 멀리 상상한다.
이것은 이상론이 아니다. 신경과학이 증명하고, 발달심리학이 확인하고, 교육학이 실증한 사실이다.
한국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학원 시간이 아니다. 더 긴 이야기, 더 깊은 질문, 더 자유로운 상상의 시간이다. 그것이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을 만들고, 미래를 디자인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든다.
"아이에게 이야기를 돌려주는 것,
그것이 곧 아이에게 미래를 돌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현실은 가깝고 이상은 멀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