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사진에서 생각하는 사진으로
요즘 몇몇 분들이 사진을 올리는게 좀 뜸해 졌다고 하신다. 맞다. 요즘 확실히 사진을 덜 찍는다. (그걸 눈치 챈 주위 분들의 눈썰미가 놀랍다.) 이전에는 그냥 예쁜, 혹은 멋진, 사진만 찍으면 그만이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너 사진 잘 찍는다' 칭찬 한마디 들으면 기분이 좋았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지난 오랜 시간동안 그렇게 사진을 찍어 왔다. 소소한 자기만족이었고 그것으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스멀스멀 좀 더 잘 찍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작가들의 작품은 무엇이 다른지 알고 싶었다. 내 사진도 작품으로 인정받고 싶어졌다.
작년부터 사진 아카데미에 등록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조리개, 셔터속도, 화각, 심도, 감도 등등 기술적인 부분은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기술적 요소들을 조합해서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에서부터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그리고 그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벽을 통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도 사진을 찍을 때 조리개, 셔터속도 등의 기술적 요소들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아주 꼼꼼하게 고려했다. 어떻게 하면 이 장면을 가장 선명하게, 가장 화사하게, 가장 예쁘게 찍어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항상 했었다. 그 결과로 '예쁜' 사진들을 꽤 찍어 왔고, 주위 사람들에게 사진 잘 찍는다는 인정도 꽤 받았고, 오래 전 일이지만 사진 공모전에서 상도 두어 번 받았다. 그런데 사진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종종 질문을 받게 되었다. '이 사진을 왜 찍었어?' '이 사진으로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말문이 막혔다. 답이 없었다. 그래서 사진을 찍기 전에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이 사진을 찍는 이유가 무엇인가? 반드시 언어적인 메시지가 있을 필요는 없다. 시각적인 메시지만으로 충분하다. 혹은 메시지가 없어도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잘 보여주기만 해도 된다. 움직임은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움직이는 물체를 움직이게 표현할 것인가? 움직이는 물체를 멈춘 것으로 표현할 것인가? 멈춰 있는 물체를 멈춰 있는 것으로 표현할 것인가? 멈춰 있는 물체를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할 것인가? 왜? 왜? 왜?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한 장의 사진에서 무엇인가를 표현하고자 하니 이전에는 마치 공식처럼 선택하던 기술적 요소에 대해 하나 하나 고민하게 된다. 사진 한 장을 놓고도 할 말이 많아진다. '이게 말이야... 이러저러한 장면이었는데, 거기서 내가 이러저러한 생각이 떠오르더라고. 그래서 그 생각을 이러저러하게 정리해서 이러저러한 면에 집중해서 표현을 하고 싶었어. 그래서 이러저러한 요소들을 여차저차하게 조절해서 이 사진을 만들어 냈어. 어때?' ('멋있지? 훌륭하지? 나 잘 찍었지?...' 를 참기는 꽤 힘들지만.) 내가 찍은 사진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었을 때 '오, 멋있네' 소리가 나오면 바로 투머치토커가 되어 버린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한 장 한 장 찍을 때마다 고민을 하다 보니 '표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느낌이 온다. 다른 사람의 사진을 볼 때에도 조리개는 어느 정도로 했을지, 셔터속도는 어느 정도로 했을지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런 기술적 선택을 통해 이 사진이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여러가지로 해석해 보려 시도한다. 조금씩 조금씩 사진을 더 읽어 낼 수 있게 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표현'을 다 익히기도 전에 새로운 벽이 다가오고 있다. '주제'이다.
아마도 취미사진가와 작가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가 '주제'의 유무가 아닐까 싶다. 작가들은 모두 주제를 갖고 있다. 주제가 없이 '작품'만 덩그러니 존재하는 경우는 없다. 이제 나도 '주제'를 정해서 작업을 해 봐야 하는 지점에 다다랐다. 그런데 도대체 그놈의 '주제'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 '주제'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나? '주제'에 맞는 사진은 무엇인가? 내가 찍어낼 수 있는 사진들인가? 아니, 거꾸로 내가 찍어낼 수 있는 사진 중에서 주제를 골라야 하는 건가?
유명한 작가들은 어떤 주제로 어떤 사진들을 찍었는지 찾아 본다. 구본창 작가의 '백자', 이갑철 작가의 '충돌과 반동', 정희승 작가의 '페르소나', 전몽각 작가의 '윤미네 집', 김기찬 작가의 '골목안 풍경'... 그리고 해외의 유명 작가들, 앗제, 카파, 스티글리츠... 주제란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지만, 저 주제들이 완성되기까지 수 년에서 수십 년이 걸렸다는 사실에 두려움이 느껴진다. 저 작가들은 저런 주제들을 왜, 어떻게, 선택하게 되었을까? 나의 주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아니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그 주제를 놓고 나는 어떤 사진을 찍어야 할까? 아니 어떤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주제'라는 것이 큰 벽으로 느껴진다. 막막하다. 하지만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려면 뛰어 넘든, 돌아 가든, 부수고 뚫든, 어떻게든 이 벽을 지나가야 한다.
내 사진을 찍으러 나가기보다 다른 사람의 사진을 더 보게 된다. 다른 사람의 사진을 보다가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의 부족함을 느끼게 되면 책을 읽는다. 문학, 철학, 사회학... 사진은 손으로 시작해서 눈을 거쳐 머리로 찍게 되는 것인가 보다.
어렵다. 사진.
그래서 재밌다.