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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신 Oct 19. 2018

마이크 울렁증을 이겨낸  성우 김 장

성우 이용신의 voice note

애니메이션 더 파이팅의 전일보, 달빛 천사의 타토, 드래곤볼 Z의 손오반, 개구리 중사 케로로의 쿠루루 등 다양한 목소리 연기를 보여준 성우 김장. 그는 현재 투니버스 성우극회 9대 극회장인 동시에 경력 21년 차 성우다. 70년 개띠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동안을 자랑하는 그는 역시나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캐주얼 차림으로 인터뷰 장소에 나타났다.

   

성우 김 장

-김 장’ 외자이면서 독특하다. 이름이 맘에 드는가?   너무나 맘에 든다. 한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름이지 않나. 삼 형제인데 아버님이 훈, 장, 현으로 지어주셨다. 어릴 때는 김장배추로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90년대 초반이었나? ‘짱’이라는 신조어가 나오면서 내 이름이 더욱 빛을 발했다. 짱선배, 짱님 이렇게 불리는 게 좋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검색창에 내 이름을 치면 ‘김장 담그는 법’이 제일 먼저 뜬다는 거? 하하하  

     

-연극과 출신이다. 왜 연기를 하고 싶었나?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다. 이름 덕인지 몰라도 반장, 회장을 많이 맡았다. 문학의 밤에서 촌극이나 시 낭송을 했을 때의 기분을 지금도 기억한다. 남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는 게 부담스러우면서도 짜릿했다. 무대에 서서 나를 발산하고 있으면 일종의 안도감 같은 것도 느껴졌다. 연기는 나에겐 위험한 끌림이었다. 아련하게 하고 싶었던 그 무엇을 찾아 최면에 걸린 듯 따라갔다.  

   

-집안의 반대는 없었나? 당시의 많은 부모님이 그랬듯이     

맞다. 아버지가 결사반대하셔서 고3 당시엔 시험조차 보러 가지 못했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대학원까지 나오시고 일본에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셨다고 한다. 실제로 안익태, 손기정과 함께 찍은 흑백사진이 집에 있다. 사회주의에 심취하신 아버지는 일본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오셨고 이후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로 인한 후유증 때문이었는지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항상 아픈 분이었다. 가정형편은 당연히 어려웠고, 나는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치는 아들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불만은 없었나?     

어릴 때부터 항상 들었던 의문이 ‘아버지는 왜 저럴까?’였다.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는 극히 최소한의 경제생활을 추구하셨고, TV에 나온 정치인들을 보면 그렇게 욕을 해대셨다. 그들의 실체를 알기 때문에 더 그러셨는지도. 혹시 두꺼운 전화번호부 기억나나? 거기에 한 장 한 장 신문 사설을 매일 오려 붙이셨다. 좌우명이 와신상담 [臥薪嘗膽] 일 정도로 언젠가는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할 거라 때를 기다리셨으나, 그냥 누워만 계시다가 질병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결국, 파킨슨병에 걸려 독한 약들을 드시다가 돌아가셨으니까. 신념에 따라 이타적인 삶을 추구했지만, 막상 자신의 가족을 꾸려갈 힘은 없는 아버지,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어머니에게 전가하던 아버지를 보며 나 역시 혼돈과 갈등의 시간을 보냈다.   

  

그의 형은 서울대를 나왔다. 신념을 중시하던 아버지와 공부 잘하는 형 사이에서 흐릿한 존재감이 그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연극무대에서 맛봤던 해방감은 아버지의 반대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해 줬다. 그는 무작정 집을 나왔고, 우유배달을 하며 홀로 반지하 골방에서 2년을 살았다.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몸은 망가졌고, 마음도 함께 망가졌다.  

         

-미안하지만 믿기지 않는다. 지금의 김장은 어디서나 유쾌하고 즐거운 이미지 아닌가?     

사실이다. 지금의 내 모습과 20대 초반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삐딱하고 뾰족하고 깡마른 고졸의 우유 배달부. 나 홀로 내 삶을 꾸려보려 했지만 내 안의 에너지가 없었다. 깊은 우울로 빠져들었다. 지금이야 우울증이라는 용어가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이게 뭔지도 몰랐다.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 현실의 나와 이상의 나와의 차이가 너무 컸다.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해 죽고 싶었지만, 살고자 하는 본능도 내 안에 함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다 영장이 나왔고 군대 가기 전에 뭐든 해보자는 생각에 서울예전 연극과에 지원서를 넣었다.

      

-어둠의 기운이 가득했던 청년 김장은 연극과에 어떻게 합격했나?

 당시 서울예전 연극과는 내신과 연기 실기만으로 갈 수 있었다. ‘기체후 일향 만강하신지요. 쇤네는 잘 지냅니다요’ 뭐 이런 대사가 주어졌던 거로 기억난다. 다들 사극 톤의 문안 인사조의 연기를 연습하더라. 나는 다르게 해석했다. 다리를 절뚝거리면 문을 열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그 집에서 죽도록 맞고 쫓겨 난 하인이 칼을 갈고 주인을 만나러 온 상황을 설정했다. 워낙 삐딱했던 시절이기도 했고, 시험관의 눈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노려보며 연기를 마쳤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하지만 그는 합격 후 2년간 학교를 거의 나가지 않았다. 잠깐 회복된 듯한 우울증은 다시금 그를 짓밟았다. 그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게 어렵고 두려웠다. 언제나 내 자존감을 더 짓누르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탈출하듯 가출을 했고, 도망치듯 군대에 갔다. 무너진 자존감 때문에 괴로웠다. 하지만 그는 무너질 만한 자존감조차도 자신 안에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도 살고 싶다는 욕망을 인간에 대해 기대감에서 찾아보려 했지만,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에겐 이러한 기대가 조차도 매번 실망감으로 되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러던 그가 군대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낮은 ‘자존감’이 해결되지 않는 인생의 화두였나?     

나는 어디서든 항상 모자란 사람처럼 느껴졌다. 집에서도, 사회에 나가서도, 학교에서도, 군대에서도 그랬다. 유일하게 내가 괜찮은 사람으로 느껴졌던 곳은 교회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신앙은 나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다. 군 복무 중 우연히 최인호의 ‘길 없는 길’을 읽었다. 불교사상에 관한 소설이었는데 순식간에 4권을 다 읽어버릴 정도로 흡입력이 대단했다.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도 나에게 큰 영향을 줬다. 훈련 중 발이 찢어지는 사건 이후 ‘성경책’을 읽기 시작했다. 불교와 철학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왔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가 찌질이었을 때나 조금 나아졌을 때나 나와 항상 같이 계셨음을 알게 됐다. 그 사건 이후로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비로소 자유함을 얻었다. 복학 후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연기하면서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무대 위에 서면 외부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상처받지 않을 자유가 온몸을 휘감은 듯 안정감이 생겼다. 그동안 그의 마음에는 굳은살이 깊게 배겨 있었다.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심장의 굳은살이 외부와의 소통을 막고 있었던 거다. 무엇이든 소통이 안 되면 썩는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그렇게 썩어있는 상태였음을 알게 됐다. 자유함은 그의 영혼에도 생기를 불어넣었다. 어디서나 분위기를 주도하는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현재 그의 모습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21년 차 성우다. 길다면 긴 세월인데 몇 부작으로 나눌 수 있나?     


1부-미사일이다     

굳이 나누자면 3부작? 1부의 제목은 “미사일이다”로 하고 싶다. 신인 성우 시절 10번 정도 NG를 냈던 대사라 잊을 수가 없다. 성우 공부를 특별히 안 하고 성우가 됐다. 대학 시절엔 성우 연기는 가짜 연기라고 생각했다. 정확한 발음, 과장된 연기, 특유의 쪼, 만들어진 연기의 대표라고 할 만했다. 솔직히 탤런트 공채시험에 다 떨어졌다. 그 후 성우 시험으로 눈을 돌렸다. 막상 성우가 돼보니 내가 배운 연기가 성우 연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 자존감은 다시 곤두박질쳤다. 마이크 앞에서 대사는커녕 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초인 로크’라는 작품이었는데 전투 중에 “미사일이다!”라고 외치는 병사 역할이었다. 도무지 큰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누군가 내 목을 꽉 잡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이크 울렁증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마이크 울렁증은 긴 세월 동안 나를 괴롭혔다. ‘이 길이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2부 나만을 위한 마이크     

우연히 기회에 CM 녹음을 했다. 만화 더빙과는 작업 방식이 완전히 달랐다. 만화 더빙은 한 마이크를 여러 명의 성우가 나눠 쓰는 반면 CM 녹음은 오직 나만을 위한 마이크가 내 앞에 있었다.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고,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고, 예전에 무대 위에서 경험했던 자유로움을 다시 회복했다. 만화 더빙도 점차 편해지기 시작했다. 상호 상승작용이 일어난 것 같다. 연기에서도 편안함과 자유스러움이 묻어났는지 기존의 성우 연기와의 차별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가진 역량보다는 과대평가된 시기였다.


3부 김 장, 극회장, 위원장 

3부는 이제 시작이다. 거품이 걷히고 있다고 해야 하나? 최근 어떤 오디션에 합격하고 녹음까지 했는데 도중하차를 당했다. 하하하 세월의 흐름을 받아들여야 하나 보다. 하지만 미래를 미리 걱정하는 게 현재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기에 그러려니 한다. 현재 투니버스 극회장을 맡고 있다. 성우협회 CM분과 위원장이기도 하다. 자리가 주는 무게감이 좀 있다. 알다시피 성우들이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다. 각각의 사안들에 대해 성우들끼리도 너무나 다른 의견들이 나온다. 나도 오랜 기간 성우협회와는 무관한 성우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개개인의 성우가 모여있는 곳이 바로 협회다. 힘없는 협회라는 오명이 왜 생기게 된 건지 나부터도 반성해야 한다. 투니버스 성우극회도 성우협회도 각각의 성우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방패막이되어줘야 한다.   

  


-성우 김장이 꼽는 인생 캐릭터는 누구인가?

남들이 말하는 캐릭터는 달빛천사의 타토다. 그런데 내가 꼽는 캐릭터는 더파이팅 ‘일보’다.  일본의 국가주의적 느낌이 드러나는 이름이지만, 마이크 울렁증에 시달리던 찌질이 시절 나에게로 와 성우로서의 자존감을 회복시켜 준 캐릭터랄까. 왕따 당하던 보잘것없는 고딩이 뒤늦게 복싱을 시작하면서, 성장하는 내용이다. 성우로서의 나의 캐릭터와도 일치하는 녀석이다.  일보가 각기 다른 개인 기술을 가진 선수들을 만나 싸우는데, 더빙할 때도 상대 선수 역할을 맡은 유명 성우들과 시합을 뛰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관장님의 지도를  100% 따라가는 꾸준함이 좋았다. 주먹과 주먹이 부딪히는 장면들이 많아서 실제로 작품을 더빙하는 동안 운동으로 체력관리를 열심히 했다. 스스로에게 ‘강하다는 걸 뭘까?’라는 질문을 되내이며 점점 업그레이드되는 일보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봤다.

-마지막으로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이슈는 무엇인가?      

점차 더빙이 줄어드는 추세다. 자막을 선호하고 더빙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커지는 걸로 안다. 이로 인해 성우들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도 문제지만, 시각장애인, 노약자, 아동 등 우리말 더빙이 분명 필요한 계층의 방송접근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방송 전파는 공공재다. 우선 지상파만이라도 외국 작품에 대한 우리말 더빙을 의무적으로 편성해야 한다. 또한,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우리말 파괴 현상은 어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두 딸이 즐겨보는 유튜브 방송을 본 적이 있는데 우리말 오염이 심각하더라. 낮은 자존감과 싸워왔던 내가 성우가 돼서 느끼는 건 개인뿐 아니라 한 민족에게도 자존감이 있다는 거다. 좀 거창할지도 모르지만, 그 자존감은 우리말에 대한 자긍심에서 상당 부분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말 더빙이나 방송 내레이션만큼은 아직까지 표준어로 잘 필터링되고 있다. 성우들은 그 최전선에 있는 거고. 나 역시 완벽하진 않지만, 우리말 지킴이로서의 자부심을 가져온 21년이라 말하고 싶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현재 진행 중인 청와대 청원 하나를 필자에게 보여주었다. 한 시각장애인이 올린 청원인데 지상파의 외화 프로그램을 우리말 더빙으로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프랑스를 비롯해 동남아, 유럽, 남미의 많은 국가가 자국어 더빙을 법제화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수입 영상물이 자막 우선이어서 온전한 외화 감상을 하지 못한 지 너무 오래되었다는 사연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인터뷰 마무리에 이 청원을 링크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를 찾아주는 누군가가 존재하는 한 성우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http://www1.president.go.kr/petitions/40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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