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위험

란12.3

by Utopian

영화를 보고 난 이후 사람들은 떠나지 않았다.

한 동안 덮어 두었던 분노와 다행이라는 양극단의 감정이 한꺼번에 넘쳐났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덧없이 또 생각하게 된다.

이유를 안다고 할지라도 바꿀 수 없는 현재의 사람들, 당장 내 옆에 있는 사람조차도 이런 위험성을 완전히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아이러니.


1. 한나 아렌트: "생각하지 않는 죄, 악의 평범성"

아렌트는 인간이 스스로 사유하기를 멈출 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경고했다.

관료주의와 무사유: 현대인들은 거대한 조직이나 사회 시스템 속에서 자신이 맡은 '기능'에만 충실한다. 상부의 지시나 사회적 관습이 타인에게 고통을 주더라도, 그것을 '업무'나 '효율'로만 받아들인다.

행동의 상실: 진정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정치적 행위' 대신, 단순히 생존과 소비에 몰두하는 '노동'에 갇혀 지낸다. 이 과정에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보다 시스템을 유지하는 관성이 앞서게 된다.


2. 유발 하라리: "허구의 힘과 인류의 확장"

하라리는 인간이 '실재하지 않는 것'을 믿는 능력 덕분에 협력하지만, 동시에 그 신념 때문에 파괴적이 된다고 본다.

상상의 질서: 국가, 종교, 자본주의, 인권과 같은 '허구'를 공유함으로써 수백만 명이 협력한다. 하지만 이 '허구의 질서'가 충돌할 때 인간은 가장 잔인한 전쟁을 벌인다.

기술의 역설: 과거에는 신이나 국가를 믿었다면, 현대인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이라는 새로운 신화를 믿는다. 하라리는 인간이 기술을 통해 신이 되려 하지만(호모 데우스), 그 과정에서 대다수의 개인은 무용지물(Useless Class)이 되어 소외될 위험이 크다고 지적한다.


지금 드러난 사실들은 충격적이다.

그들이 저지르거나 계획한 것들을 인간에 대한 배려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당장 일어나고 있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에서도 이런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고 한나아렌트의 경고는 스스로 피해자임을 강조하며 가해자로서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수없이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위의 두 가지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비참하다.

이해되기 위함이 아니라 이런 악행이 멈추기 위해 우리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영화는 지난 악행의 흔적을 음악에 실어 전달한다.

약간은 개선했으면 하는 타이포 그래피와 함께 너무 빨리 지나가는 사건들과 함께.


지금 돌이켜 보면 얼마나 많은 행운이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현실을 가져다준 것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로 그들의 죄를 덮으려 하지만 아주 작은 하나의 실수, 하나의 어리석음이 오늘은 우리 일상이 존재하지 않게 했을 것이다. 더 끔찍한 것은 그때 계엄이 풀리지 않고 탄핵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대책 없는 세계적인 재앙은 그대로 우리들에게는 절망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었을 것이다.


그날 밤에 국회로 달려간 사람들, 추운 겨울 은박지를 덮고 견뎌준 사람들, 광화문을 걸으며 구호를 외치던 사람들, 그리고 "정신 차려!"를 외친 어느 정치인의 아내까지.

끊임없이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고 사람들에게 알려준 유튜버들, 그들 모두가 오늘을 지켰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국가나 사회를 무너뜨리는 행동을 의도적으로 저지르고 또한 그런 것들을 의식 없이 따르는 사람들은 현대적인 교육을 분명히 받았을 것이고 옳음과 그름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임에도 어떻게 그럴 수 있나?'라는 끊이지 않는 궁금증을 만든다.

때론 그들은 여전히 중립을 지킨다라는 생각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을 스스로의 교양으로 간주하면서.


그러나 다행스러운 일상이 답답한 상황을 뚫고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다행스러운 일상은 자칫 잘못하면 또다시 불합리함으로 떨어져 나갈 수 있다.

여전히 사회적 혼란을 오히려 스스로의 이익을 챙기는 기회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들의 이기심이 남아 있기에.


그래도 꺼지는 불빛을 살리려 애쓴 우리 스스로에게 박수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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