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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욱 May 08. 2023

[자동차] 전기차 배터리 교환방식이 현실성이 없는 이유

요즘 유튜브에 중국 전기차 산업을 전망하며 배터리 교환방식의 장점을 이야기하는 동영상이 몇 개 보였고, 페이스북에도 그걸 인용&공유한 글들이 여럿 보인다. 얼핏 보면 전기차의 배터리를 교환하는 방식은 충전시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획기적인 방법처럼 보이기 때문에 자동차를 잘 모르는 대중들은 혹하기 쉽다. 하지만 이런 오해가 퍼져나가 자칫 산업 정책 수준에서 잘못된 의사결정이 내려지도록 영향이 미치지는 않을까 염려된다. 우리나라는 이미 수소차에서 거대한 헛발질을 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나의 걱정이 근거없는 기우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교환방식이 보편적인 방식으로 자리잡으려면 배터리 자체가 표준화되어야 한다. 배터리의 크기, 무게, 차체와 연결되는 접점의 위치와 모양, 배터리를 충/방전할 때의 제어방식 등 다양한 요소들이 통일되어야 여러 자동차 메이커들이 여러 자동차 모델에 이를 적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과연 가능하다고 보이는가? 


100여 년 전에 포드가 제품 표준화와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해서 만든 [모델 T]가 시장을 석권한 적이 있었다. 모델 T는 당시 경쟁제품보다 획기적으로 낮은 가격에 동등 이상의 성능을 제공하여 많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하지만 모델 T로 인해 소비자들은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했다. 이는 당시 포드가 한 말에 잘 표현되어 있다. "Any customer can have a car painted any color that he wants, so long as it is black."


영원할 것 같던 포드의 천하는 길지 않았다. 알프레드 슬론이 이끌었던 GM이 선보인 다양성이 시장을 뒤집은 것이다. GM은 그 산하에 있던 폰티악, 쉐보레, 올즈모빌, 뷰익 등의 제품을 차별화하여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다. GM이 내세웠던 슬로건은 "A car for every purse and purpose"였다. 그 이후 포드가 GM을 앞선 적은 없다. 


자동차 회사들은 고객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다양한 방면에서 제품을 차별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주행성능, 연비, 실내공간의 크기, 차량의 실내외 디자인, 충돌안전성, 내구성 등등등... 내연기관의 경우를 보면 주행성능과 연비는 엔진의 성능으로 좌우되며, 이는 각 메이커의 핵심 기술력 중 하나였다. 성능과 연비는 일반적으로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희생해야 하는 관계인데, 그 둘을 모두 얻기 위해 자동차 회사들은 엄청난 연구개발 투자를 해 왔고, 거기에서 앞서나간 회사들은 시장에서 큰 보상을 얻었다. 실내공간의 크기와 충돌안전성은 차체설계 기술과 직결되는 부분으로, 이 역시 핵심 기술력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차체 구조물을 두껍고 무겁게 만들면 차는 안전해지지만 실내공간을 희생하게 된다 (물론 연비도 떨어진다). 얇고 가벼운 구조물을 쓰면서도 튼튼한 차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기술력이고, 현대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이 바로 차체기술이었다 (현대의 엔진 기술력은 아무리 좋게 봐도 fast follower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엔진기술과 차체기술은 서로간에 영향을 준다. 엔진의 형상은 차체 설계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고, 차체의 강성은 차량이 수용할 수 있는 엔진의 한계를 결정한다. 따라서 엔진기술과 차체기술은 자동차 메이커가 생존하기 위해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핵심적인 기술이다. 


그런데, 배터리는 이 두 기술 모두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전환되면서 파워트레인은 엔진+변속기 조합에서 모터+배터리 조합으로 바뀌게 된다. 즉, 배터리는 파워트레인의 중요한 한 부분이며, 따라서 배터리에 관련된 기술은 각 제조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술 중 하나인 것이다. 비록 배터리를 만드는 것은 자동차 회사들이 내재화하지 못하고 있지만, 충전속도를 단축하고 주행 중 발열을 제어하는 등의 배터리 관리 기술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핵심 기술이다. 그리고 배터리는 차량 전체의 크기와 무게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배터리를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배치하느냐에 따라 차체설계가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배터리의 형상 설계도 자동차 제조사들이 다른 회사들과 공유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와 같이 기술적 경쟁의 관점에서 볼 때 배터리 공유는 여러 메이커를 아우르는 표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 


배터리 관련 기술은 각 메이커의 핵심 기술로써, 메이커간에 공유될 가능성이 낮다.


배터리 교환방식은 차량의 안전성과 신뢰성에도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잦은 배터리 교환은 필연적으로 접점 부분의 마모를 일으키게 되고, 접점이 노후화될수록 스파크가 발생하거나 누전 또는 접촉불량 등의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에 더하여 교환하는 과정에 습기나 이물질이 들어가거나 운행하는 과정에서 결합부위 사이로 습기가 침투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며, 이런 문제들을 예방하기 위해서 차체 설계 및 제조에 비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배터리는 매우 크고 무거운 물건이다. 짧은 시간 안에 방전된 배터리를 내리고 충전된 새 배터리를 장착하려면 수백킬로그램의 물체를 1mm 이하의 위치 정밀도로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무거운 물체를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위험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배터리가 차체에 통합되어 있으면 배터리 자체가 차체의 강성을 확보하는 구조물의 역할을 할 수 있지만 탈착식 배터리가 된다면 차체의 강성을 오히려 저하시킬 수 있다. 이로 인해 차체 설계에 추가적인 요소가 고려되어야 하는데 구성 요소가 많아지면 일반적으로 신뢰성은 낮아지고 비용은 올라가게 된다. 


배터리 교환방식은 차량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배터리 교환방식을 얘기할 때 많은 경우 간과되고 있지만 이 방식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경제성이다. 중국의 니로가 설치하고 있는 2세대 배터리 교환 스테이션은 1개소 설치에 약 6~9억원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30억원에 육박하는 수소충전소보다는 싸지만 1억원 수준인 배터리 고속충전소에 비해서는 훨씬 비싸다. 니로의 교환 스테이션에서 차량 1대의 배터리를 교체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5분 정도이고, 손익분기점은 일 200대 수준이라고 한다. 약간의 대기시간을 고려하여 한 시간에 10대를 교체할 수 있다고 한다면 하루 20시간동안 쉬지 않고 배터리를 교환해야 겨우 손익을 맞출 수 있다는 얘기다. 현실적인 요소들을 조금 더 고려한다면 대기시간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고 설치비용은 아마도 중국 정부의 보조금이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경제성을 확보하는 것은 더욱 요원한 일이다. 이에 더하여, 필요한 배터리의 재고량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급속충전으로 충전량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데 20분이 걸린다고 가정하면 지연 없이 배터리를 교환해 줄 수 있으려면 차량 1대 당 배터리팩 4개가 필요하다. 배터리는 전기차에서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하는 부품이므로 차량 대수보다 몇 배 많은 배터리를 쌓아놓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시스템 전체로 볼 때 엄청난 원가 상승을 유발하게 된다. 


원활한 배터리 교환을 위한 배터리 재고 확보는 시스템의 총 비용을 엄청나게 증가시킬 것이다. 


또 하나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는 소비자의 신뢰 문제다. 내연기관의 경우 구매한 연료의 양(부피)은 구매한 에너지의 양과 정확히 일치한다. 연료 구입 펌프의 정밀도가 정해진 오차범위 이내로 유지된다는 보장만 있으면 소비자는 자기가 지불한 비용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배터리는 다르다. 노후된 배터리는 새 배터리보다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량이 적다. 그런데 소비자가 배터리의 상태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교환식 배터리 시장이 성장할수록 저가 제조사들의 진입도 늘어날 것이다. 아무리 규격을 정하고 규제를 한다고 해도 제조사들은 어디에선가 원가를 줄이려 할 것이고, 후발주자들은 더욱 더 가격으로 경쟁하려 할 것이니 배터리의 성능은 하향평준화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교환식 배터리가 늘어날수록 소비자들이 지불하는 금액에 대한 신뢰는 훼손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불이라도 한 번 난다면? 


배터리 교환이 보급될수록 소비자의 신뢰가 떨어질 수 있는 위험요인이 많이 있다. 


자동차 제조사의 입장에서 보면 배터리 교환방식은 장기적으로 자기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가솔린이나 디젤 연료가 단위 부피당 담고 있는 열량은 지구상 어디에서도 일정하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차량의 설계에 있어서 연료계통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배터리 기술은 현재 완성된 것이 아니다. 배터리의 성능은 지속적으로 향상되고 있으며, 그 특성에 맞추어 배터리 제어 기술도 계속 변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에서 배터리에 관련된 성능은 핵심적인 경쟁요소이다. 그런데 배터리 교환방식을 적용하면 배터리에 관련된 기술은 교환용 배터리에 채택되어 있는 기술로 고정되게 된다. 마치 과거 베타 방식의 비디오 플레이어가 더 나은 성능을 갖고 있었지만 VHS 방식의 플레이어에 밀려서 보급되지 못했던 것과 같은 상황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애초의 취지와 달리 배터리 교환방식은 배터리에 관련된 신기술이 도입되지 못하도록 하는 장애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배터리 교환방식은 배터리 신기술의 장애물이 될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배터리 교환모델은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인 <베터 플레이스 (Better Place)>가 미국 시장에서 시도했다가 크게 실패한 모델이다. 지금 중국에서 시도하고 있는 방식이 과거 <베터 플레이스>가 했던 방식보다 획기적으로 달라진 부분이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중국은 현재 미국 GDP의 70%에 달할 정도로 양적으로는 눈부시게 성장했지만 아직 기술력으로 전 세계를 주도하는 산업은 많지 않다. 내연기관차 시장에서는 선진업체들과의 합작을 통해 격차를 극복해보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양적 성장에만 성공했을 뿐 질적 성장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전기차 시장에서는 얘기가 달라질 수 있고, 이를 위해 특유의 민관합동 산업정책을 통해 전기차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배터리 교환방식은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제시된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배터리 교환방식은 여러가지 한계점을 갖고 있으며, 특히 경제적으로 매우 명확한 한계를 갖고 있다. 


배터리 교환방식은 경제적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


어떤 시장이든지 초기에는 정부가 돈을 쏟아부어서 시장을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러나 그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가려면 시장 자체적으로 경제적 논리가 성립해야 한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배터리 교환시장은 경제적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 아무리 자금력이 풍부한 중국 정부라 해도 자동차 산업과 같이 거대한 산업을 언제까지나 돈으로 지탱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배터리 교환방식은 실패할 것이라 생각한다. 


단, 배터리 교환모델이 유효하게 작동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바로 대중교통 분야이다. 런던의 블랙캡, 뉴욕의 옐로우캡 등은 차량의 형태가 거의 동일하다. 버스들도 차량의 형태는 큰 차이가 없다. 그리고 대중교통 분야는 정부가 규제나 보조금 등을 통해 시장을 통제하기도 쉽다. 국가 단위에서 탄소배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단기간에 대중교통 차량을 전기차로 전환하는 것은 충분히 검토해 볼만한 방안이고, 대중교통으로 범위를 제한한다면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자원의 불확실성이 크게 감소하기 때문에 경제성을 확보하거나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의 적자규모로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은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배터리 교환방식을 적용하려 한다면 그의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보완하거나 회피하는 합리적인 실행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맹목적인 추종은 절대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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