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자마자 서울에서 1박 하고 강원도에 2박 3일로 갔다 왔으니 이제야 본격적인 서울 입성이었다. 호텔은 양재역 근방의 힐튼 가든 인이다. 늘 하던 습관대로 호텔 주변 아침 산책할 만한 곳을 찾았다. 양재시민의 숲 공원이 있었다. 양재역에서 신분당선으로 한 정거장 거리다. 오전 7시. 지하철에는 아직 사람이 거의 없었다. 공원은 조용하고 가는 비가 내렸다. 조용한 아침 산책을 즐겼다.
어제 예약해 둔 호텔근방의 미용실에서 셋이 다 머리를 잘랐다. 하와이에서 한 명의 요금으로 한국에서는 셋이 자를 수 있었다. 기술도 더 나은 듯했다. 오후에는 세라를 데리고 명동에 갔다. 세라는 여행 시 멜 수 있는 조그마한 가방을 사려고 명동의 한 가방가게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비가 많이 내리는데 세라는 한 시간도 넘게 같은 가게에서 가방을 고르고 있었고, 내 인내심은 한계를 지나고 있었다. 소피는 그런 세라를 맞춰주느라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결국 다시 만나기로 하고 나 혼자 근방을 돌아다녔다. 비가 퍼부어 신세계백화점에 들어갔다가 명동으로 갔다. 두세 시간 후, 명동에서 세라와 소피를 다시 만나 돈가스를 먹었다. 돈가스는 맛있는 편이었는데 분위기가 엉망이었다. 비 오고, 헤어지고, 기다리고, 피곤함에 감정이 섞인 어수선한 분위기다.
다음 날은 장모님을 만나는 날이다. 처남이 요양원에 계신 장모님을 모시고 나와 여럿이서 같이 식사를 했다. 소피는 장모님과 처가에 남고 세라와 나는 처남의 라이드로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에는 혼자서 예술의 전당을 통해 우면산 둘레길에 올랐다. 거기서 호텔까지는 걸어왔다. 두 시간 넘게 걸은 듯하다. 체크아웃하고 호텔 직원이 어플로 불러준 차로 여의도 콘래드로 갔다.
여기서부터 순서가 헷갈린다. 여행 갔다 와서 바로 써야 하는데 세 달이 넘으니 간 곳은 생각나는데 앞뒤 순서는 긴가민가하다. 그날인지 그다음 날인지 사촌동생을 만나 세라와 함께 셋이서 저녁을 먹었다. 어딘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아마 여의도에서 멀지 않은 마포쯤이 아니었을까. 한옥으로 된 음식점이었고 궁중갈비찜을 먹었다. 사촌동생이 계산하기 전에 세라에게 조용히 계산하라고 내 카드를 주니 세라는 자기 카드로 계산하고 왔다. 짠순인 줄 알았는데 웬일일까. 식사 후 디저트를 먹으러 마땅한 곳을 찾다가 마침 서강대 쪽으로 가는 길이라 세라에게 아빠엄마가 결혼한 성 이냐시오관을 구경시켜 주기도 했다. 호텔 근방 여의도 IFC몰에서 간단하게 디저트를 먹고 사촌동생과 헤어졌다.
소피가 없어도 아침마다 여의도 공원에서 산책을 했다. 그 다음은 거의 매일 친구들을 만났다. 여의도에서 일하는 대학친구들과 만나 소주잔을 기울였고, 고등학교 친구도 여의도에서 만났다. 초중학교 친구들 세 명은 용산에서 만났다. 전 직장 상사를 만나 세라가 가고 싶다던 낙산에 함께 갔고, 북촌에서 보쌈을 먹었다. 마침내 소피가 장모님을 요양원에 다시 모셔드리고 호텔로 돌아왔다. 소피, 세라와 종로, 광장시장에 가서 부침개와 튀김, 전을 먹었고, 소피와 종로, 북창동, 청와대 앞에 갔다. 해장국을 먹었고, 동대문시장에서 이불을 사 호텔로 부쳐달라고 했다. 혼자서 가본 곳은 더 많았다. 교보문고, 낙원상가, 탑골공원, 인사동, 우면산, 그리고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크고 작은 거리들. 외국에 오래 살다가 온 나에게 한국의 풍경은 낯섦과 익숙함이 교차되면서 다가왔다. 한국이 오랜만이라 낯설기도 하지만, 오래전에 익히 봐오던 것들이라 익숙한 풍경들이었다.
세라가 태국 하롱베이로 가려던 일정을 변경해 하루 먼저 뉴욕으로 떠났고, 소피와 나는 다음날 하와이행 항공기에 탑승했다. 바로 옆 탑승구에 적힌 행선지가 나를 유혹했다. - 헬싱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